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장편 소설 『칼의 노래』를 수상작으로 뽑았다. 수상 작가는 김훈이었다. 창작 경력이 일천한 신인이었지만 낯설지 않은 늦깎이였다. 김훈은 한국일보 기자 시절에 ‘문학기행’을 비롯한 문학 기사를 통해 문인들도 감탄하는 글 솜씨로 수많은 애독자를 거느려왔다. 김훈은 사실과 정보 전달의 앙상한 뼈대에만 의지하던 신문 기사에 풍만한 문체의 살덩어리를 갖다 붙였다. 그는 우아하면서도 박력 있는 개성의 체취가 짙게 풍기는 글을 써서 문학 저널리즘의 새 지평을 열었다.
김훈은 동인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될 무렵 에세이집 『자전거 여행』을 내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그의 산문집은 우리 산하의 길과 강을 받아들여 발효된 의식으로 버무린 산문으로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냈다. 그는 베스트셀러 저자였을 뿐 아니라 자전거 매니아들의 아이콘이기도 했다.
동인문학상 수상작 『칼의 노래』는 충무공 이순신 이야기를 담았다. 이순신이 임진왜란 한 복판에서 홀로 겪는 실존적 고뇌를 박진감 넘치면서도 비장함이 가득한 문장으로 그렸다. 동인문학상 심사위원회는 수상작 선정 이유서에서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내려진 축복’이라며 보기 드문 찬사를 던졌다.
김훈은 젊은 시절 이은상 번역의 『난중일기』를 읽고선 이순신에 푹 빠졌다고 한다. 그때 그는 영문학과에 다니며 낭만주의 시를 외우던 청년이었다. 초월과 순수의 세계를 노래한 낭만주의 시를 읽다가 전쟁의 일상으로 담담히 적은 『난중일기』의 문장을 접하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그는 수상자로 선정된 뒤 신문 인터뷰에서 이렇게 회상했다. “마치 말을 버리고 말의 길이 끊긴 도단의 세계의 들어간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낭만주의와 난중일기의 엄청난 간격을 넘어서긴 불가능했다. 나이들면 뭔가 얘기할 게 있겠다는 막연한 예감은 있었다.”
김훈은 신문 기자가 된 뒤에도 이순신이라는 화두를 꽉 붙잡고 놓지 않았다. 나는 스물 예닐곱 살 풋내기 기자 시절부터 김훈을 만났다. 이미 ‘문학기행’으로 일가를 이룬 선배 기자 김훈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김훈은 술이 거나해지면 칼의 미학을 읊기 시작했다. 칼이 허공을 그으며 내려오는 선, 한 번 긋고 지나가면 돌이킬 수 없는 칼의 선, 거기에서 생사가 명멸하고, 그 위로 베어진 꽃잎이라도 난분분 난분분 날리면…
김훈이 꿈꾸는 칼의 제국에선 이순신이 불멸의 삶을 누리고 있었다. 김훈은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거의 다 외우고 있었다. 이를테면 ‘맑음. 동헌에 나갔다. 활을 쏘았다. 다섯 번 잇따라 맞았다.’라는 난중일기처럼 감정의 군더더기 없이 팩트만 살아있는 문장의 힘을 숭상했다.
김훈은 충무공이 아니라 이순신을 늘 생각해왔다. 『칼의 노래』는 조선 왕실의 입장에서 기술한 충과 무의 찬가가 아니다. 충과 무의 이데올로기로는 파악할 수 없는 인간 이순신의 피눈물로 기록한 삶과 죽음의 노래라고 부를 수 있다. 『칼의 노래』에는 김훈의 이런 생각이 선명하게 담긴 문장이 많다.
‘나는 다만 적의 적으로서 살아지고 죽어지기를 바랐다. 나는 나의 충을 임금의 칼이 닿지 않는 자리에 세우고 싶었다. I적의 적으로서 죽는 내 죽음의 자리에서 내 무와 충이 소멸해 주기를 나는 바랐다.’
