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 들뢰즈(Gilles Deleuze)_프랑스 철학자. 1925~1995년
저서 『경험주의와 비관성』 『니체와 철학』 『칸트의 비판철학』 『베르그송주의』 『악마의 논리』 『프란시스 베이컨, 감각의 논리』
『대담 1972~1990』 등
니체가 지적했듯이 예술가와 철학자는 문화 의사들이다. - 질 들뢰즈
문학/예술과 철학의 결합은 현대 철학의 공통적인 특징인데, 특히 들뢰즈는 문학/예술을 가장 적극적으로 사유의 근거로 삼았던 철학자의 한 사람이다. 문학에 관한 들뢰즈의 사유들—가령 프루스트, 루이스 캐럴, 아르토, 마조흐, 카프카, 멜빌, 헨리 제임스, 피츠제럴드, 플뢰티오 등—은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에 관한 이론이 아니라 욕망, 감성, 감각, 잠재성 등의 철학적 개념과 분리할 수 없는 것들이다. 또한 그것은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사유의 일부이기도 했다.
구조주의 이후의 문학 비평은 철학의 세례를 강하게 받았고, 한국의 문학 비평 또한 이러한 철학적 사유에 기대어 비평을 수행해왔다. 오늘날 문학연구자들의 주된 독서가 ‘작품’이 아니라 ‘이론’임은 공공연한 비밀이 아닌가. 그렇지만 철학과 (한국)문학의 만남이 항상 문학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만은 아니었다. 비평의 지나친 이론화, 즉 외국 이론으로 비평 지면을 도배하는 경향이 나타났고, 비평 논쟁이 유럽철학의 대리전 양상을 띠기도 했으며, 심지어 비평이 ‘작품’을 이론(철학)의 정당화를 위한 사례처럼 취급하는 현상이 목격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비평의 이론화가 반드시 극복의 대상만은 아니다. 철학의 시선을 빌렸을지언정 작품에 대한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이 열렸고, ‘문학’과 ‘철학’ 사이의 분할선이 희미해짐으로써 문학이 단순한 읽을거리라는 통념이 불식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이 성취는 문학의 대중적 영향력 급감이라는 뼈아픈 대가를 치르고 얻은 것이지만, 이제 문학이 한낱 읽을거리라는 오해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밀란 쿤데라는 『소설의 기술』에서 소설을 가리켜 “작가의 고백이 아니라, 함정으로 변한 이 세계에서 인간의 삶을 찾아 탐사하는 것”으로 정의했다. 『비평과 임상의학』을 쓸 당시의 들뢰즈였다면 아마 “문학의 궁극 목적은 정신착란으로부터…… 삶의 가능성을 이끌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들뢰즈는 ‘문학’보다는 ‘글쓰기’라는 말을 더 선호했다. 단적으로 그는 “글쓰기로서의 건강은 부족한 민중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문학과 삶」),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결코 문학이 아니라 언표행위였다”(『카프카』), “쓴다는 것은 탈주선을 추적하는 것이다…… 쓴다는 것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 밖의 무엇이 되는 것이다”(『디알로그』)라고 썼다. 이는 ‘문학’이 문학과 삶을 분리하는 미학적 자율성, 작가 개인의 정신분석으로 귀결되는 내면성의 서사 같은 불필요한 오해에 노출되어 있는 반면, ‘글쓰기’라는 실천-행위가 문학과 삶의 경계를 횡단하는 탈주 욕망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글쓰기’를 중심으로 문학에 관한 들뢰즈의 사유를 잠시 살펴보자. 들뢰즈는 ‘글쓰기’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향한 통로, 즉 ‘출구’를 찾기 위한 욕망의 문제로 이해했다. 들뢰즈에게 문학은 미학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이다. 그에 따르면 ‘문학’은 징후에 관한 글쓰기이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기존의 질서에 포획되어 질병 상태에 처해 있음을 고지하는 것이며, 글쓰기는 그 질서를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사유하려는 탈주 욕망의 언어적 표현이다. 기실 작품이란 이 탈주선(과정)의 형상화이다. 그래서 그는 작가란 문화를 진단하고 치유하는 니체적 의사라고 주장했다. “이는 질병과 건강에 대한 문화의 기호를 읽어내는 징후 발견자인 동시에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진시키는 치료사를 일컫는다.”(로널드 보그) 들뢰즈에게 문학은 설령 그것이 작가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일지라도 ‘집단적 발화’이다. 들뢰즈는 징후와 관계한다는 점에서 “그림과 음악과 글쓰기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디알로그』)고 판단했다.
