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과 가라타니 고진이라……. 거꾸로 하면, 나의 처녀작 제목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문학과 가라타니 고진’의 관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그 책을 읽으면 된다. 문학비평집의 관례(이곳저곳에 쓴 평문과 해설을 짜깁기한 책)를 어겨가면서까지 괜히 책 한 권을 통째로 이 주제에 바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에 대해 이야기할 때조차도 터부시되는 책인 것 같다. 왜? 그렇게 하는 것이 한국문학의 발전에 유익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외국비평가로서 가라타니만큼 한국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그러하다. 첫째 문학연구라는 측면에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은 한국근대문학연구의 흐름 자체를 바꾸어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론, 작품론, 주제론 정도에 머물고 있었던 문학연구는 가라타니를 매개삼아 ‘근대문학비판’으로까지 나아갔는데 1), 이것은 이후 속화된 형태의 문화연구(문학에서 문화로)로까지 이어졌다. 그의 영향력은 객관적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에 발표된 한 논문에 따르면, 가라타니 고진은 지난 20년간 한국문학 연구자들이 가장 많이 인용한 외국학자였다.2) 그의 인용빈도는 한국을 대표하는 비평가들(예컨대 김현, 백낙청)을 압도한다. 둘째는 문학비평이라는 측면에서 그러한데, 이것은 주로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책을 둘러싸고 일어났다. 열렬함을 따지자면 이쪽이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지는 않았다. 즉 이전에 어지간한 근대문학을 다룬 논문치고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언급하지 않은 연구가 없었다고 한다면, 이번에는 웬만한 평론치고 ‘근대문학의 종언’을 의식하지 않고 씌어진 글이 없었다. 심지어는 글의 서두를 이 테제에 대한 비판으로 장식하는 것이 유행 아닌 유행이 되기도 했다(이는 지금까지도 그러하다). 그러나 반응의 열렬함과는 별개로 『근대문학의 종언』을 기점으로 가라타니에 대한 평가는 180도 달라졌는데, 그것은 마치 아군이었다고 생각했더니 적군이었다는 표정들이었다. 하지만 ‘근대문학이 끝났다’는 말은 제2차 한일문학심포지엄에서부터3) 해서 여러 차례 명확히 한 것으로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때가 1993년이니 무려 20년 전 일이다. 따라서 1997년 마침내 한국어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읽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렇게 읽힐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 있었다. 하지만 마치 합심이라도 한 듯이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에서 어떤 작위성을 느끼는 것이 결코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흥미로운 것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테제 자체보다는 2006년 『근대문학의 종언』이 국내에 출간되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란 반응들이 아닐까 한다. 하나같이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었던 것일까?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국에서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를 조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의 각주에서 나는 소위 ‘가라타니 표절 논란’에 대해 간략히 언급했는데, 이를 단순히 한국문학연구의 대가 김윤식4)이 가라타니 고진을 표절했다는 수준으로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보다는 여기서 우리는 가라타니(『일본근대문학의 기원』)가 그토록 한국에서 잘 흡수된 이유를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음식이 쉽게 소화될 리 없다는 점을 생각할 때, 우리는 여기서 ‘사전학습’을 문제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각주를 달았느냐 아니냐의 문제를 떠나 ‘근대문학비판’이라는 것 자체가 김윤식 문학연구의 핵심콘셉트 중 하나라는 것을 상기하고, 가라타니의 영향(이를 굳이 ‘표절’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이 자못 분명한 사실이라는 점을 인정할 때, 우리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의 만남은 이미 첫 만남이 아니었던 셈이다. 바꿔 말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우리의 열광적인 반응은 가라타니의 수용이 아니라 김윤식의 재수용으로서 이루어졌는지도 모른다. 즉 알게 모르게 우리는 김윤식이 이해하는 방식으로만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읽고 해석해온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가라타니가 여러 차례 『일본근대문학의 기원』과 ‘근대문학의 종언’을 함께 이야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 사람도 그에 대해 감조차 잡지못했다는 것은 그야말로 불가사의한 일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한국문학가비평가, 연구자)의 렌즈 역할을 한 ‘김윤식이 이해하는 방식’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한국문학 만들기’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1백20여권이 넘는 그의 웅대한 저작5) 이 목표로 한 것은 오직 하나 한국의 근대문학에 어떤 실재성을 부여하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한국문학이라는 건축물을 사실상 설계한 사람이라고 간주해도 무방하다.6)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그가 이런 엄청난 기획을 성공시킬 수 있었던 것일까? 한 개인의 영웅적 노력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 물론 그럴 리는 없다. 기본적으로 그것이 ‘근대국가 만들기’라는 네이션-스테이트적 요구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한국문학이라는 건축물을 뒷받침하고 있는 두 기둥(국문학과라는 학제와 출판산업과 연계된 문단)과 이해관계에서 일치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건축물 안에서 거주하기 위해서는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금기 같은 게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한국문학’ 자체에 대해서만큼은 의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같은 의심은 그것을 기반으로 하여 서있는 개인, 조직, 단체, 산업, 관념들을 다 무화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판이야 언제든지 그리고 마음대로 해도 된다. 한국문학의 발전으로 수렴되는 비판이라면 건축물을 더욱 튼튼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김윤식의 저서에는 ‘~ 비판’이라는 타이틀을 단 책이 적지 않다. 