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지난 2월 2일 ‘펑크록의 대모’라 불리는 미국의 록가수 패티 스미스가 내한공연을 했다. 서너 달 전에는 그녀가 직접 자신의 젊은 날을 기술한 『저스트 키즈』(박소울 옮김, 아트북스)가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그 책은 그녀의 ‘예술적 혈맹’이자 연인이었던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와의 추억을 중심으로 젊은 시절을 돌이키는 내용이다(둘은 1946년 생 동갑내기다).

책은 그녀가 록 아티스트로 막 성공을 맛보기 직전에 끝난다. 패티 스미스는 그 책을 씀으로써 메이플소프와의 오래된 약속(메이플소프는 1989년 사망하기 직전, 패티 스미스가 자신들의 얘기를 써주기를 바란다고 부탁했다)을 지켰다. 나름 패티 스미스에게 ‘영혼의 초상’(민망한 표현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을 확인하기도 하는 나는 『저스트 키즈』는 읽었지만, 공연은 보지 못했다. 나는 의외로(?) 공연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수년 전 영국의 기타리스트 제프 벡이 내한공연 왔을 때, 아는 동생의 손에 이끌려 공연장에 갔다가 공연 시작 30분 만에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진 적이 있다. 공연이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장인의 공력이 그대로 느껴지는 연주력에 대한 찬탄도 잠시뿐, 그저 내가 당장 올라가서 공연하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열망에 스스로 질려버린 탓이었다.

▲얼마 전 내한공연을 가진 미국의 록가수 패티 스미스. 자신의 삶을 통해 시와 노래의 합일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진짜 시인’의 풍모를 지녔다.

패티 스미스는 원래 시인이었다. ‘원래’라는 의미는 그녀가 록 뮤지션이 되기 이전에 이미 시적 에너지와 감수성을 스스로에게서 발견해냈었다는 뜻일 뿐, 현재 우리나라의 문인 등단제도 비슷한 무슨 정식 통과의례를 거쳤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녀는 1960년 후반, 뉴욕의 록 클럽에서 자작시를 낭독하는 것으로 예술가의 삶을 시작했다. 그녀는 소녀 시절부터 시와 그림, 사진, 음악 등을 분방하게 향유하는 가난한 예술가 지망생이었다. 그녀가 젊은 시절을 살았던 뉴욕의 모습은 근 30년의 세월을 지나 내가 젊은 시절(지금은 늙었나?)을 탕진(?)했던 홍대 거리와 많이 유사하다. 그러니 『저스트 키즈』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에게서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몇몇 예술가 친구들의 모습이 떠오른 것도 그다지 억지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떤 혈연적 유대나 실제 교류와는 무관하게, 과거의 어느 격조한 시공에서 자신만의 삶의 원적을 발견해내는 것은 보잘 것 없는 일상을 충만하게 하는 자그마한 주술일 수도 있다. 진정한 삶은 ‘지금’의 바깥에 있거나, 시간의 더께가 가려버린 망각의 터널 깊숙한 곳에 어떤 원액의 형태로 발굴되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걸 캐내는 게 시의 본원적 임무라 여기는 편이다. 그런데 과연, 새삼스럽게, 시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게 무엇인지, 아직도, 예전보다 더 모른다. 늘 같이 붙어살다가, 그래서 아무 의심도 자각도 없이 무던하게 지내다가 문득 정체가 묘연해지는 어떤 사람을 대하는 것 같기도 하다. 때로 그건 시체와 대면한 기분을 느끼게도 한다. 왜 하필 시체일까.

언젠가 자다가 벌떡 일어나 컴퓨터를 켜고 시를 쓴 적 있다. 그때의 기분을 말하라면, 말할 때마다 달라진다. 어떨 땐 넓은 평원을 혼자 달리는 것 같았다고 얘기하기도 하고 어떨 땐 햇볕이 내리쬐는 바닷가 같은 데서 혼자 울고 있는 기분이었다고도 말한다. 가만히 앉아 있는데 땅바닥이 한없이 주저앉는 상태가 떠오르기도 하고, 온몸이 기체처럼 떠올라 가뭇없이 사라지는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시는 꽤 길게, 잠깐의 머뭇거림도 없이 빠른 속도로 쓰여졌는데, 두어 시간이 순식간에 지난 것 같다가도 삼십 분이 채 안 걸린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정확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단지, 삶의 모든 순간들과 마찬가지로 영원히 복기될 수 없는 최초이자 최후의 한 순간이었을 뿐이다. 설령 그 비슷한 순간이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 당시의 몰입과, 흥겨운 일탈 심리와, 통상 개념과는 다른 시간의식 따위가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저, 결과적으로 돌이켰을 때, 시 쓰기의 최고 상태였다는 것만 분명하다. 그것은 귀중하고 흥분되는 만큼, 자주 찾아오는 건 아니다. 어떤 의식적 노력으로 다시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막연히 기다린다고 해서 그리운 옛 애인처럼 다시 찾아오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 한번 찾아오는 죽음과도 같기 때문이다.