김훈은 해마다 이순신 기일이 돌아오면 경남 남해에 있는 사당 이락사(李落祠)를 찾아간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을 모신 사당에 가서 소주 한 잔을 올린다. 김훈은 “이순신이 떨어진 바다라는 그 사당 이름과 같은 문장을 제일 좋아한다. 충렬이나 충무라는 말과 달리 이락사에는 이데올로기가 들어있지 않다”고 말했다. 김훈이 『칼의 노래』를 통해 구국의 영웅 무용담이 아닌 개인의 실존적 고독을 그린 까닭을 설명해주는 일화다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 『칼의 노래』는 영웅 서사 아니면 민중 서사로 나뉜 기존 한국 역사 소설 문법에서 벗어난 작품이다. 지배와 피지배 이데올로기 어느 쪽으로도 포섭되지 않는 개인 서사를 다룸으로써 역사 소설의 새 영토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칼의 노래』는 허무주의의 극치를 보여준다고들 한다. ‘김훈 소설의 역설은 인간과 역사를 믿지 않으면서도 인간과 역사에 대해 썼다는 것’이라는 호평이 있는가 하면, ’추상적이고 사변적이고, 작위적이다‘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칼의 노래』는 다양한 세계관이 충돌하는 소설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이 짙은 에세이였기 때문에 거기에 전염된 독자들이 쉽게 소설 속의 이순신과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훈은 동인문학상 수상소감에서 “이제 겨우 쓰기 시작한 저의 작문을 이렇게 읽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 줄 한 줄 쓰겠다”고 말했다. 그는 평론가들의 비판에 대해 “평론가들이 한 말은 그들이 세운 논리의 틀 안에서는 조금도 틀리지 않는다”라는 반응을 보인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밝힌 적이 있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말은 현실이 아니라는 절망의 힘으로 다시 그 절망과 싸워나가야 하는 것이 아마도 말의 운명인거지요. 그래서 삶은, 말을 배반한 삶으로부터 가출하는 수많은 부랑아들을 길러내는 것인지요.”
『칼의 노래』는 처음 서점가에 깔렸을 때 독자 반응이 그리 좋지 않았다. 책을 낸 출판사 편집부가 ‘읽기 어려운 책’이라고 우려한 대로였다. 그런데 동인문학상을 받고 나서 판매가 늘어났고,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이 TV에 나와 추천하면서 70만부까지 판매고가 올라갔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을 당했을 때 홀로 『칼의 노래』를 다시 꺼내 읽으며 마음을 다졌다는 언론 보도가 있었다. 그러자 철학자 김진석이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은 김훈의 『칼의 노래』를 즐겨 읽는다는 보도는 소극(笑劇)이었다”는 글을 쓰기도 했다. 나중에 나는 김훈을 만나 김진석의 평가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김훈은 잠시 침묵한 뒤 “그것은 소극이었다. 그러나 내 책이 대통령의 정신과 마음을 대리로 위안해주는 힘은 있었겠다”고 말했다.
『칼의 노래』가 거둔 성공으로 인해 우리 사회에선 이순신 리더십이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정치인과 기업인 같은 지도층에서 이순신 배우기 바람이 불었다. 『칼의 노래』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각기 다른 영웅을 탄생시켰다. 참여 정부의 지도자는 열두 척의 배로 삼백척이 넘는 일본 함대를 격파한 영웅담을 바탕으로 거대한 기득권 세력을 악으로 몰아치며 개혁 드라이브를 밀고 나갔다. 정계 은퇴했다가 다시 대권에 도전하기로 한 어느 보수 정치인은 이순신의 열두 척 정신을 내세우며 정치 재개의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김훈은 열두 척 정신을 신화화하는 현상에 비판적이었다. “이순신의 리더십을 현대 사회에 도입한다는 것은 황당무계한 이야기다. 적이 330척의 배로 쳐들어 올 때 내가 12척 밖에 없는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현대의 진정한 리더십이다.”
아무튼 『칼의 노래』는 2000년대 초반 한국 정치 상황과 맞물리면서 독자들의 관심을 증폭시켰고 결국 100만부 판매를 돌파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 짙게 깔린 작가의 허무주의와 고독은 여전히 긴 여운을 남기고 있다. 『칼의 노래』에 울려 퍼진 칼의 울음은 아직 그치지 않았다. 사람들은 각자 내면에 품은 칼을 더 날카롭게 갈아댔을 뿐이다. 그렇게 사람들의 칼과 칼이 부딪치는 상황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칼의 노래』는 그런 의미에서 2000년대 한국 문학의 사건이었을 뿐 아니라 한국 정치가 바뀌지 않는 한 끝없이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