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신동옥_시인. 1977년생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웃고 춤추고 여름하라』 등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_멕시코 시인, 평론가. 1914~1998년
시집 『야생의 달』 『가석방 상태의 자유』 『격렬한 계절』 『일장석』 『도룡뇽』 『하양』 『동쪽 비탈길』 『공기의 아들들』 등
1.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국문학’이라는 주제를 생각해볼 수 있다. 본질과 현상이라는 큰 밑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그리고는 ‘한국에서의 하이데거 수용’이라는 주제를 놓는다. 수용사를 일별한 뒤에 사상적인 입론을 갈라서 정리한다. 작품의 번역과 관련해서 각론들을 펼친다. 1.2 2012년 3월에 출간된 『실존과 참여 : 한국의 사르트르 수용 1948〜2007』이 바로 그런 기획이 될 것이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는 이름들은 많다. 대체가능한 기획들은 셀 수 없이 많다. 그 이름들은 작가 한사람을 넘어서는 ‘사상’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영향사를 갈음하기 이전에 교차비교가 불가능한 위상차가 생긴다. 하이데거나 사르트르가 샘이라면, 그 지류에서 복류까지 흐름을 게워내고 받아먹은 땅과 물줄기의 모양을 그려 보이는 기획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름들은 ‘뉴스라이브러리’의 세목과 ‘단행본/논문/저널’의 기사의 세목과 ‘작품의 번역/강연/강좌’의 세목을 추적하는 데서 그 영향사의 흐름을 갈무리해볼 수 있다.
2. 하이데거니 사르트르니 비트겐슈타인이니 하는 이름들의 그늘은 비단 한국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도스토예프스키와 한국문학’이랄지 ‘엘리엇과 한국문학’ 같은 주제도 생각할 수 있다. 영향의 범위가 직접적이고 커서 작가들의 산문을 병렬적으로 들추어만 보아도 글이 가능할 것이다. 한편으로 ‘거트루드 스타인과 전후 모더니즘 시운동’이랄지 ‘잭슨 폴록과 2000년대 한국 현대시’와 같은 각론도 생각할 수 있다. 앞의 경우는 1950년대 모더니즘 시운동에서의 서구 추수가 맹목으로 향한 것은 아닌지를 되묻게 될 것이다. 뒤의 경우는 2000년대 한국 시의 지형에서 언어의 물질화와 기법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사례들을 들추어내게 될 것이다.
3. ‘한국시에서 아방가르드는 없었고, 아방가르드라는 어의의 유사어가 있었다’라는 기획의 말이 붙을 것이다.
4. 모순은 여기에 있다. 아마도 ‘옥따비오 퍼즈’라는 단어가 처음 나온 해는 1980년이다. 사회면, 하버드 대학교 수강 신청에 ‘제7위’를 기록한 과목이 ‘퍼즈’의 ‘중남미 시사’였다.
5. 어떤 학자는 비슷한 시기에 ‘옥따비오 빠스’라는 이름의 인간에 대한 본격적인 글을 썼다. 한국말로 Octavio Paz라는 인간의 글이 처음 등장한 해는 1966년이다. ‘옥따비오 빠스’의 시집은 1986년에 『태양의 돌』이라는 이름을 달고 선집으로 나온다. 그는 1990년에 노벨문학상을 받는다. 유수의 출판사를 경유한 ‘두 번’의 특집이 있었다.
6.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서부터다. 1990년 옥타비오 파스가 노벨문학상을 받고, ‘뉴스라이브러리리’는 이상하게 폭발한다. 1986년에 시선집이 나왔다. 1990년에는 이미 ‘4쇄’를 돌파했다. 아직 ‘그’의 시전집은 한국에 번역이 된 적이 없다.
8. 여기서 옥타비오 파스의 삶과 한국의 역사를 유비해본다. 1884년을 기점으로 놓고 시작하겠다. 이 기간은 독재정부의 기간이었다. ‘크레올’이라는 독특한 언어가 완성되어가는 기간이다. 옥타비오 파스는 1914년에 태어난다. 아직도 용어가 불분명한 멕시코 ‘내란’ 또는 ‘혁명’이 한창인 기간이다. 여기서 ‘호세 에르난데스’와 ‘호세 마르티’의 접점이 발생한다. 이 자들 사이에는 이상한 상거가 있다. 앞은 1차 세계대전의 ‘이베리아’ 시인이고, 뒤는 ‘라틴’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사상가이다. 그러나 1984년 이전의 세계문학 詩 ‘앤솔로지’에서 호세 마르티는 시인으로, 호세 에르난데스는 사상가로 분류된다(한국말, 번역사에서 말이다).