처음엔 어떤 문장이 떠올랐다. 맥락 없이, 흡사 전체 내용과는 무관하게 뜬금없이 뇌리를 붙든 광고문구나 넋이 빠진 상태에서 허랑하게 되뇌는 바보의 주술처럼. 그 순간, 잊고 있던 기억이나 전에는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은 생각들이 마구 뒤섞이면서 몸이 달아올랐다. 문장이 처음 발원한 동기나 원인에 대한 논리적 해명이나 분석 욕구 따위는 끼어들 계제가 없다. 나는 다만 일어나 앉았고 최초에 떠오른 문장을 적어가면서 그것의 꼬리를 물고 더 많은 문장들을 자연발산적으로 이어나갔을 뿐이다. 무엇을 말하고, 어떤 상태를 묘사하고, 누구에게 전하고자 하는 마음 따위는 거기 없었다. 단지, 손가락이 움직이고, 감각이 확장되고, 문장이 부풀고, 다시 그것들에 반응하고, 쓰여진 문장들을 통시적으로 일별하는 ‘또 다른 자아’가 텍스트 속에서 확인되었을 뿐이다. 그것은 일종의 연주와도 같았다. 동시에 춤이나 나와 나 아닌 다른 자들(그들은 누굴까?)이 집단으로 외쳐대는 합창과도 다를 바 없었다. 연주자와 감상자가 한 몸에 존재하면서 서로를 견인하고 추동하는 자기 자신과의 끝 모를 섹스. 그러다가 이내 둘 모두가 동시에 사라지는 환멸과 환희의 동서(同棲). 내게 시와 노래는 그렇게 겹친다.

시의 운율과 노래의 음률은 어떤 기계적 정합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니다. 고작 말의 어미를 운에 맞춰 정격화하거나 어절을 노래의 마디에 정박으로 꿰어낸다고 해서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시가 되는 건 아니다. 설사, 그렇게 만들어진 노래나 시가 있다고 해서 문학적 의미에서의 ‘시’와 음악적 관점에서의 ‘노래’ 사이의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졌다고 말하는 것도 우습다. 정말 시와 노래가 한 몸에서 발원했고, 그것들의 원형질이 불가분의 관계라면 시와 노래는 각자의 방향에서 스스로의 형식 자체에 몰두하며 서로를 견지하고 확립한다. 다시 말해 ‘시 같은 노래’나 ‘노래 같은 시’는 관습적이거나 형식적 구분 안에 서로를 옭아맨 식자들의 편견이나 동경의 소산일 뿐, 어정쩡한 형식적 조합으로 합의 볼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는 소리다. 노래는 노래 자체의 힘과 적실성에 의해 시의 에너지를 때로 함유한다. 마찬가지로 어떤 시가 노래의 경지에 달했다는 건 그것을 발산하는 자의 생의 리듬이 그 자신만의 유연한 독보성을 스스로 보지해냈다는 의미다.

시와 노래의 구분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시인이 노래한다’라고 했을 때, 그 ‘노래’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목소리(문자 텍스트에도 독자적인 음성과 질감이 존재한다)로 자신이 보고 느끼고 깨달은 세계를 드러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티 스미스가 시인의 계관을 부여받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만의 언어를 자신 안에서 가능한 음악적 형식으로 표출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외, 그녀가 쓴 시의 문학적 성과와 가치는 또 다른 범주에서 운위되어야할 부수사항일 뿐이다.1) 윙윙대는 일렉트릭 노이즈든, 사물놀이 가락이든, 그도 아니면 심야에 깨어나 두드려대는 컴퓨터 자판 소리든 모든 물질적 음의 체계와 리듬들은 그 어떤 언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품 넓은 영원의 진동을 내재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음악은 도처에 산재한다. 그 어떤 언어적 형식을 빌려서든 영혼의 물리적 자장과 그 음파를 적어나갈 수 있다면, 시 또한 중뿔난 문학적 식견과 지식 바깥에서 그 스스로 만개한다. 시든 음악이든, 만들어진 형식 안에서 정해진 규칙만으로 통어하고 참섭할 때, 그것은 시든다. 노래가 어디 잘 부르라고 강요하면 제 숨통을 틔어 소리낼 수 있던가. 시는 쓰여진 것 바깥에서 그것을 쓰고 있는 자의 그림자를 따라 춤추고 노래한다. “아직 만들어지지 않을 그것들”이 스스로의 형식을 찾을 때까지 “내 마음”은 더 벌거벗고 둥글게 부풀어야 한다.

1) 단순히 가사가 시적이라고 해서 시인 운운하는 건 완전 틀리지는 않지만, 지엽적인 판단에 불과하다. 롤링 스톤즈의 믹 재거나 전인권의 가사를 시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나는 그들에게서 시인의 아우라를 느낀다. 시는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아 및 자발성에 대해 명확한 인식과 통제를 통해 드러나는 일종의 ‘태도의 뉘앙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