문제는 들뢰즈에게 있어서 ‘문학’이, 우리의 상식적 믿음과는 달리, 작가의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벤야민이 보들레르의 시를 보들레르 개인의 독창적인 생산물이 아니라 19세기 파리의 모더니티로 이해한 것처럼, 들뢰즈 역시 특정한 작품을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려는 대안적 삶으로만 바라보았다. 그는 문학 작품을 작가 개인의 사적인 것으로 이해하려는 태도에 대해 ‘자율적인 저자’와 ‘자율적인 작품’이라는 믿음은 글쓰기와 삶의 본질을 흐리게 하는 개념들이라고 비판했다. 삶이 개인적인 것이 아니듯이, 글쓰기 또한 개인의 산물은 아니며, 글쓰기는 삶을 비개인적인 역능의 상태로 옮기는 것이라는 것, 이것이 문학에 대한 들뢰즈의 입장이다. 따라서 글을 쓴다는 것은 사적인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비개인적인, 비유기적인 추상적인 선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때 추상적인 선이란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탈주선이다.
이러한 들뢰즈의 문학에 관한 사유는 그의 저작들이 번역되면서 유행처럼 퍼졌다. 특히 생성, 노마드, 탈주, 욕망, 횡단 같은 그의 개념어들은 일종의 유행어처럼 사용됨으로써 표면적으로는 한국문학과 들뢰즈의 철학이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현상은 비평이 작품에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노력함으로써 더욱 급증했다. 그렇지만 비평이 해석의 도구로 들뢰즈의 개념을 인용한 경우를 제외하면 사실상 문학에 관한 그의 사유는 한국문학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기는 어렵다. 그것은 들뢰즈가 ‘문학과 삶’(이것은 『비평과 임상의학』의 총론에 해당하는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을 연속적인 것으로 이해하는 데 반해 한국문학은 문학의 자율성, 특히 문학의 미학적 가치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문학에 대한 들뢰즈의 영향은 쓰기보다는 읽기, 읽기보다는 해석에 제한되어야 한다.
9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은 자율성이라는 이름으로 ‘문학’과 ‘삶’을 분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했고, 이러한 분리의 관습에 따라 ‘문학’은 항상 ‘미학적인 것’으로만 인식되었다. 이 경우 ‘작품’과 ‘미학’은 온전히 작가 개인의 것으로 간주되었고, 때문에 그것은 종종 한 개인의 내면을 드러내는 고백적 장치나 개인의 정신분석으로 귀결되었다. 들뢰즈의 생각과 달리, 한국문학에서 작가-작품은 ‘의사’가 아니라 항상 ‘환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리고 환자로서의 작가는 질서에 포획된 삶의 징후보다는 개인적인 상처와 고통을 언어화하는 것을 문학의 소임으로 받아들였다. 젊은 시인들의 시적 경향, 즉 ‘무엇’을 말하느냐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는 현상 역시 미학적 자의식의 차원에서만 논의될 뿐이다.
