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공종구_평론가, 군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1957년생
저서 『한국현대소설의 윤리』 『한국현대문학론』 『한국 근,현대 작가,작품론』 『한국현대소설론』 등
채만식_소설가, 극작가. 1902~1950년
소설 『인형의 집을 나와서』 『탁류』 『태평천하』 『금(金)의 정열』 『아름다운 새벽』 『어머니』 『여인전기』 「레디메이드 인생」 「치숙」 등
▲ 평론가 공종구
공종구 ㅣ 1950년 지천명을 앞둔 이른 나이에 사바세계와의 인연이 다하여 지금은 하늘나라에 계시는 선생님께 먼저 문안 인사를 올립니다. 저는 1992년 선생님의 고향이신 군산에 자리하고 있는 군산대학과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일제 강점기 근대 작가들을 공부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공종구라고 합니다. 군산대학과의 인연은 선생님의 삶과 문학에 대해 본격적인 관심과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저에게 각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채만식 ㅣ 그렇군요. 나도 먼저 반갑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문학과 삶에 대해서 그렇게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져주시니 더욱 고맙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공종구 ㅣ 먼저 인터뷰의 실마리를 당시 주변 동료들의 인구에 널리 회자될 정도로 개성이 강했던 선생님의 성격에 대한 것에서부터 풀어 나가볼까 합니다. 당시 주변 동료들이나 문인들 사이에서 선생님은 ‘고드름’이나 ‘면도칼’ 또는 ‘불란서 백작’ 등의 별명으로도 불렸다고 합니다. 그 사실에 대해서 알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러한 별명들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선생님은 성격이나 기질이 매우 예민하고 바자위어 주변 동료들이나 문인들에게 상당히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요즘 유행어로 말하자면 선생님은 한마디로 전형적인 ‘까칠남’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당신 스스로도 자신의 성격이나 기질에 대해 ‘신경질 제 3기’로 규정할 정도이니 선생님의 성정은 꽤나 까다로웠던 모양입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의 성격이나 행동을 보면서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구절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이 선의인(善義人)’이오라는 『논어』 ‘학이’편(『論語』 學而篇)과 ‘미언불신(美言不信), 신언불미(信言不美)’라는 『노자』의 구절입니다.
▲ 채만식
채만식 ㅣ 나의 예민하면서도 까다로운 성격이 주변 동료들이나 문인들을 적지 않게 불편하게 했던 것 같군요. 막연한 짐작 차원에서라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런 별명으로까지 회자될 정도로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을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는 내가 젊은데다 교양과 수양이 부족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모든 게 다 내 마음속의 생각이나 감정을 분식하거나 에둘러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곧이곧대로 말해야만 하는 강박 비슷한, 타고난 내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어나 노자의 구절을 들어 그러한 나의 성격이나 기질을 이해해주니 민망스럽기조차 합니다.
공종구 ㅣ 그래도 선생님의 그러한 직선적인 성격이나 기질, 부정적인 대상이나 싫어하는 대상을 보면 적당하게 타협하는 일이 없이 집요할 정도로 끝까지 밀어붙이고야 마는 기운 등이 선생님 문학의 담론표지로 많이 거론되는 풍자문학의 중요한 바탕이나 원천을 이루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선생님의 대표작이자 일제 강점기 문학의 정전의 반열에 올라선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과 같은 부정적인 인간 군상에 대해 신랄한 야유와 가차 없는 풍자의 십자포화와 융단폭격을 퍼붓는 서술자의 태도를 보면 자신이 신봉하는 종교적 대의를 위해 성전에 나서는 십자군의 결기 비슷한 종교적 아우라마저 느끼게 됩니다. 『태평천하』의 그러한 서술 태도에는 선생님의 성격이나 기질과 같은 요인들이 적지 않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채만식 ㅣ 그렇게 보니 그런 것도 같습니다.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하자면, 당시 브륀티에르와 함께 식민지 조선의 비평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 비평가 가운데 이폴리트 아돌프 테느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종족’, ‘장소’, ‘시기’를 문학 텍스트 해석의 3대 요소로 정식화한 비평으로 잘 알려진 그의 비평 이론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어느 정도 공부를 좀 했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해석하거나 평가할 때도 그의 이론을 적절하게 응용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이론이 나의 작품에도 적용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을 해보지 못했네요. 