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우리문학의 순간들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김남일
소설가, 1957년생
장편소설 『청년일기』 『국경』 『천재토끼 차상문』, 소설집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세상의 어떤 아침』 『산을 내려가는 법』, 산문집 『책』 『수원을 걷는 것은 화성을 걷는 것이다』 등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1)


1932년 11월 어느 날, 함경북도 나남의 카페 ‘동’.
효석은 아까부터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 밤, 누구라도 올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있다손 치더라도 이렇듯 눈 많은 밤에야 쉬이 나타날 재간도 없다. 조선주둔군 19사단의 정문은 봉쇄되었고, 묵 내기 화투를 하던 젊은 치들의 발길도 진작 끊겨 버렸다. 오직 막차를 기다리는 한 작가가 있을 뿐인데, 정작 그는 막차가 늦게 떠나기만을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 그는 그저 그곳의 모든 순간들이 행복했다.
눈 나리는 고요한 ‘동’의 밤.
북국의 눈송이는 유달리 굵다. 그리고 밤의 눈이란 깊은 푸른빛을 띤다. 창 기슭에 쌓이는 함박 같은 눈송이를 두터운 휘장 틈으로 내다보며 난로와 더운 차에 얼굴을 붉히노라면 감정이 사뭇 화려하게 장식된다. 찬란한 꿈이 무럭무럭 피어올라 가게 안에 찬다. 다시 잔에 입을 댄다. 여전히 따뜻하다. 모카의 구수하면서도 달콤한 향이 입안 가득히 퍼진다. 효석은 스스로 대견했다. 처음에야 아무 마련도 없던 것이 남양(南洋)까지 다녀와 커피 맛에 익숙한 친구가 있어 그의 권고로 이제는 적어도 모카, 자바, 믹스트 이 세 가지만큼은 가려내게 되었다. 그러자 생활이 한층 다채로운 향기를 풍기기 시작했다. 옳거니, 생활은 재료만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건 향기다. 향기를 빼앗기면 거기 무엇이 남는가. 오직 삭막하게 흘러내리는 모래뿐일 테지……

이효석

이렇게 굵은 눈송이가 휘날리는 밤, 효석이 난로와 차에 몸을 덥혀가며 레코드에서 흐르는 <제 되 자무르>의 콧노래에, 혹은 폴 베를렌의 <샹송 도톤>에 귀를 기울이는 까닭 또한 그 생활의 향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세상에서 가장 싫은 일, 즉 경성(鏡城)에서 나남까지 버스로 달리기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하물며 빈속에 버스로 고개를 넘는 것이야 말하여 무엇 하랴. 휘발유 냄새가 속을 훑으면 금세 구역질이 난다. 그래도 그는 그 지긋지긋한 고생을 꾹 참고 매번 버스에 오르는 것이다. 눈 딱 감고 길어야 이십분의 지옥을 견디면 곧 낙원의 문턱에 그를 내려주었으므로.
때로 십리 길을 타박타박 걸어 넘는 적도 있는데, 그마저 즐거웠다. 결혼해서 달아나듯 아내의 고향 경성에 온 것이 지난해 여름이었다. 그때부터 한 해를 겨우 넘겼다. 북국엔 6월 들어서야 봄이 온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그러면 뒤늦게 민들레·오랑캐꽃·꽃다지가 다투어 피고, 능금이며 앵두나무에 잎이 돋고, 장다리꽃이 벌판 가득 노랬다. 물 길러 오는 젊은 처자들의 허리도 늠름히 길어 보였다. 봄은 누구에게나 비슷한 심사를 불러일으키는 모양으로, 그네들은 채 차지도 않은 물동이를 이고 급스럽게 우물터를 떴다. 그런 그네들의 머리채는 길고 벗은 다리는 오리발같이 빨갰다. 여름에는 멀리 바다가 시원스레 내려다보이고, 가을에는 고개 밑 과수원에 잘 익은 능금들이 송이송이 전설 속 붉은 별들만 같았다. 겨울에는 한층 공기가 차고 맑아 눈발이 휘날리는 속을 부지런히 걷노라면 몸이 후끈 달아올랐다. 그럴 때면 고개 양쪽의 마을과 거리가 다 제 것인 양 마음이 넉넉해졌고, 귀를 때리는 바람도 크게 사납지는 않았다.
이윽고…… 공원 옆 모퉁이에 서 있는 조촐한 한 채의 집이 나타난다. 붉은 칠이 벗겨진 ‘DON’이라는 글자가 밤에는 푸른 등불 밑에 깊숙이 묻혀 버린다. 효석은 그 이름의 유래를 모른다. 물어보지 않았다. 그저 아름다운 이름으로 기억할 뿐이다. ‘동’의 주인들은 늘 반가운 표정으로 그를 맞이했다.




