중국 상해에 가면 홍구공원이 있다. 윤봉길 의사가 1932년 4월 29일 수통형 도시락형 폭탄을 던져 일본군 백천 대장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을 살상한 곳이다. 일본 사람들은 그들의 천황의 생일에 침략전쟁의 승리를 자축하는 기념식을 가졌다. 나중 패전 뒤 미 군함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한 중광은 다리 하나가 없었는데, 그 때 그의 다리를 잃었다. 윤 의사는 그 해 12월 스물네 살 나이로 일본 오사카 근처 군 기지에서 처형됐다. 장개석은 사 억 지나인이 하지 못한 일을 조선 청년 하나가 했다고 격찬했다. 많은 중국 사람들이 그것을 알았고 감동했다. 1992년 한중수교가 이뤄졌을 때 나는 중국에 갔다. 홍구공원에서 만난 중국 사람들은 윤 의사를 알고 있었지만, 현장이 공원 어디쯤이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지금은 거기에 무슨 기념관 비슷한 것이 세워진 모양이지만, 그 때는 푯말 하나 없었다. 이름도 노신공원으로 바뀌었다. 훙커우는 종로구나 덕진구처럼 상해의 한 구역 이름인 모양이었다. 저만치 실물보다 훨씬 큰 노신이 높다란 좌대 위에 앉아있었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좋아하는 사회주의 작가였다. 그의 소설은 옛날 우리나라에서 금서였다. 루쉰은 의학을 공부하려고 일본에 갔다가, 소설을 쓰기로 마음을 바꿨다. 중국을 가난에서 구하는 것은 동포들의 몸이 아니라 마음을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의 『아Q정전』을 말로만 많이 듣다가, 1996년 브리튼의 한 대학 도서관에서 영역판으로 읽었다. 그것은 조잡하게 제본된 두 권의 단편집에 수록돼 있었다. 아Q는 가난하고 밟아도 꿈틀거릴 줄 모르는 전형적인 중국인이었다. 중국적으로 가난한 그가 빈곤을 탈피하는 것은 그의 중국적 틀을 깨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그 틀에 가장 책임이 큰 사람은 공자였다. 우리나라에도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선다고 생각한 중국학 교수가 있었다. 나도 공맹이 고리타분하고, 격식에 얽매인 도덕군자라고 생각했었다. 그의 경전들을 읽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공자는 시인이고, 맹자는 소설가였다. 맹자에 의하면, 송나라의 사람 하나가 밭에 나가서, 싹이 빨리 자라지 않은 것을 보고, 일일이 모를 뽑아 올렸다. 그가 집에 돌아와서 집안 사람들에게 ‘나는 오늘 피곤하다. 밭에서 모를 자라게 도와주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들들이 급히 밭에 나가보니, 모들이 모두 시들었다. 그에 비해서 공자는 산문의 산만함이 없다. 그는 간결하고 함축적이고 상징적이다. 그에게 풍부하게 있는 윤리적 가르침들은 그의 감성적 관조의 깊이와 아름다움을 가리지 않는다. 그의 제자들 넷이 나랏일을 맡아 해야 할 일로, 부국, 강병, 제사, 풍류를 들었을 때, 그는 새로 맞춘 옷을 입고 친구들과 무우에 나가 멱감고 노래하고 돌아오겠다고 한 증석의 말에 공감했다. 그가 정치를 포함한 삶의 우선순위를 어디다 두었는지 분명하다. ‘옷 살살 벗겨라, 개 짖을라.’ ‘그대가 나를 사랑한다면, 치맛자락 걷어 올리고 진수를 건너리다. 그대가 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어찌 딴 총각이 없겠냐, 이 미친놈중의 미친놈아.’ 그가 그 당시의 노래들을 편찬한 ‘시경’에는 나라 위해 몸 버린 백성들의 고충들 속에 그들의 사적 정분이 끼여있다. 사람의 정 이야기는 『논어』에도 나온다. ‘“산앵두꽃이 펄럭인다. 어찌 너를 생각하지 않으랴만 집이 너무 멀구나.” 공자가 말했다. “생각을 덜 했다. 어찌 멀다가 있냐?”’ 공자의 진리에 대한 열정은 그의 철학적, 도덕적 처방보다는 그의 문학적, 성찰적 기술 (記述)에 더 관련된 듯하다. 