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번역 후기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이성일
연세대학교 명예교수, 1943년생
영역서 『The Wind and the Waves: Four Modern Korean Poets』 『The Moonlit Pond: Korean Classical Poems in Chinese』 『The Brush and the Sword: Kasa, Korean Classical Poems in Prose』 『Blue Stallion: Poems of Yu Chi-whan』 『The Crane in the Clouds: Shijo, Korean Classical Poems in the Vernacular』 『The Vertex: Poems of Yi Yook-sa』 『Nostalgia: Poems of Chung Ji-yong』 『Shedding of the Petals: Poems of Cho Jihoon』 등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일역영역 『신석정 시선집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한 평생을 교단에서 조용한 삶을 살며 삶의 애환을 담담하게 시로 기록하여 놓은 신석정(1907~1974) 선생은 우리 말의 아름다움을 진솔하게 보여준 시인들 중의 한 분이다. 세속의 명성을 추구하지 않고 조용히 절제된 삶을 산 신석정 선생은 삶의 아름다움과 아픔을 과장됨이 없이 적어 놓는 것으로 한 시인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라 생각하신 듯하다. 이번에 내가 펴낸 신석정 영역시선집의 헌사ㅡ“삶의 환희와 고통을 꾸밈없는 말로 노래한 신석정님께 바침(To the Memory of Shin Sŏk-jŏng, who sang of the joy and the pain of life in ungarnished words)”ㅡ는 그분의 시세계에 대한 나의 소감을 요약한다.
신석정 시인의 작품들을 영역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한 줄 한 줄 영어로 옮겨 나가는 동안 원시의 행들이 영어라는 외국어로 자연스럽게 탈바꿈하며 흘러 나온다는 사실이었다. 시의 번역에 임하고 있는 사람이 목표가 되는 외국어로 한 작품을 옮기고 있다는 의식조차 갖지 않은 상태에서 한 편의 번역시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번역자에게 더할 수 없이 다행스런 일이다. 그리고 이런 순간이 주어지는 것은 번역자의 외국어 구사능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원시를 쓴 분의 시행들이 담고 있는 시적 영감의 표출이 한 번역자로 하여금 그분이 한 행 한 행 적어 나가고 있었던 순간의 맥박을 한 외국어로 재현하게 만들어 준다는 사실에 근거한다. 플라톤이 시를 정의하여 “시신(詩神)이 부여하는 영감(Divine Furor)”의 표출이고, 시인은 그 영감의 “매개체(medium)”일 뿐이라고 정의하였듯, 역시에 임하는 자가 원시를 탄생시킨 시적 순간의 감흥을 번역의 목표가 되는 외국어로 재현하게 된다면, 그것은 역자가 누릴 수 있는 최상의 기쁨이다.
신석정 시인의 작품들에는 “어머니”를 향한 소청이나 물음이 자주 나온다. 이분의 첫 시집 『촛불』 (1939)에 담긴 작품 한 편을 다시 읽어 봄으로써 그분의 시심(詩心)의 단면을 살펴 보자.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햇볕이 유달리 맑은 하늘의 푸른 길을 밟고
아스라한 산 너머 그 나라에 나를 담쑥 안고 가시겠습니까?
어머니가 만일 구름이 된다면ㅡ

바람 잔 밤하늘의 고요한 은하수를 저어서 저어서
별나라를 속속들이 구경시켜 주실 수가 있습니까?
어머니가 만일 초승달이 된다면ㅡ

내가 만일 산새가 되어 보금자리에 잠이 든다면,
어머니는 별이 되어 달도 없는 고요한 밤에
그 푸른 눈동자로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1932년 ≪문예월간≫ 1월호)

이 시는 시인이 25세였던 1931년에 타계한 어머니를 향한 세 물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시를 영역하려 마음먹은 순간, 나는 이미 한 번역자가 아니라 다른 언어로 이 시를 쓰고 있는 신석정 시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Will You Peep into My Dream?

Treading on a blue lane in the sky bright with sunlight,
Will you carry me in your arms to a land far over the hill?
If you, Mother, become a cloud—

Rowing in the quiet Milky Way of the windless sky at night,
Can you show me every nook and corner of the starry land?
If you, Mother, become a crescent moon—

If I turn into a mountain bird and fall asleep in my nest,
Will you, Mother, become a star, and on a moonless night
Peep into my dream with your eyes that have turned blue?

대자연, 아니, 우주의 한 편린으로 환원한 어머니를 향하여 던지는 이 일련의 질문은, 모든 생명체가 공유하는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그려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육신은 갔으나 생명의 유전(流轉)이 보장하는 단절없는 사랑의 영속성을 소박한 언어로 노래하고 있다. 이 짧은 시는, 석정 시인의 작품세계가 ‘언어의 기교’를 배제한 가운데, 저 옛날 영국 시인 필립 시드니(Philip Sidney)가 시의 이상(理想)으로 천명한 스프레자투라(sprezzatura)—하기 힘든 일을 쉽게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를 구현하고 있다고 말하여도 좋을 것이다.

※ 영역 『신석정 시선집 -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Do You Know That Faraway Land? Poems of Shin Sŏk-jŏng』은 재단의 한국문 학번역출판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2020년 미국 Cross-Cultural Communications에서 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