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내 글쓰기의 스승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신수정
평론가,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1965년생
평론집 『푸줏간에 걸린 고기』 등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실은 나는 그에 대해서 어디에선가 이미 한 번 짧게 언급한 적 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또 그에 대해서 쓰려고 한다. 심지어 내 글의 ‘스승’이라는 이름으로, 이런……!
그는 1929년 체코의 한 도시에서 태어나 프라하에서 수학시대를 보내고 줄곧 그곳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당국으로부터 책 출판을 금지당하자 장년에 이르러 파리로 이주했다. 그리고 체코어를 버리고 프랑스어로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그의 소설은 우리에게 처음에는 독일어판으로, 그다음에는 체코어판으로, 마지막에는 당연하게도 프랑스어판으로 소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어떤 것들이 덧붙여졌고 생략되었는지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에게 최초로 세계적 명성을 안겨준 『농담』의 번역본을 앞에 두고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해 강한 불신과 혐오를 표출하기를 꺼리지 않았던 그가 한국어 번역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짐작되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본은 지금 우리로선 그와 분리되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나는 우리말로 된 그의 책을 모두 접했(다고 믿고 있)고 몇몇은 학생들과 강의 시간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또 어떤 경우에는 이런 식으로 그를 소개하기도 하면서 그를 잘 안다고 오해하고 있다.
‘우스꽝스러운 사랑’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작가가 자신에 대한 오해를 끝까지 감시하는 것은 그의 표현대로 ‘야생 양떼들을 쫓는 일’과 같을 것이다. 그 과정이 정 달갑지 않다면 글쓰기를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는 결국 그렇게 했고 오랜 은둔에 들어갔다는 소식만 전해져 온다. 독한 사람 같으니!
나는 잠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뒤적여본다. 25쇄, 1993년 본이다. 91학번인 남동생의 여친이 선물한 책인 듯하다. 그 당시만 해도 남녀 대학생들이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방식, 서로의 내면을 은근슬쩍 내보이는 행위, 요컨대 연애로 가는 길목에 책이라는 메신저가 자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동생의 여친은 책 앞 장에 이렇게 써놓았다. 무거운 쪽에 서 있고 싶다. 이 이야기를 밝히는 것은 그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려는 의도와 전혀 상관이 없다. 다만 이 말을 통해 이 소설이 받아들여지던 당시, 90년대의 분위기를 전달하고 싶을 뿐이다. 그는 지금과 달리 처음에는 일종의 불한당, 혹은 난봉꾼의 이미지로 받아들여진 것도 같다. 프라하 최고의 바람둥이 토마스의 연애 행각을 그와 겹쳐서 이해했을 수는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데올로기에 대한 그의 환멸이 문제였을 수도 있다. 비록 동구가 무너지고 소비에트가 해체되었지만 우리는 아직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저버리지 않은 채 사회주의를 유일한 대안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인간 실존에 대한 최고의 농담과 뒤섞는 그의 태도는 이제 막 민주화라는 말의 집단적 환각을 실감하기 시작한 우리의 열정과 그리 잘 맞아떨어지는 짝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의 책은 무서울 정도로 팔렸지만 또 어이없을 정도로 혹평되기도 했다. 우리는 그를 정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사회주의의 배반자로 간주하기를 좋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의 뒤를 대체하기 전까진.
돌이켜보면 그것이 90년대였다는 생각도 든다. 그는 이후 소리 소문 없이 90년대 소설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지만 그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그의 소설을 탄복하면서 읽었지만 공식적으로 그의 소설이 정말 진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소설이라고 공언하기는 어려웠다. 늘 단서가 따라붙었다. 소설을 전체주의적 권력에 의해 강요되는 망각에 대한 저항으로 규정하는 그의 입장은 ‘전체주의’와 ‘망각’을 연결 짓는 데 모종의 저항을 견지하고 있던 우리에겐 그놈의 망할 포스트 모더니스트의 가벼운 유희 가운데 하나거나 철 지난 예술지상주의자의 늦바람 정도로 오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그의 책이 아이로니컬하게도 이 땅에서도 그의 조국과 마찬가지로 상징적 의미의 금서 비슷한 역할을 했던 것은.