문학은 사물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여기와 지금에 얽매이고 욕심이 목에까지 찬 우리는 사물을 과거와 미래와 현재를 통틀어서 모든 곳들을 한꺼번에 보는 신의 눈으로 볼 수 없다. 평생을 바쳐도 나뭇잎 하나, 돌멩이 하나 제대로 못 본다. 진리는 너무 눈부셔서 다 볼 수 없고 그 편린을 본다. 그것만으로도 황홀하다. 그의 정명 - 사물의 이름 바로 부르기 - 은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자로가 공자에게 위나라 왕이 그에게 정치를 맡기면 무엇을 먼저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는 서슴지 않고 ‘필야정명호’ 반드시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자로가 하고 많은 일들 중에 하필 이름이냐고 하자, 공자가 정색을 했다. 무식한 놈아, 모르면 말을 하지 마라. ‘이름이 바르지 않으면 말이 불순하고, 말이 불순하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고, 일이 이루어 지지 않으면 예악이 흥하지 않고, 예악이 흥하지 않으면 형벌이 적중하지 않고, 형벌이 적중하지 않으면 백성이 손발 둘 데가 없다.’ 백성이 몸 둘 바가 없는 정치적 경제적 파탄은 말의 오염에서 비롯되었다. 이 사회적 병리는 진리와 단절된 삶이 인식능력에 막이 끼어서, 마침내 야만의 마비에 빠지게 되는 존재론적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고가 고가 아닌데, 어찌 고냐, 어찌 고냐?’ 고는 네모난 잔이었다. 네모가 안 난 잔도 그냥 고라고 하는 것이 공자에게는 못마땅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에 중대한 위협이 될 수 있었다.
‘여욕무언, 나는 말하고 싶지 않다. 그러면 저희들이 어떻게 배웁니까? 천하언재, 하늘이 언제 말하더냐? 사시행언, 사철은 돌고, 백물생언, 만물은 생긴다. 천하언재, 하늘이 언제 말하더냐?’ 이것은 아마 톨스토이가 우리가 가진 거의 모든 문학과 음악을 가짜로 규정하고, 진짜 예술의 예로 맨 먼저든 구약 창세기 1장 3절, ‘빛이 있어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에 맞선다. 공자는 말을 하기 싫었다. 말을 안 해도 우주는 정확하게 돌아갔고, 말을 해도 그 질서에 아무 영향을 줄 수 없었다. 사달이이의. 말씀은 전달될 뿐이다. 전달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 다음은 전달받은 사람의 몫이다. 사방 아무데로 튀어도 된다. 전달한 사람은 ‘손톱을 깎’고 있다. 남을 바꾸려고 하지 마라. 물건을 보여주고 그 이상을 바라면 아마 물건도 못 보여준다. 직업을 바꾸시든지. 공자는 석가보다 10여년 후배고, 소크라테스보다 80년 선배다. 그들보다 500년 후배인 예수를 포함해서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저술을 하지 않았다. 머리에서 손가락까지 가면 기력 소모가 많았다. 그들은 입으로, 행동으로, 때로는 눈짓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제자들이 받아썼다. 막둥이를 제외하고 그들은 모두 고희를 넘기고 죽었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플라톤의 것인지, 소크라테스의 것인지 알 수 없다. 그것은 분명히 플라톤의 것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생각이다. 스승의 언행을 제자가 대단히 문학적인 방법으로 기술했다. 그는 문학적으로 문학을 반대했다. 그의 책은 문학의 많은 장치들을 활용한 문학작품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서양 문학이론의 효시로 보는 수도 있다. 공자의 ‘여욕무언’이 주는 감동과 비슷한 것이 소크라테스의 최후를 기록한 플라톤의 글에 있다. ‘파이돈’에 의하면, 옥에 갇힌 스승이 마지막 날을 맞이하여 옥리한테 햄록 약사발을 받아 마시고, 발끝부터 차츰 무릎으로 허벅지로 마비가 올라올 때, 제자들이 울면서 마지막 부탁이 없냐고 묻자, 그가 ‘울지 마라, 내가 가는 길과 너희들이 가는 길, 어느 것이 더 좋은지 누가 아냐. 