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석 _평론가. 인하대학교 인문한국 교수. 1969년생
저서 『아포리아의 별자리들』 『경험주의자의 시계』 『비화해적 가상의 두 양태』 등
아이들은 왜 아픈가?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 어쩌면 나는 길을 잘 못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학이 감당해야 할 질문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실은 질문대신 물리적인 고통을 덜어주는 일을 택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꿈을 꾸었던 적도 있었다. 그러나 노신이 센다이에서 의학대신 문학을 택했던 것이 사후의 알리바이가 되어 주었다……고 생각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철들기 전부터 몸속을 배회하던 질문은 사라지기는커녕 언제고 귀환한다. 이성복의 시 「왜 이렇게 가슴 뛰느냐고」를 읽고 무언가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글은 등단작이 되었다.
아이 적에는 오후 수업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한두 달 학교에 가지 못하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 흔한 소풍도 매년 겪는 소외의 일환일 뿐이었다. 친구들과의 시간이 아니라 친구들로부터의 시간을 건사하는 것이 온 힘을 기울여 마땅한 일이던 날들이었다. 아마도 소리로서 문학이 움트던 곳이 있다면 텅 빈 벽에 공을 튕기며 흘려보던 시간 속 어디쯤이었을 것이다. 공이 벽에 부딪치는 소리, 튕겨져 나오며 바닥을 퉁기던 소리가 저 질문의 공간적 버전이었다. 그러니 “사랑의 하느님/ 세상엔 왜 악이 존재합니까?”(화이트헤드)를 “아이들은 왜 아픈가?”로 고쳐 묻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과 고통에 대한 이신론적 이해도, 그것이 보다 높은 곳의 원리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는 합리주의자들의 대범한 자구책도 구체적인 고통에 대해서는 무력할 뿐이었다. 종교 없이 저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것은 조금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세평이 갈리는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에 시선이 오래 머물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비평가로서 이례적인 톤을 숨기지 못 하고 이성복의『아 입이 없는 것들』과 김애란의 작품에 몰두했던 것은 실은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 오래된 질문 앞에서는 비평가로서의 직업윤리도 무색했음을 이제야 고백해야겠다. 누구나 그런 기관을 지니고 있다. 조금만 스치고 지나고 매번 삶의 중심을 환기하게 되는 불을 누구나 품고 있다. 내게는 저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아름다운 것에 몰두하는 마음이 그로부터의 도피인지 해결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알 수 없다. 윤리적 질문과 당위적 가치에 곁을 주지 못했던 것이 비겁함인지 천성인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은 한사코 아름다운 것에만 머물렀음도 더불어 토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로서는 그 어떤 명제나 당위적 정언보다 이미지에 매혹되는 순간의 지복을 포기할 용기가 없다. 바슐라르의 ‘이미지-폭탄’이라는 표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던 것은 저 질문에 몰두하는 마음과 이미지에 매혹되는 철없음이 실은 배리되는 것이 아님을 직관적으로 깨닫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세계를 악하게 보는 법’을 주창했던 에밀 시오랑의 독설이‘물에 빠진 개는 두들겨 패라’던 노신의 변설과 행복하게(?)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된 것도 아름다움에 미혹되는 순간들이 마음속에서 국경들을 계속해서 변경해가기 때문이었다. 조연호와 진은영의 시를 공히 제 방식으로 구부려 향수할 수 있는 것 역시 이미지로 사유하며 경계를 허무는 그들의 전진에 대한 우의 때문이다.
그러니 어쩌면 내게 문학을 한다는 것은 이율배반과도 같은 일인지도 모른다. 철학을 거슬러 온 문학의 역사를 다시 해결이 요원한 질문 앞에 세우고 부자유와 철권이 복권되는 시기에 아름다운 것에, 이미지에 매혹되는 일은 청춘시대의 신념에 대한 자기부정이겠기에 그러하다. 시민과 시인을 일의적으로 정합시키지 않는 태도가 오히려 문학의 정치성을 실현하는 첫 걸음이 되리라는 주장을 반복해온 것은 이율배반과 자기부정을 논리적으로 수습하려는 미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되묻건대 그 뿐일까? 자연과 자유가 미적인 것 속에서 정합되리라는 칸트적 요청과 미적인 것을 통한 무한도야를 주장한 프리드리히 실러의 비전도 물론 있다. 하지만 그것은 형이상학의 몫이다. 널리 알려져 있듯 문학은 구체적 보편성의 세계를 수립하는 운동 때문에 문학이다. 언제나 내게 문학은 ‘아이들은 왜 아픈가?’ 하는 질문과 아름다움에 대한 매혹의 간극을 지켜보는 것에서부터 발생한다. 질문과 매혹의 이율배반이 내 조그만 사유의 스승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