그가 문학 텍스트 해석의 3대 요소로 정식화한 것 가운데 집단적인 개념인 종족의 개념적 내포와 외연을 확장하거나 개인적인 개념 차원으로 전유하면 한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도 포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성격이나 기질 가운데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의식의 통제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저하게 미워하거나 싫어했던 부분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고, 그러한 성격이나 기질이 나의 문학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는 해석 또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공종구 ㅣ 선생님의 문학에 대해서는 조금 후에 다시 본격적으로 이야기 하도록 하고요, 선생님의 생애에 대한 부분 가운데 반드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점 한 가지만 더 여쭙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의 결혼에 대한 부분입니다. 선생님 입장에서 볼 때 결혼은 정말로 피하고 싶은 주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결혼에는 결코 드러내고 싶지 않은 내밀한 개인사와 가족사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선생님의 프라이버시에 관련된 문제라 매우 조심스럽고 따라서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결혼 문제는 선생님의 생애는 물론이고 문학 지형에서도 결정적인 변곡점을 형성할 정도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선생님은 중앙고보에 재학 중이던 1920년 19살의 나이에 인근 마을인 함라 출신의 1살 연상인 은선흥 씨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결혼 관련 자료들을 보게 되면 그 결혼은 거의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나 취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그 결혼에 대해 선생님은 불만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 결혼은 안타깝게도 행복한 결혼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고, 그 거리는 유명을 달리하는 순간까지 선생님의 삶에 무겁고도 어두운 그늘을 드리운 것으로 보입니다. 은선흥 부인과의 사이에서 무열과 계열 두 아들을 보게 되지만 학업이다 직장이다 해서 실제로 결혼 생활을 유지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당신의 마지막 직장이던 조선일보 퇴사와 함께 전업작가의 길을 선언하던 1936년 선생님은 개성으로 삶의 거처를 옮겨가면서 은선흥 부인과는 법률혼 관계만 유지하면서 실질적인 부인의 역할은 김시영 씨가 맡게 됩니다. 아무튼 선생님은 그 결혼으로 인해 아버지에 대해서는 원망과 피해의식을, 은선흥 부인과 두 아들인 무열과 계열에 대해서는 죄의식과 회한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들은 선생님의 문학에서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에 대한 대결의식의 모티프를 통해 반복적으로 변주되면서 선생님 문학의 기원을 형성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채만식 ㅣ 부인 은선흥과 두 아들에 대해서는 지아비로서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죄책감과 회한으로 인해 지금도 가슴이 아프고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결혼을 하던 당시는 그랬습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는 가부장의 전제적 권력을 축으로 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 권력과 당사자 결정권을 주장하는 청춘남녀들의 자유연애 및 자유결혼 담론 권력이 팽팽하게 대치하면서 전선을 형성하던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나도 그러한 상황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고요. 더욱이 나는 그 당시까지도 전통적인 질서와 규범에 갇혀 있던 고향과 가부장의 굴레를 벗어나 경성과 동경 유학을 통해 이미 근대적인 지식과 규범으로 무장된 근대적 주체로 성장해가고 있었습니다. 근대적 주체로 성장해가고 있던 나에게 당사자의 의견은 거의 반영되지 않은 채 가부장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성사되는 전통적인 결혼제도는 근대적 주체의 개성과 자유의지를 억압하는 폭력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운명 비슷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당신 아니면 못살아 결혼 하고서 당신 때문에 못살아 갈라서는 부부도 부지기수 아닐까요. 그리고 역으로 내가 결혼하던 당시와 같지는 않겠지만, 지금도 부모님의 결정에 따라 중매결혼을 하고서도 아무 탈 없이 행복하게 잘사는 부부들도 적지 않을 테니까요. 자기 합리화나 변명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살다 보면 피해갈 수 없는 운명 비슷한 게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져보게 되는데 나와 부인 은선흥과의 만남과 결혼 또한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그렇지만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부인 은선흥과 두 아들에 대한 죄책감과 회한은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도록 아픕니다. 그것도 인생 아닐까요?