부탁 없다. 아, 하나 있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을 한 마리 빚졌다. 갚아줄래?’ 나는 그가 말한 사람이 그의 이웃 정도인 줄 알았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아폴론의 아들로, 의신이었다. 그는 계모의 모함으로 죽음을 당한 히폴뤼토스를 되살린 죄로 제우스의 벼락을 맞아 죽어 신이 되었다. 소크라테스는 독약을 마시고 죽어가면서 그의 건강을 지켜준 의술의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잊지 않았다.
플라톤의 반문학론은 그의 『공화국』 제 10권에 나오는데, 세 가지로 요약된다. 문학은 거짓말이고, 모방의 모방으로 진리로부터 삼차 격리되었고, 열등원칙인 감정에 호소한다. 신들은 완벽해서 싸우지 않는데 싸운다고 한다. 침대라는 개념은 신의 것이고, 그것을 모방해서 목수가 침대라는 물건을 만들고, 화가는 그것을 또 모방해서 침대를 그린다. 그림은 물론이고 물건을 모두 부셔도 진리인 개념은 없앨 수 없다. 문학은 우등원칙인 이성이 아니라, 말려 죽여야 할 열등원칙인 감정에 물을 주고 그것을 키운다. 그래서 시인을 공화국의 지킴이 교육에서 추방해야 한다. 원래 그의 시인에 대한 반감은 희랍의 국민교육을 철학자가 아닌 문학자가 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고 한다. 삼국지연의가 중국에서 그러하듯이 호메로스의 서사시들이 희랍 사람들을 교육했다. 호메로스를 서기전 7세기나 9세기 사람으로 가정한다면, 그가 취급한 사건은 그의 시대에 벌써 300년이나 500년 묵은 옛 이야기였다. 일리움은 3000년 전, 서기전 1184년에 함락되었다. 그는 신재효가 판소리 다섯 마당을 그랬던 것처럼, 옛날부터 구전되어온 전설들을 집대성했다. 그의 두 서사시들은 오랜 세월동안 많은 사람들이 갈고 닦은 구비문학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국민교육을 담당하기 전에 국민으로부터 나왔다. 국민문학을 비난한 플라톤은 그는 검사고, 변호사가 그것을 옹호할 수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뒤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를 변호했다. 그는 그의 40 여년 선배인 플라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시학』에서 시의 본질을 이야기해서 선배의 반문학론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플라톤의 질문이 아니었더라면 그의 답변은 없었을 것이다. 예술은 진리와 직접 접촉한다. 역사는 있었던 것을 다루고, 문학은 있을 법한 일을 다룬다. 그럴 듯한 불가능이 그럴 듯하지 않은 가능보다 낫다. 사람에게는 모방본능과 조화본능이 있다. 현실을 재현하려는 노력은 사실주의이고, 한 부분을 빼거나 옮기면 전체가 현저히 손상되는 유기체적 짜임새의 아름다움은 예술의 본령이다. 조화로운 것에는 처음과 중간과 끝이 있다. 처음은 앞에 아무것도 없고 뒤에 무엇이 오고, 중간은 앞과 뒤에 무엇이 있고, 끝은 앞에는 있고 뒤에는 없다. 또는, 앞에는 없고 뒤에만 무엇이 있는 것이 처음이고, 앞 뒤에 무엇이 있는 것이 중간이고, 앞에만 있는 것이 끝이다. 비극은 연민과 공포로 그와 같은 감정들을 정화한다. 정화한다는 교정한다, 배설한다로 해도 좋다. 비극은 우리들을 조용하게 만든다. 그것은 우리들을 지식의 사닥다리를 한 단계 올라가게 한다. 앎의 끝은 해탈이다. 어떤 사람은 문학 이론이 아리스토텔레스 이래 한 발자국도 나아간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문학은, 예술은 우리들을 ‘거의 야만스런 마비’에서 구한다. ‘습관의 혼수’에 빠져 ‘세상의 사랑스러움과 경이, 다함이 없는 보물’을 ‘이기적인 근심의 막 때문에,’ 즉, 욕심 때문에, 시이불견, 청이불문, ‘가슴이 있으되 느끼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습관은 ‘가구를 삼키고, 마누라를 삼키고, 전쟁에 대한 공포를 삼킨다.’ 