물론, 문학의 출구 찾기와 관련하여 들뢰즈가 지적하고 있는 세 가지 양상(모국어의 해체 혹은 파괴, 통사 창조를 통한 언어 내에 새로운 언어 창조, 그리고 더 이상 그 어떤 언어에도 속하지 않는 비전과 오디션의 창조)을 중심으로 한국문학의 현재를 재론할 여지가 없지는 않다. 하지만 문학의 제1원칙이 ‘미학’으로 수렴되는 한 문학과 삶의 연속성은 사유되기 힘들다. 이는 문학에 관한 한 들뢰즈의 사상이 인용의 대상은 될지언정 시민권을 획득한 상태는 아님을 뜻한다. 적어도 현재까지 “예술가는 의사이다. 자신의 개인적인 병에 대한 것이 아닌, 일반적인 병에 대한 것도 더욱 아닌, 문명에 대한 의사이다”라는 들뢰즈의 생각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높지 않다.
김언이나 황병승의 시처럼 언어를 진동시킴으로써 일종의 불균형을 유도하고, 시 안에서 문법적·통사적·의미적 양식에 내재한 연속적인 변이선을 활성화시킴으로써 문학-글쓰기를 다른 삶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수단으로 언표화하는 사례들이 없지는 않다. 다만 이들의 실험적 언어는 이미-항상 문학적인 것, 미학적인 것으로 이해될 뿐 좀체 ‘삶’의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삶과 정치가 실험되지 않는 한 문학은 실험될 수 없다”(「감각적인 것의 분배」)는 진은영의 발언은 설사 그것이 랑시에르를 경유한 것일지라도 문학에 관한 들뢰즈의 사유에 근접한 사례의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진은영이 삶과 정치의 실험을 문학의 실험보다 더 강조하고 있는 까닭은, 카프카의 출구 찾기가 그러했듯이, 문학이 삶의 해방적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술에서 ‘구축주의’와 ‘구성주의’의 차이와도 유사하다. 흔히 구성주의로 번역되는 구축주의는 궁극적으로 삶의 해방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는 반면, 구성주의는 삶과 불연속적인 관계에 놓인 예술을 실험하는 것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표면적으로 이들의 실험은 유사해보이지만 실상 예술과 삶의 관계에 있어서 그들의 사유는 정반대 방향을 겨냥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문법적·통사적·의미적 차원에서의 탈주를 틀린 용법의 문장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병리학적 의미의 환자와 정신착란으로서의 문학을 혼동하는 것과 유사한 오해이다.
들뢰즈는 “걸작품은 일종의 외국어로 씌어지는 것이다”라는 프루스트의 문장을 인용한 적이 있는데, 여기에서 ‘외국어’는 글쓰기의 무능력에서 비롯되는 비문이 아니라 기존의 글쓰기 질서에 탈주하는 창조의 선을 일컫는다. 들뢰즈는 글쓰기가 기존의 사유방식과 형식을 변형시키고 뒤틀어버림으로써 삶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변형’과 ‘뒤틀기’를 실험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을 오직 문학적·미학적 목표를 위한 실험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로널드 보그는 문학에 대한 들뢰즈의 이런 사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쓴다는 것은 탈주하는 것이고, 탈주케 하는 것이고, 착란 상태가 되는 것이고, 궤도를 떠나는 것이고, 배신하는 것이고, 되기이며, 흐름과 결합하는 것이고, 배치를 형성하는 것이고, 탈영토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탈주선을 추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탈주선은 창조의 선이고, 삶의-실험화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문학의 궁극 목적이 정신착란 자체가 아니라 건강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 하나의 ‘실험’을 앞에 두고 그것이 ‘미학’에 속하는 것인지 ‘삶’에 속하는 것인지 단정하기는 무척 어려울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문학에 끼친 들뢰즈의 영향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이 물음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삶과 문학의 연속성이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는가를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 경우 들뢰즈의 ‘영향’이란 사실 한국문학에 퍼져 있는 질병의 징후를 드러내는 부정적인 영향일 수도 있다. 이것을 외면한다면 한국문학에서 ‘들뢰즈’라는 이름은 권위와 유행을 겸비한 숨기 좋은 방의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