공종구 ㅣ 이제 본격적으로 선생님의 작품에 대한 탐색으로 들어가 볼까 합니다. 선생님의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흥미로운 법칙성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선생님께서는 작품을 통한 상징적인 처벌이나 상상적인 복수를 매개로 식민지(자본주의) 근대와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와의 대결의식이나 저항의지를 보여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두 제도에 대한 대결의식이나 저항의지는 반복강박의 양상을 보이면서 선생님 문학의 기원이나 원천을 이루고 있어 보입니다. 선생님의 소설에는 재산 축적만을 생의 유일한 목적으로 추구하는 물질적인 욕망의 화신이나 수전노형 인간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 『탁류』의 장형보, 『태평천하』의 윤직원 영감, 「수돌이」의 강참봉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들에 대한 선생님의 처벌이나 응징 의지는 아주 집요하면서도 가차가 없어 보입니다. 또한 선생님의 소설에는 가솔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부장의 책임이나 의무에 대해서는 소홀하면서도 가부장으로서의 전제적 권력이나 권위에는 충실한, 그 결과로 가솔들, 특히 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정주사나 심봉사와 같은 무능한 가부장의 인물들도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응징이나 처벌 의지 또한 상당해 보입니다. 이러한 서사 설정을 통하여 선생님은 이윤추구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는 자본의 논리와 시장의 원리를 축으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시스템이나 메커니즘이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자본주의) 근대와 가부장의 전제적 권력을 일방적으로 강제하여 식민지 조선의 청춘남녀들의 개성이나 자유의지를 억압한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에 대한 대결의식이나 저항의지를 보여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채만식 ㅣ 충분한 설득력과 근거를 지닌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독설록」이나 「청춘남녀들의 결혼 준비」라는 산문들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야만의 얼굴을 한 제도를 두 가지로 보았습니다. 하나는 자본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시장이 하인으로서는 훌륭하지만 주인으로서는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모든 것을 등가적 교환의 대상으로 도구화하는 교환가치가 지배하면서 인간의 가장 소중한 것들이 천더기 신세로 전락하거나 경멸당하는 그런 세상이 되어서도 곤란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1930년대 접어들면서 식민지 조선사회는 자본의 논리와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 질서와 체계가 본격적인 터를 잡아나가기 시작하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이나 행동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쉽게 말해, 속물적인 욕망이 사람들의 의식이나 행동을 장악하면서 돈이라면 악마와의 거래도 마다하지 않는 황폐한 사회로 타락하기 시작하는 것이었지요. 나는 당시 그러한 변화에 대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분노했었고 그러한 분노가 수전노형 인간들에 대한 가차 없는 처벌이나 응징으로 투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통적인 가족제도 및 결혼제도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나의 개인사도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겠지만, 「청춘남녀들의 결혼 준비」라는 산문에서 밝힌 바와 같이 나는 가부장의 전제적 권력을 축으로 유지되는 전통적인 가족제도와 결혼제도를 ‘무서운 죄악’으로까지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아내를 맞이한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며느리를 본 것이다’, ‘피차에 애정은 고사하고 코빼기도 보지 못한 남녀를 억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은 가축에게 강제 교미를 시키는 목장 주인이나 할 일이라는 것이다’ 등과 같은 말들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당시 식민지 조선 사회에서 당사자의 의사나 취향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가부장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한 결혼으로 인해 불행한 삶을 감당하고 감내해야만 했던 청춘남녀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나는 당시 그러한 가족제도와 결혼제도에 대해 불만과 분노가 적지 않았고 그러한 불만과 분노가 무능한 가부장형 인간들에 대한 처벌이나 응징으로 투사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공종구 ㅣ 1932년 선생님은 몇 차례의 지상 논전을 통해 현인 이갑기와 동반자 논쟁을 벌입니다. 연장선상에서 카프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선생님의 평론이나 비평문을 보면 당시 카프 진영의 최고 작가로 평가받고 있던 이기영의 작품에 대해서는 가혹하리만치 혹독하거나 인색한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 또한 「속임 없는 고백, 나의 참회-잡지 기자 참회」라는 글을 보면, 선생님께서는 1926년 동아일보를 퇴사하고 1929년 《개벽》사에 취직해 다시 상경할 때까지 실직 지식인으로 고향에 머물렀던 3년의 기간을 “일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장 크고도 결정적인 시기였다”라고 하면서 엄청나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그 근거로 선생님은 당시 독서체험을 통해 습득한 크로포트킨이나 마르크스의 저작을 들고 있습니다.