그러나 모든 금서는 또 얼마나 살 떨리게 매혹적인가! 나는 그가 소설의 서두에서 자신의 주인공들에게 말을 건네며 그들의 탄생을 지켜보는 순간을 묘사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했다. 이를테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 니체의 영원회귀를 인용하며 어깨에 힘을 팍 주고 있는 첫 대목을 지나 소설의 주인공 토마스를 소개하는 대목 같은 것.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나는 토마스를 생각해왔다. (···) 그가 자기 집 창가에 서서 안마당 너머, 건너편 거주 구획의 담벽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또 『불멸』에서 우리의 여주인공 아녜스가 처음 등장하는 대목 같은 것. “아녜스는 누구인가? 이브가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왔던 것처럼, 비너스가 물거품에서 탄생했던 것처럼 아녜스는 내가 수영장에서 보았던, 손을 들어 수영 선생에게 작별인사를 하던 60대 부인의 한 몸짓, 어느새 나의 뇌리에 깊숙이 아로새겨진 그 몸짓에서 나왔다.”
이런 대목들은 지금 다시 읽어도 여전히 숨이 멎는다, 멋있어서. 이로써 그에 대한 매혹의 일부는 정리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자유, 현실과 환상이 서로 뒤섞이는 에로틱한 순간, 허구의 간섭이 없이는 현실의 어떤 것도 하나의 의미를 획득할 수 없는 세계에 대한 승인, 이 승인이 무의미를 한순간의 매혹으로 잡아채는 박진감, 그 번뜩이는 사유의 전환, 그 전환으로 우리의 고독이 잠시나마 실존의 마법으로 승격되는 전율, 경이, 그로 말미암은 우리 인간 존재의 위엄! 그는 소설이라는 장르가 긴 세월 정비해온 갖가지 트릭과 장신구들을 소설 속에 구겨 넣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하기를 즐긴다. 그것은 소설이라는 장르가 긴 세월 정비해온 갖가지 트릭과 장신구들에 대한 사무치는 애도이자 그것에 대한 해체, 그 탈속의 경지이기도 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그가 당국이 강요하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독주와 독트린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이처럼 소설의 자유야말로 소설의 정치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18년 뒤늦게 프라하 땅을 밟아보게 된 나는 그곳에서 그의 흔적을 더듬어보고 싶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오랫동안 나에게 그는 소설이라는 말과 등가였다. 나는 프라하를 알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면 할 말이 없다. 많은 이들이 경고하고 있는 대로 프라하는 이제 프라하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가까스로 찾아간 공산주의 박물관. 여행객에게는 다소 과도한 비용을 지불하고 공산주의가 박물관의 유품으로 전시되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은 진실로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다. 레닌과 스탈린이 한 복도에 나란히 서 있고, 비밀경찰의 물품들이 적나라한 설명과 함께 도열해 있는 가운데 68년 프라하의 봄을 찍은 사진들이 ‘자랑스럽게’ 스크린에 명멸하면서 공산주의를 상품화하고 있는 모습은 나에겐 너무 늦게 도착한 자가 감수해야 할 역사의 복수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 순간 나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비에트의 해체와 더불어 다시 보헤미아의 중심지가 된 프라하는 그의 소설이 강력하게 요청한 바 있는 그 자유를 자본의 이름으로 그에게 또다시 고스란히 되돌려주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나는 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고국을 떠나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을. 그는 두 번 추방당했다. 한 번은 공산당에 의해, 또 한 번은 체코 공화국에 의해.
그것은 미제의 앞잡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의 책임을 물어 북에 의해 처형당한 시인 임화가 정말 미제의 서류에 이름이 올라있다는 뉴스를 확인한 날의 소회와 비슷한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했다. 아픈 듯도 했고 슬픈 것 같기도 했다. 역사는 이렇게 나에게로 와서 농담이 되었다. 그를 알 듯도 하고 여전히 모를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