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호_평론가, 한양대학교 국어국문과 교수, 계간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64년생
평론집 『침묵의 파문』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등
“모든 이론은 회색이요, 오직 푸르른 것은 생명의 황금 나무다”라는 말은 괴테가 『파우스트』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준 것이다. 이 말은 원의(原義)와는 무관하게 이론(theoria)에 대한 근원적 의구심과 실천(praxis)에 대한 과도한 숭배를 불러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론은 세계를 파악하고 해석하고 사유하는 틀로서 여전히 우리의 관념과 의식을 주조하고 재구성해준다. ‘이론-실천’이 서로를 얽는 한 몸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우리는 어떤 이론들을 통해 우리 문학을 사유해왔을까? 물론 근대 이후 우리의 전통적 이론들이 우리 안에서 이어지고 확장되어온 것들도 있지만, 많은 부분 우리 근대문학은 외국의 문학이나 사상으로부터 이론과 실천의 역사를 받아들여 왔다. 그것도 서구 중심의 수용사가 가장 길고도 견고한 역사를 가져왔다. 사실 모든 이론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자마자 부단히 변형되고 거기에 파생적 경험이 부가되게 마련이다. 그 점에서 최근 한국 문학에 강렬한 감염력을 남긴 외국 이론가 혹은 사상가들의 사유와 그 흔적을 살피는 일은 퍽 가치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대산문화』 봄호에서는 한국 문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외국 이론가 혹은 사상가들로 옥타비오 파스, 질 들뢰즈,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예 지젝 등을 택해보았다. 이들의 영향이나 변형 과정에 대하여 순서대로 신동옥, 고봉준, 조영일, 유준 선생이 집필을 맡아주었다. 이번 특집을 통해 우리는 한국 문학에 대한 사유들이 평지돌출의 산물이 아니라, 번역과 수용을 통해 부단히 영향 받고 감염되고 극복되어온 결실임을 충실하게 경험할 것이다. 거기에 우리의 경험이 어떻게 결합하는가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문학이나 예술이 철학이나 미학과 적극 결합하여 통용되고 확산되는 과정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특집이 우리 문학의 내면에 대한 소중한 성찰의 자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