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주찬_번역가. 1956년생
영역서 오정희 『불의 강(River of Fire)』, 최윤 『저기 소리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There a Petal Silently Falls)』,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The Dwarf)』, 황순원 『나무들 비탈에서다(Trees on a Slope)』, 황순원 『움직이는 성(The Moving Castle)』 등
한 10년 전, 『태백산맥』 제1부의 영문번역 청탁을 권영민 교수를 통해 받았을 때, 우리는 꽤 고민하였다. 그때는 시원하게 ‘네’, ‘아니오’를 할 수 없었다. 우리를 신임해 이렇게 중요한 작품을 맡기시려는 데서 오는 고마움을 그냥 미적미적 빚진 마음으로 몇 년을 지내왔다. 50년 간 부지런히 글을 써 왔고, 아직도 글을 쓰는 것을 황홀한 기쁨에 비유하는 조정래 씨는 불행하게도 영어권에 소설 한 권과 몇 편의 중단편으로만 소개되었다. 이번 기회에, 『오 하느님』을 번역할 기회가 주어져 영어권에 작가를 소개하며 늦게나마 약간의 빚 갚이를 하게 되어 기쁘다. 10년 전의 고민은, 『태백산맥』의 번역 자체의 불가능성과 가능성은 물론, 제1부를 끝내, 시작이 반이라고 해도, 2부와 3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영어권의 독자는 누구며, 어떤 출판사가 감히 이 작업을 맡을 것인가 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들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질문들이다.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에서 미비한 존재며 인정부족인 상태에서, 한국의 문학을 어떤 작품을 통해 소개해야 되는 가에 대한 과제는 왜 한국문학이 독자를 얻기 어렵고, 재미없고 인기가 없는가까지 연결된다. 지난 30년 동안, 우리 부부는 번역자면서 홍보는 물론, 나름대로 한국문학 대사가 되어 한국문학을 영어권에 소개해왔다. 동네 도서관에서 한국음식도 만들어 맛 보이기도 하면서 관심 있어 온 소수의 독자들과 한국문학을 읽기도 했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는 보편적 주제와 한국적 특수성을 지니고 있으면서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 탄탄하고 수려한 문체를 가진 재미있고 ‘화끈한’ 작품을 항상 찾아 왔다. 번역할 만한 화끈한 작품 찾기는, 『오 하느님』을 접했을 때 우리가 꼭 번역하여 세계인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바뀌었다.
『오 하느님』을 읽고 느낀 감정은, 우리가 무기력하고 좌절하며 분노할 때,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해 주시는 그 위대한 분이나 힘의 존재를 애타게 찾으면서 느끼는 ‘어떻게 이럴 수가, 오 하느님!’ 그대로였다. 『오 하느님』은 건조한 보도적 스타일이며 작가 특유의 농담과 파노라마적 풍자나 문체 그리고 중심인물의 인물묘사나 전개면에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가 되었지만 강대국의 황포와 약소국이 겪은 비인간적 인류사를 그린 주제가 주는 감동은 우리를 압도했다.
역사에 근거한 『오 하느님』을 번역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세계의 독자에게 영어로 번역 소개하기 위해서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든 역사적 사실과 고유의 명칭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에서 오는 압박감이었다. 인터넷에 들어가 우리는 제2차 대전의 전쟁 기록, 화염병의 역사, 전쟁터 이름, 러시아 이름의 철자, 포로수용소 이름과 사건 등등을 읽고, 확인하고, 수정하는 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세계인이 알고 있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 기록된 역사적 사실과, 세계인이 모르고 있는 이 인류사 속 우리 소수 민족의 비인간적 수난을 알려한다는 의무감에서, 누구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다.
생존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번역자의 가장 중요한 동료는 물론 원작자인데, 번역자와 원작자의 공동 작업은 신뢰에서 이루어진다. 조정래 씨를 알게 된 지도 20년이 넘지만, 신뢰와 이해, 겸손에서 기원한 공동 작업이야말로 더 성과 있는 번역을 생산하게 된다고 믿는다. 그 예로, 우리의 모든 질문을 언제나 꼼꼼히 팩스로 신속하게 답해 주셨다. 우리가 번역하였던 생존 작가들 중에 오직 한 작가만이 질문을 회피하여 작품 이해에 도움을 받기 힘들었던 기억이 있지만, 원작자와의 공동작업은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하고 싶다.
흥미로웠던 일도 있었는데 『오 하느님』이 교과서에 수록되면서 특정 종교와의 연관성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제목을 『사람의 탈』로 변경하게 되었던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작가와 상의, 이해 하에 원제목대로 그대로 쓰기로 했다. 작가가 종교적, 정치적 오해 가능성 때문에 제목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궁금했지만, 서구의 독자들에게 그런 오해는 없을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조정래 씨는 2009년에, 공역자인 브루스 풀턴이 가르치는 브리티시콜롬비아대학을 방문하여 『오 하느님』 낭독회를 갖고 학생들과 캐나다 밴쿠버 주민들을 만나며 캐나다와 한국을 서로 더 이해하게 하는 뜻 깊은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번역만큼 어려운 것이 출판사 섭외이다. 번역을 시작하며 궁합이 맞는 출판사를 찾기 시작한다. 번역에서 출판까지 4년 정도 걸렸는데, 출판사 모색은 잘 알려진 큰 출판사부터 시작하여 포기하지 않고 개척자적인 정신으로 찾아야 한다. 아키펠라고(Archipelago) 출판사 편집인이 관심을 보여 원고를 두 번 읽었지만 잘 안되었고, 머윈아시아(MerwinAsia) 출판사의 더글라스 메윈(Douglas Merwin) 씨는 역사에 근거한 동양문학에 관심이 있어 출판하길 원했다. 장정을 맡으신 분도 작품 속의 국적 변경, 천국과 지상 등의 이중성이나 혼란성을 살려 디자인해주어 만족스럽다.
한국문학을 번역하는 번역자로서 어렵고 아쉬운 점들을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오 하느님』의 번역출판 경험을 통해 번역자로서 어려운 점과 출판의 어려운 점을 적어 보았다. 하지만 지난 30년 번역을 해온 우리가 무엇을 번역해야 하는가란 질문에 접할 때, 또 따라오는 질문은 왜 한국 작가들은 쓰지 않는가이다. 한국에는 가장 왕성하게 쓸 나이인 50대에 퇴직한 작가들이 너무 많다. 작품을 쓰지 않지만 그래도 작가인 풍조이다. 이러한 풍조에서 조정래 씨는 ‘항상 쓰고, 또 재미있게 쓰는 것이 작가의 의무’라고 너스레를 떠는 모습이, 번역자로서 굉장히 고맙다. 평생 쓰는 작가로서의 삶이 조용히 퇴직하여 사는 작가들에게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묵직한 작가들이 계속 공부하면서 좋은 작품을 쓴다는 것은, 한국문학이나 한국사회에 어두운 밤의 등불과도 같고, 한국문학이 좀 더 세계에 알려질 기회에 이바지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50이 훨씬 넘은 번역가인데, 녹이 슬지 않도록 매일 조금씩이라도 번역하고 있는 것도 이런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세계인들과 함께 읽고픈 바람에서이다.
※ 필자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브루스 풀턴과 공역으로 영역 『오 하느님(How in Heaven’s Name)』을 미국 머윈아시아에서 2012년 출판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