채만식 ㅣ 알다시피 나를 동반자 작가의 범주에 넣고서 이러저런 해석이나 평가를 했던 측은 이갑기를 선봉으로 한 카프 진영의 논객들이었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문학의 본질은 리얼리즘이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리얼리즘 미학의 핵심은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라는 명제가 되겠고요. 그런데 내가 보기에 당시 계급 문학을 추구하면서 문학의 운동성과 목적성을 중시했던 카프 진영의 작가들이 지닌 문제의 핵심은 ‘공식주의’와 ‘관념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문학을 보면 거의 대부분 식민지 조선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기보다는 그들이 선험적으로 지니고 있던 이념적 도식을 가지고서 현실을 재단하는 공식주의의 오류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보였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인물이나 환경 등에서 리얼리티가 결여될 수밖에 없었고요. 게다가 언어예술로서 문학의 핵심 질료인 문체와 문장의 밀도 또한 그리 높아 보이지 않아 보였고요. 「조선문단 근상」이라는 평문에서 이기영의 작품에 대해 “만일 이름 없는 문학청년이 투고를 했더라면 꼭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감들이다…… 어휘는 심하게 모자라 가난한 인쇄소와 같다…… 빽빽한 문장이 그나마 구상도 안 되어 어느 것은 바로 활동사진 변사의 입내다”라고 혹평을 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입니다. 아무튼 단체 활동을 기휘하는 나의 자유주의적인 성향도 한몫 했겠지만, 근본적으로 문학의 미학적 완성도를 중시하는 입장의 나에게 카프는 도저히 참여하기 어려운 단체였습니다.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문학하고는 맞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렇지만 심정적으로는 카프가 문학을 통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두 가지 지향인 민족해방과 계급해방의 가치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말하고 싶네요. 크로포트킨이나 마르크스의 저작에 대한 의미부여 또한 같은 맥락에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습니다.
공종구 ㅣ 네, 그렇군요. 이제 선생님의 입장에서는 가장 뼈아픈 질문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름 아닌 대일협력에 관련된 사항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자작안내」라는 글에서 “문학을 고려자기나 사군자와 같이 치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문학이 작으나마 인류역사를 밀고 나가는 한 개의 힘일진대, 한인(閑人)의 소장(消長)거리나 아녀자의 완롱물에 그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나는 목이 부러져도 주장하는 자”라는 문학관을 천명할 정도로 작가의 역사의식과 문학의 존재 이유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일제 말기 선생님은 주로 시사 평문이나 논설을 통해 일제 군국주의의 총동원체제에 협력하는 글들을 적지 않게 남기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선생님은 「민족의 죄인」에서 “용맹하지도 못한 동시에 영리하지도 못한 나는 결국 본심도 아니면서 겉으로 복종이나 하는 용렬하고 나약한 지아비의 부류에 들고 만 것이 있었다”라는 고백을 통해 당신의 과오를 자탄·반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자신의 대일 협력 행위를 ‘씻어도 깎아도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죄의 표지’로 인식할 정도로 극심한 죄의식에 시달리던 당시 선생님의 내면풍경에 가장 근접한 육성이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해방 이후 자신들의 대일 협력에 대해 반성하거나 참회의 기록을 남긴 경우는 선생님이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고백과 참회를 하기까지에는 적지 않은 갈등과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선생님의 그러한 고백과 참회는 정당한 이해나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부에서는 선생님의 그러한 고백이나 참회를 어설픈 변명이나 자기합리화로 치부하기조차 합니다.
채만식 ㅣ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모두 다 내가 뿌린 씨앗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민족의 죄인」에서 내가 고백하고 있는 참회와 반성의 진정성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공종구 ㅣ 이제는 선생님과의 가상 인터뷰를 마쳐야 할 시간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고향인 이곳 군산에서는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기리고 문학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채만식 문학관이 건립되어 운영 중에 있고요, ‘군산시채만식문학상’을 제정 시행하고 있습니다. 채만식 문학관과 문학상을 통해 선생님의 문학정신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오늘 가상 인터뷰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