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1988년 8월 30일에 발간된 『홀로서기』 중판본에는 당시 청하출판사 대표이자 문학평론가였던 장석주 씨의 글이 실려 있다. 이 글은 『홀로서기』가 어떻게 출판되었고 왜 그토록 대중적 반응이 컸는지를 소상하게 밝힌 글인데, 그 중에 한 대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수집된 정보들을 분석해 보고서야 비로소 우리는 『홀로서기』에 대한 독자들의 인지도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홀로서기』에 대한 독자들의 인지도는 이 책이 출판되기 3, 4년 전부터 폭넓게 확산되기 시작했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홀로 서기」가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인 것은 1981년도 서정윤씨가 영남대학교 재학 시 《영대문화》라는 대학교지에 이 시를 처음 발표하고부터이다. (중략) 여학생들의 편지에 인용되고, 방송가의 전파를 타면서 이 시는 엄청난 독자층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비공식문화 유통 경로를 통해 「홀로 서기」가 전파되는 과정에서 작자 이름조차 바뀌거나 지워진 상태에서 그것의 유통범위는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중략) 종로서적 시집 판매코너 담당자의 증언에 의하면 『홀로서기』는 3년 전부터 독자들이 찾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시의 필자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다만 그런 시집이 아직 나와 있지 않다는 사실만 확인해 주었을 뿐 속수무책이었다.”

인용한 내용처럼, 발간 직후 약 50만부가 팔린 『홀로서기』 현상의 배경에는 작품성, 문단적 후원, 출판사의 광고나 홍보 등 어떤 일반적인 요건도 개입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오직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된 「홀로 서기」라는 단 한 편의 시에 대한 독자층이 그대로 시집의 판매부수로 전환된 것이다. 1987년 6·10 시민항쟁 직전인 같은 해 3월 25일에 초판이 발행된 이 시집의 이런 놀라운 영향력과 파장은 당시의 출판계 입장에서 보자면, 6·10 민주화 투쟁만큼이나 돌발적이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혹자는 이 시의 비정치성을 지적하면서 이 시집의 흥행이 당시의 주류였던 ‘민중시’와는 무관하다는 점에서 시대적 프리미엄을 얻지는 않았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홀로 서기」의 성공 원인 중 하나가 1987년 당시의 이런 ‘전환적 분위기’에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시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던 ‘대학생층’이 「홀로 서기」의 중심 독자층이었다는 점은 이 둘 사이의 밀접한 상관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이다.

개인적인 체험을 얘기해 보면, 내가 「홀로 서기」를 처음 읽었던 것은 1985년 4월이었다. 작자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한편의 시를 어설픈 첫사랑의 시작과 함께 읽게 되었고 나는 이 시 자체를 그녀의 ‘고백’으로 받아들였었다. 그리고 2년 후 이런 저런 이유로 헤어지게 되었을 때, 그녀는 나에게 또 「홀로 서기」를 편지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이 시를 ‘이별’의 통보로 받아들였다. 어쩌면, 인용한 글의 내용처럼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의 이야기가 바로 「홀로 서기」의 독자들이었던 대학생들의 체험이자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당시 시를 쓰는 문청이었던 내게 이 시는 결코 잘 쓴 작품이 아니었다. 그러나 감상적이고 관념적인 말장난 같은 이 시의 ‘서투름’이 내게는 오히려 더 쉽게 마음을 끄는 요인이 되었던 것 같다. 마치 내 나이 또래의 대학생이 쓴 것 같은 느낌이 있었고 실제로 이 시의 작자는 모르지만 《영남문화》라는 대학 교지에 실렸던 작품이라는 얘기도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에는 당시 기성의 어떤 작품에서도 다루지 못한 대학생들의 ‘성장통’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 시를 ‘성장시’라고 생각한다.

이 시에는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까지 오는 동안 내내 규격화된 집단 교육을 받아온 세대의 ‘자기 찾기’에 대한 갈증이 담겨 있고 또 집단에 소속되지 않으면 늘 불안해하는 ‘자아’에 대한 연민과 위로, 다짐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남녀 교제가 자유롭지 못한 사춘기를 보낸 세대에게 이 시에 담긴 사랑의 메시지는 무척이나 절절한 점이 없지 않았다. 미숙하기에 서로를 구속하거나 의존하기에 급급했던 ‘한 세대의 사랑’이 만남에서 헤어짐까지 이 시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홀로 선 둘이가 만나는 것’이라는 성숙에 대한 열망은 당시 대학생들의 ‘자아’를 대변하는 것이었고 또 동시에 실연의 상처를 이겨 내는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현상은 민족, 계급, 민중, 자주, 평등과 같은 구호를 외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진정한 홀로 서기’가 무엇인지 고민하던 당시 대학생들에게 상당히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재미있는 것은 이 시가 당시에 사랑을 고백할 때도, 그리고 사랑이 깨졌을 때도, 자신을 표현하거나 자신의 변심을 정당화하는 방법으로 모두 쓰였다는 것이다.

이 시의 앞부분은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고백’이고 뒷부분은 사랑의 상처를 이기고 홀로 서는 과정으로 서술되어 있다. 이 점이 1에서 7까지 될 만큼 긴 장시인 이 시가 많은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이다. 사랑할 때도, 실연을 당했을 때도 「홀로 서기」는 읽혀졌다. 결국 시집 『홀로서기』의 성공은 오직 단 한 편의 시 「홀로 서기」에 대해 한 세대의 감수성이 너무나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여타의 작품이 때문이 아니라 「홀로 서기」라는 한 편의 시를 통해 자신의 ‘성장통’을 바라보았던 한 세대의 강렬한 체험이 『홀로서기』의 신화를 만들어 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