그리고 이 책들은 대부분 한국의 근대문학을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김윤식의 비판과 가라타니의 비판에는 큰 차이가 존재하는데, 후자의 경우 그것이 철저히 문학 ‘외부’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면, 전자의 경우 그것은 결국 근대문학으로 수렴되기 위한 알리바이에 가까웠다. 그가 설계한 건축물 안에서 문학을 하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후자적 의미의 근대 문학 비판만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존의 측면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7)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 대한 열광적인 수용과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호들갑 사이의 간극은 이것을 감안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오늘날 문학계나 인문학계에서 비판, 성찰(반성)만큼 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것들은 교양이라는 출판산업의 포장을 거쳐 치유라는 형태로 독자들에게 전달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풍조에 적극적으로 일조하는 것이 소위 작가와 인문학자들이 아닐까 한다. 이들에게 문학이 끝났다는 것은 문학의 문제라기보다는 생활의 문제이자 또 그것을 위한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편의적으로 절취해서 읽고 또 부정하는 것에 일말의 거리낌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문학이라는 철옹성이 보인 가라타니 수용은 정확히 김윤식의 가라타니 수용의 반복 그 이상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반복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여전히 시, 소설을 쓰고 가르치고 출판해서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문학이 끝났다니……, 우리가 아니라 우리의 생활이 그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면, 더 이상 할말은 없다. 중요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생활이기 때문이다. 레슬링 경기가 아무리 재미가 없어도 그것이 올림픽종목인 한은 그와 관련된 선수, 감독, 협회 등 이해당사자들은 최소한 지금처럼은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함이 최상의 방책이다. 하지만 “근대문학은 끝났는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는 근대 이후의 문학, 즉 새로운 문학을 하고 있으니 가라타니의 주장 따위는 알 바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왜냐하면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에는 그들이 하고 있다고 가정하는 ‘근대문학 이후의(post-modern/새로운) 문학’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은 작품 내에서는 급진적일지 모르지만, 문학에 대해서는 따분할 정도로 보수적인 관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문학시스템과 어떤 불화도 일으키지 않으며, 비평가나 선배문인들과도 ‘지나치게’ 지낸다. 아즈마 히로키는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바 있다. “이른바 '포스트모던 문학'은 소설의 내부에서 몇 가지 전위적인 실험을 해오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보수적인 문학 작품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들의 소설은 문예지에 게재되어 문학상을 수상하고 대학에서 교재로 취급된다. 이러한 환경은 포스트모던의 조건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다.”8) 다시 말해, 시상식에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퍼포먼스만 벌일 줄 알지, 구태의연한 이들이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주는 상을 거부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얼굴마담을 하는 것이 오늘날의 한국문학이니, 삼성스마트폰이 히트를 치고 싸이 말춤이 세계를 휩쓸고 세계문학전집이 엄청나게 팔리니 우리 문학도 세계로 나가자고 외치는 것만큼 희극적인 것도 없을 것이다. 『근대문학의 종언』을 둘러싼 소란이 진정되자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이제 문학인들 사이에서 ‘가라타니고진’을 언급하지 않는 분위기 같은 것이 형성된 것 같다. 즉 한국의 문학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가라타니가 어느 순간부터 배교자 취급을 받는 것이다. 일전에 나는 사석에서 가라타니에게 이 같은 취지의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뜻밖에도 가라타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투였다. 그때 나는 이런 말도 덧붙여 보았다. “그런데 말입니다. 요즘 들어 한국에는 근대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자 가라타니는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말인지 궁금한 사람은 나의 세 번째 책 『세계문학의 구조』(도서출판b)를 참조하기 바란다.
---------------------------------------------------------------------------------------------- 1) 물론 이것은 가라타니가 소개되기 전부터 김윤식이 해온 작업이지만, 주지하다시피 그는 표절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2) 황호덕, 「외부로부터의 격발들, 고유한 연구의 지정학에 대하여」, 『상허학보』(35호), 2012. 3) 이때 가라타니가 발표한 글은 다음 책에서 읽을 수 있다. 가라타니 고진, 「한국과 일본의 문학」, 『문자와 국가』, 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1. 그리고 이와 관련된 자세한 서술은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도서출판b)을 참조하기 바란다. 4) 그는 아마 가라타니 고진보다 더 많이 인용된 거의 유일한 한국의 비평가일 것이다. 5) 한국의 어떤 문학가(시인, 소설가 할 것 없이)도 그보다 많이 쓰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일 년에 두세 권씩 책을 내고 있다. 6) 정밀한 조사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문학연구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된 사람은 국내 국외 포함해서 아마 김윤식일 것이다. 7) 이는 김윤식의 표절 문제를 제기한 이명원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의 비판은 근대문학 자체를 향하고 있기보다는 그것의 원 활한 작동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비판하는 것에 불과하다. 8) 아즈마 히로키,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장이지 옮김, 현실문화연구, 2012 40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