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글밭단상

③통증이 오는 시간

박서영
소설가, 제16회 대산대학문학상 소설부문 수상자, 1996년생
소설 「윈드밀」 등

글밭단상③

통증이 오는 시간

작년 여름 경주로 여행을 다녀왔을 때였다. 서울로 돌아오던 길, 신갈분기점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하필 그날은 비가 많이 왔고, 하필 나는 버스 의자 등받이를 제일 끝까지 젖히고 있었다. 빗길에 차체가 옆으로 미끄러지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뒤집혀서 전복됐다. 아픈 줄도 모르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 도착하고 나서야 손목이 찢어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다리며 팔에 온통 멍이 든 것을 발견했다. 다음 날이 되자 오른쪽 발목이 시큰하게 아팠다. 모두 사고 당시에는 몰랐던 것들이었다.
반깁스를 하고 절뚝거리며 회사에 출근했다.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했다는 사람들의 말에 나는 그냥 인대만 다쳤을 뿐이라고 넘겼다. 누가 부축을 해주려고 하면 내가 얼마나 괜찮은지를 설명하려 애썼다. 미상불 이 정도면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날 버스에 나보다 더 다친 사람이 태반이었다. 특히 어떤 여자는 팔 한 쪽이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있었다. 그에 비하면 나는 뼈가 부러진 것도 아니었고 출혈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시골집에 있는 엄마에게도 신경 쓰지 말라고 되풀이했다. 그러나 발목의 통증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갈수록 심해지기만 했다.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야 했는데, 그때도 누가 병문안을 오면 부담을 느꼈다. 대체 왜 병문안을 오지? 정말로 괜찮은데.

그러나 이후 버스를 보면 저절로 멈칫거리게 됐다. 여러 번 환승을 하는 한이 있어도 무조건 지하철을 탔다. 택시에서도 생전 안 하던 안전벨트를 매고 기사님에게 천천히 가달라고 부탁했다. 한번은 어쩔 수 없이 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출발하자마자 멀미가 올라왔다. 계속 식은땀이 났고 창밖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죽을까 봐 너무 무서웠다.
세상에 나보다 더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이건 기껏해야 인대가 찢어진 정도인데, 이게 뭐라고, 싶으면서도 자꾸만 사고가 날 것 같이 느껴졌고 운전이 심하게 못 미더웠다. 결국 중간에 내려야만 했다. 어이없는 건 반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버스를 잘 못 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아픈 것들이 있다. 그때는 아픈 줄도 몰랐는데, 나중에 와서 보면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그 자리만 흉이 져 있다. 이런 상처는 일상적인 순간에서 돌연히 발견하게 된다. 가령 책을 읽다가 그동안 내가 들었던 말들이 여성 혐오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닫게 되고, 초등학교 시절 교사들이 체벌이랍시고 아이들을 때렸던 게 그냥 폭력에 불과하단 걸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문득 음식점에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가 떠오른다. 연달아 주문 실수를 한 날이었다. 처음에는 참고 넘어가던 주방 직원이 마지막에는 내게 큰 소리로 화를 냈다. 온라인 게임에서나 들을 법한 심한 욕설이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훗날 일을 그만둔 뒤 다른 직원을 만나 그의 근황을 전해 들었다. 나한테 무척 미안해한다면서, 나중에 내가 소설에 본인 욕을 쓸까 봐 신경 쓰고 있다고 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꼭 반사작용처럼, 세상 호탕한 척 말했다. “아니요? 저는 그때 일 다 잊어버렸는데요?”
오는 주말에는 버스를 탈 생각이다. 은행에 가서 적금도 해약하고 미용실에서 머리도 새로 할 것이다. 그러면 기분이 좋아져서 버스에 대한 공포도 조금 흐려지지 않을까? 물론 도저히 안 되겠으면 지하철을 탈 것이다. 트라우마를 억지로 건드릴 필요는 없다. 모든 사고는 후유증과의 싸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