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종소_번역가,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 1966년생
역서 『악에 관한 세편의 대화』 『모스크바 발 페투슈키 행 열차』 『말의 미학』(공역) 『소네치카』(공역), 노역서 『님의 침묵』 등
오늘날 우리가 흔히 잊고 있는 사실이지만, ‘문학비평’이 정치사회 비평 혹은 신문잡지 평론으로부터 독립되어 문학 자체의 한 분과로 자리하게 되고, 나아가 학문의 한 분야로까지 발전하게 된 것은 ‘러시아 형식주의’의 공로가 크다. 채 한 세기가 되지 않는 1920~30년대, V.슈클롭스키, Yu.틔냐노프, R.야콥슨, B.에이헨바움과 같은 젊은 러시아 소장학자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이 문학비평 운동은 당시의 자연과학의 발전에 발맞추어 문학연구에서의 과학적 방법론을 탐구하며 시작되었다. 곧 기존의 문학비평의 중심이었던 작가전기적 연구, 문학사에 대한 연구에서 문학 텍스트 자체의 연구로 그 방점을 옮긴 러시아 형식주의는 ‘기법으로서의 예술’, ‘낯설게 하기’ 등과 같은 오늘날 문학비평 연구사에서 그 유명한 고전적 논문들과 비평용어들을 발표하며 문학연구를 체계화하기에 이른다.
송찬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의 러시아어 번역 출간(맹수옥, 리 그리고리 공역, 출판사 기페리온(ГИПЕРИОН), 상트 페테르부르크, 2012)을 맞아 ‘러시아 형식주의’를 기억하고, 특히 그 가운데 ‘낯설게 하기’와 같은 문학비평 용어를 언급하는 것은 러시아어로 출간된 우리 시인의 시집을 읽으며, 우리말 시어 위에 중층적으로 가해지는 러시아어의 ‘낯섦’이 물씬 느껴지기 때문이다.
차근히 번역시집을 정독하며 이 번역 시집의 ‘낯섦’이 어디에서 비롯될까 생각해본다. 문학평론가 신범순 교수가 지적하듯이 “동화적이고 신비스런 마법적 상상력을 풀어내는” 송찬호의 시 세계는 마치 한 편의 그림 동화책을 보듯이 알록달록 자못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에덴동산에 놓인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이 처음 보는 주위의 사물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듯, 혹은 “어린이날 재롱잔치”로 동물원에 소풍간 어린아이의 시선처럼 송찬호의 시 세계 속에서는 사람과 자연, 사물이 새롭게 명명되고 태어난다. 그렇게 송찬호의 시집은 그 자체로 매우 아름다우면서도 새롭게, 또 낯설게 다가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낯섦은 본질적으로 ‘산문어(散文語)’와 구별되는 ‘시어(詩語)’의 특징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러시아 형식주의 출현의 모태가 된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크의 문학연구회들이 시어 연구에 집중하였고, 이후 형식주의 문학연구가들이 텍스트 자체의 구성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예술언어의 주제적, 구조적, 형식적 제 측면에 관심을 갖는 동안 시어는 문학비평의 집중적인 연구대상이 되었다. 시어는 일상어에 일종의 ‘강제’를 가해 우리의 지각을 낯설게 만드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형식주의의 문학연구 전통을 잇고 있는 Yu.로트만의 구조주의 비평도, 혹은 미학자이자 문학이론가인 M.바흐친의 문예학에서도 시의 언어는 일상어를 배경으로 전경화되는 새로운 언어로 논의된다.
송찬호의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결국 자연과 인간, 세계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낯선 시선과 시 장르의 언어 자체가 빚어내는 낯섦이 융화되어 알록달록 영롱하게 그려진 한 폭의 그림이다. 게다가 이 낯섦은 현재까지 러시아에 번역 소개된 우리 문학 작품의 대다수가 소설 작품이었다는 친숙함의 배반에서 비롯된 것일 터이지만, 동시에 첫 대면의 이 ‘낯섦’은 96쪽 분량의 작은 시집을 읽어나가면서 문득 “저녁에 집에 돌아오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를 만난 듯 반가움과 신비로움의 놀라운 체험으로 변하기도 한다. 그것은 역자들이 서문에 밝히고 있는 것처럼, “그(송찬호)의 시들은 형식과 본질에 있어서 평범하지 않고, 세련되며, 신랄하고, 통찰력 있으며, 따듯할 뿐만 아니라, 이 세계의 물(物)들의 참된 진리를 깊이 있게 파헤치고” 있기 때문이리라.
번역은 문화와 문화의 만남이다. 이 번역시집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말 시어에 걸리는 동화 같은 낯설음을 꼼꼼하게 러시아어 시어로 옮기며, 두 나라의 문화를 ‘낯설게’ 그리고, 그 낯섦의 ‘친숙함’으로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원작의 어휘, 문장 구조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아가 때로는 원작을 직역한다면 러시아어 독자들에게 의미 전달이 어려웠을 시행 한 줄 한 줄이 러시아어의 동화같이 단순하고 평이한 시어와 문장으로 옮겨져 각각의 아름다운 한 편의 낯설고도 친숙한 새로운 시로 태어났다. 원작의 시어와 시상(詩想)의 아름다움이 러시아어의 풍부하고 다양한 어휘를 통해 응축된 사상의 단순한 표현들로 독자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때로는 ‘낯섦’과 ‘친숙함’, 이 두 지점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무척이나 어렵다. 특별히 번역은 도착어 문화권 독자들의 이해를 위한 배려가 섬세하게 녹아 있어야한다. 이런 배려의 부족이 아쉽게도 드물게 눈에 띄며 ‘친숙함’이 없는 낯섦, 생경함으로 눈에 거슬린다. 가장 간단한 예로 작가 이름, 역자 이름은 러시아식으로 이름, 성(姓) 순서로 옮겨져야만 했다. 자칫 러시아어권 독자들이 작가의 성이 ‘송’이 아닌 ‘호’씨로 오해할까 걱정이다. 또 친절한 역자 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일관성이 흔들리는 곳도 보인다. 가령, 다른 꽃들은 모두 러시아식으로 호명하되 개나리만 유독 우리말 소리로 표기한 것은 역자의 ‘낯설게’ 번역하기의 기법인가? 궁금하여 미소지어본다. 그러나 분명히 이 번역시집은 표지 디자인만큼이나 역자들의 성실함이 배어나는 예쁜 번역서이다.
※ 러시아어역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러시아 기페리온(ГИПЕРИОН) 출판사에서 2012년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