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성호_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64년생
평론집 『침묵의 파문』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등
최근 극장가를 강타한 뮤지컬 영화 <레 미제라블>의 파장은 곧바로 서점가로 이어져 빅토르 위고의 소설을 찾는 이들의 예상 밖 확장을 불러왔다.
물론 영화가 상영된 것이 대선 정국이었다거나 한국 사회를 읽는 대표 독법 가운데 하나인 계층적 사유가 한 몫 했다거나 하는 진단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미 여러 차원에서 향유되고 소비된 고전이 흥행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고 정평이 난 뮤지컬 장르로 히트를 친 것은 퍽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거대한 작품은 기독교적 독해를 통해 자베르를 율법의 상징으로 장발장의 변모와 그 후의 인생을 복음의 상징으로 읽을 수도 있고, 사랑의 위대함을 기리는 일대 연애소설의 명편으로 읽을 수도 있고, 혁명으로 대변되는 공동체의 실천 의지가 근대 프랑스 사회를 어떻게 견인해왔는가를 실증하는 역사 드라마로 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도 저 ‘비참한 사람들’의 가장 구체적이고도 풍부한 삶의 보고서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이 고전을 재해석하는 후속 문화의 힘이요, 끊임없이 장르 간 교섭을 통해 새롭게 재탄생하는 고전만의 고유한 파생적 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고 있듯이, 최근 우리 주위에 미만해 있는 쟁점 부재의 속성은 곧바로 우리에게 ‘근원(기원)’ 혹은 ‘고전(정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미 검증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풍부한 문제성을 내장하고 있는 문학의 여러 기원들을 다시 탐색하고 그 의미를 따져 묻는 태도를 통해 우리는 쟁점 위주의 논쟁사가 빠뜨리고 지나갔던 작품 읽기의 정치함이나 작가의 여러 면모에 대한 입체적이고 구체적인 해석과 평가에 진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학회 쪽을 돌아다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국연구재단의 등재(후보)지 정책 및 학술대회 지원 이후 개별 학회 모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활황을 맞고 있지만, 빈번하게 치러지는 학술대회를 달구는 뜨거운 쟁점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대개는 문학사의 쟁점이 되어왔던 고전적 논의들을 다른 시각에서 재조명하거나, 아니면 평단에서 이루어지는 개념 논의들을 근대문학사에 매개해보는 선에서 연구 방향이 머물러 있다.
이 같은 현상을 지난 시대와 비교해보면 그 쟁점 빈곤의 외관은 더욱 뚜렷해진다. 1960~70년대의 순수·참여문학론이나 민족문학론, 1980년대의 노동문학론, 농민문학론, 민족문학 주체논쟁, 1990년대 이후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동아시아 논쟁, 신세대문학 논쟁, 근대성 논의 등 화려한 쟁점 목록에 비추면 요즘 제기되고 있는 미학적 논의들은 쟁점의 요목들이 미미하기만 하다.
그래서인지 문학 연구의 기율이 미시사를 중시하는 풍속사적 실증주의로 기울거나 아니면 탈식민성, 페미니즘, 정치(성) 등 일련의 이념이나 개념에 한국 문학의 지평을 연루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개개 텍스트에 대한 충실하고도 꼼꼼한 읽기도 방법론 부재 시대의 유력한 대체 방식이 되고 있다.
결국 우리는 기원이나 정전을 다시 상상하고 되읽으면서 그것을 현재형과 접속하고 매개하는 이른바 ‘고전 흥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시민대학이라고 부르는 모임에서도 마르크스나 공자, 사마천 같은 고전들이 새삼 활황을 맞고 있다는 점도 지난날의 위대한 사유들을 오늘에 끌어오려는 지적 충동을 낱낱이 입증한다. 물론 이는 하나의 강력한 담론 체계가 타자적 언어들을 억압하고 단일한 중심 권역을 형성했던 시대에 대한 강렬한 반성의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기도 하다. 지금 시대가 다양한 문화 간의 충돌과 교섭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진영과 이념 사이에 개재해 있던 구획도 느슨해져가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그러한 반성과 재구축의 열정은 가치 있는 고전들을 준별하고 새롭게 재해석하려는 지적 과제를 끝없이 부여해갈 것이다. 하지만 고전 위주의 독서나 사유가 반드시 대안적 긍정성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 터이다. 오히려 그것은 문학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인 동시대성의 핍진한 탐구라는 근본적 지반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최근 활발하게 귀환하고 있는 고전의 되읽기 경향은 반가운 일이자, 끊임없이 그 양면적 의미를 되물어야 할 일이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