좋은 음악을 듣거나, 좋은 영화를 보거나, 좋은 소설을 읽으면, 눈이 뜨인다. 영혼이 높아지고 마음이 넓어진다. 그 동안 천박한 것에 집착했던 것이 후회된다. 풍진 세상에 뒹굴면 그런 깨달음은 오래 못 갈 것이다. 그러면 또 예술을 찾아라. 거의 모든 예술을 가짜라고 생각한 톨스토이는 그것을 창녀에 비교했다. 그가 예순여덟 되던 1896년에 펴낸 ‘예술은 무엇이냐?’에서 그는 예술의 세 가지 악덕들로 교회미신, 애국미신, 관능주의를 들었다. 로마의 지하납골당에서 핍박 받으며 예배를 보았던 원시기독교는 예수의 수난의 가르침을 간직했었다. 그 뒤 권력이 된 교회는 박해세력이 되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들 사이의 형제적 통합을 이루는 사해동포가 예술의 이상이다. 애국은 이것을 방해한다. 우리가 민족주의하면 남은 안 하냐? 그것은 힘이 없을 때 미덕이지, 강해지면 반드시 침략주의, 제국주의, 확장주의가 된다. 사해동포는 물 건너간다. 그는 볼쇼이 발레를 비난했다. 자연스럽게 걷지, 왜 발가락을 병신으로 만들며, 그것 하느라고 먹고 사는 것은 농부들과 노동자들에게 기생하냐? 그는 자연스럽고 단순한 예술이 예술이라고 믿었다. 종일 일하고 돌아와서 동네 빈터에 모여 노래하고, 춤 추고, 시를 읽으면, 그것이 예술이었다. 톨스토이는 단순과 단순화의 차이를 놓쳤다. 어떤 배우가 무대에서 자는 역할을 맡았다. 처음 며칠은 정신을 초롱초롱 차리고 열심히 자는 척했다. 사람들이 그가 참 잘 잔다고 칭찬했다. 마지막 날 피곤한 그는 진짜 잠을 잤다. 사람들이 그의 연기가 엉터리라고 비난했다. 무용수들은 자연스럽게 걸으려고 발이 병신이 되도록 피나는 연습을 했다. 톨스토이에 의해서 가짜임이 드러난 예술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뒤, 1925년에 오르테가 이 가세트에 의해서 비인간화했음이 밝혀졌다. 아름다운 여자 몸뚱이에 육덕이 없다. 굵은 금이 그녀의 운명을 보여준다. 삶으로부터 철저히 분리된, 자연스런 모습이 모두 파괴된 극단적인 추상화, 인간을 없애고 인간임을 보여주는 예술, 특히 미술은, 천재보다 못하지 않은 재능 없이는 불가능했다. 우선 집요하게 달라붙는 인간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어렵고, 그러고 나서 그것이 궁극적으로 인간의 작업임을 보여주는 예술적 노력은 더 어려웠다. 예술을 비웃고 부정하는 자살적 몸짓, 참칭을 거절하고 유희를 자처하는 겸손, 이것은 어디서 왔는가? 산업혁명 이후 브리튼에는 부자와 빈민, 두 국민들이 살았다고 하지만, 현대에는 두 인종들이 산다. 예술 감각이 있고 예술을 즐기는 극소수 인종과, 그런 감각이 없고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대다수 민중이 함께 산다. 민중은 어린이집 재롱잔치 같은 케이 팝이나 말춤을 즐기고, 그런 것들을 예술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그들이 모르는 소수의 예술을 압살할 필요가 없다. 그들의 무관심이면 그것을 죽이기에 충분하다. 플라톤의 흥분적 예술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화적 예술을 압도했다. 경위는 간단하다. 그들은 돈이 많다. 숫자가 돈이다. 수가 많으면 광고가 붙고, 광고는 바로 돈이다. 이것을 못 끌어오면 망하고, 끌어오면 발복한다. 수가 가치를 가져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들은 서로를 확대재생산한다. 자본주의가 뭣이냐? 거기서는 돈이 미덕의 범위를 넘어서 신의 경지에 이른다. 경제적으로는 물론, 도덕적 윤리적으로, 사회적으로 돈이 사람을 만든다. 가세트 이후에 발호하기 시작한 영상 매체가 자본주의와 결탁하여 이미 예술을 교살했다. 아직 안 했으면 지금 하고 있다. 세상은 돌고, 만물은 생긴다. 여욕무언, 천하언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