9. 옥타비오 파스의 말을 듣고 싶다면, 대담을 참조할 수 있다. 9.1 장 프랑스와 르벨(Jean-François Revel)과의 대화(1983). 1986년 『외국문학』에 번역되었다. 9.2 클로드 펠(Cloude Fell)과의 대화(1981). 2011년 「멕시코와 고독의 미로」, 『멕시코의 세 얼굴』에 번역되었다. 9.3 대담에서 옥타비오 파스가 표 나게 강조하는 것은 ‘일탈한 중심’이라는 개념 아래 있는 ‘라틴’이다. 여기서 다시, 역사의 유비로 돌아가면 1920년대의 멕시코와 1960년대의 한국이 교묘하게 겹친다. ‘멕시코의 기적’이 1960년대에서 시작되었다면, ‘한강의 기적’이 1980년대에 시작된 것이다. 과연, ‘옥타비오 파스와 한국문학’이라는 주제가 성립할 수 있는가!
10. 1998년 모 출판사는 ‘옥타비오 파스 전집’을 기획한다. 같은 해 『활과 리라』라는 파스의 ‘산문’ 선집을 낸다. 이 산문집은 1990년 옥타비오 파스가 노벨문학상을 받는 순간, 한국에 출간된 『옥따비오 빠스』라는 책과 87% 이상 겹친다. 시간을 지우는 이상한 힘이 발휘되는 순간은 여기서부터다. 옥타비오 파스라는 시의 아포리아와, 옥타비오 파스라는 시의 금언이 그의 첨예한 이론을 지우고 한국에 수용되기 시작한다. 아시다시피 1992년 한국에서는 ‘국외여행자유화’라는 전에 없는 조처가 내려졌다.
11. 아스투리아스가 과테말라 사람이었는지, 네루다가 칠레 사람이었는지, 세사르 바예호가 페루 사람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니 ‘아스투리아스와 한국문학’이라고 물었을 때, ‘네루다와 한국문학’이라고 물었을 때, ‘세사르 바예호와 한국문학’이라고 물었을 때 나는 똑 같은 글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루과이 몬테비데오의 ‘이지도르 뒤카스와 한국문학’이라고 하면 누구나 한 마디는 하고 싶어질 것이다.
12. 시몬 볼리바르와 최시형을 묻지는 않지만, 12.1 어떻게 문화와 문명이 반목할 수 있는지 ‘라틴’은 묻는다. 1968년 멕시코의 ‘유혈’이 옥타비오 파스의 시의 기점이 될 수 있었는지 없었는지 묻지 않았던 것은, 반목의 가능성을 묻는 이유가 아니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만약에 옥타비오 파스와 한국문학의 영향사가 성립한다면, 그것은 역사의 회기(回期)를 은유로 읽고 싶었던 까닭일 것이다. 12.2 아마도 옥타비오 파스는 죽는 순간까지 중남미 ‘모데르니시모’가 중남미 독립기 전후에 위치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물었을 것이다. 그는 이미 1972년 ‘포스트’라는 단어가 붙은 유령을 견제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왜 옥타비오 파스의 적자(適者)가 호세 에밀리오 파체코인지 알게 된다. 12.3 이들은 모두 스페인어를 쓴다. 아마도 앞서 언급한 칠레나 우루과이나 페루와 멕시코와 그 모든 ‘코르테스’ 언어권을 형성하면서도, 그들만의 ‘옥수수신’을 뛰어넘는 현실을 옥타비오 파스가 보여주었기 때문에 그것이 문명사를 넘어서는 영향사를 형성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파스의 시가 에로티시즘에서 비롯되어 다시 에로티시즘으로 귀환하는 먼 여정이라고 보는 견해에서는 타당한 이야기다.
13. 옥타비오 파스에 대한 서구(西歐)의 가장 ‘서구 추수적인’ 평가는 그가 1940년대에 도달한 초현실주의 계열의 작업이었다. 여기서 다시 묻자면, 왜 1980년 이전에 그의 작업이 ‘한국문학’ 그것도 시사(詩史)에 호출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폴 클로델이나 로버트 그레이브스와 한국문학의 영향관계를 묻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는 아닐 것이다. 옥타비오 파스가 동양학에 능통했다고 해서 그의 시와 한국과의 영향관계는 추수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14. 조심스레 결론을 내리건대, 옥타비오 파스의 언어가 일종의 ‘세계화된 피진’이 아닐까 한다. 결론은 물론 일종의 ‘역계몽(counter-enlightenment) 프로젝트’와 통할테다. 세르보-몬테네그로어를 썼던 이도 있고, 아일랜드 남부의 유려한 허밍을 쓴 이도 있는데 말이다. 이들 모두가 정치나 경제에 앞서거나 뒤지는 문화를 이룩했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는가? 계몽과 길항하는 언어로서의 ‘counter’, ‘cross’, ‘inter’를 이미 옥타비오 파스는 말했을 수도 있다.
15. 한국시는 옥타비오 파스의 은유를 읽었던 적이 없었다. (객관을 가장한)그의 은유는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이고, 한국시는 잘하고 있다. 모든 도움을 받으며, 누구의 영향을 겪지도 않으며, 한국시는 이미 ‘시라는 아방가르드의 어사(語辭)’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