젊은 남자는 주인인 동시에 삼류급 지방신문의 기자였다. 걱실걱실 말이 헤프고 자랑이 많았으나 그만큼 속은 날탕인 친구였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여성 작가와 모종의 연애사건도 있었노라 말했는데, 듣다 보면 허황된 밑천이 쉽게 드러났다. 여주인은 북국의 광산에서 자라난 광부의 딸이었다. 문학잡지의 대단한 애독자여서, 난롯가에 모여 문학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누구에게도 빠지지 않았다. 한번은 효석이 어떤 우익 여성 작가의 단편을 칭찬한 적이 있었는데, 부인은 꽤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부부의 처남이자 남동생은 지식청년이었는데, 그 또한 거북스러운 객식구로 얹혀살며 카페의 한 풍경을 이루었다. 학창시절 동맹휴학을 지도하다 반대파에게 맞았다는 칼침의 흔적을 자랑삼아 몇 번이고 내보였다. 그러나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의 부스러기요, 정작 현재의 그는 단벌의 구두 자랑이나 하면서 커피를 내리는 게 주 임무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효석은 깜빡깜빡 더 먼 북국에 가 있는 적이 많았다. 원산에서 해삼위(블라디보스토크)까지 캄캄한 선창에 숨어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밀항했다는 청년이 떠올랐고, 신생 소비에트에 가서 노동자들의 시위에 휩쓸려 함께 노래 부르고 적기를 휘둘렀다는 사내도 떠올랐다. 소년으로 변장한 채 압록강을 넘는 국제열차에 몸을 싣고서야 자신을 늙은 호인(胡人)에게 팔아버린 당숙의 손아귀를 가까스로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았다는 어린 계집의 당돌한 모험담도 생각났다. 물론 항구에서 항구로 쉴 새 없이 꿈을 좇아 떠도는 청춘 남녀들의 이야기도 빠질 리 없었다. 첫 창작집 『노령근해』는 말하자면 그런 풍경들을 두루 담아낸 폭이었다.
‘동’의 패들과 어울리지 않을 때 효석은 가끔 책을 읽었다. 김빠진 맥주 같은 번역으로 『이녹 아든』도 읽었고 더없이 향기로운 『전원교향악』도 읽었다. 지드의 소설에는 한 자 보탤 수도 없으며 한 자 빼는 것도 아까웠다. 임의의 어떤 구절을 뜯어보든 그것은 늘 최후의 것이요 최상의 것이었다.
제르트뤼드는 기어코 목사에게 묻는다.
“목사님이 보시기에 세상은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가요?”
장님인 그녀의 목소리가 ‘동’의 좁은 실내를 가득 채운다. 그럴 때 효석은 가슴이 벅차 오는 감격에 휩싸이게 마련이었으니, 차마 한두 방울 눈물이 맺힌들 아깝고 부끄러울 것 하나 없었다. 아, 문학이여, 인류와 함께 길이길이 영화롭고 다행하기를!
며칠 후, 효석은 우편국에 들러 원고를 보냈다. 먼 데 지인에게 쓴 편지도 동봉했다.

- 아침부터 눈이 푸실푸실 내립니다. 눈 오는 북방의 정서, 상상하여 보시오. 오늘은 여옥이 생(生) 백일 만이외다. 선물 사러 나남을 가는 길이외다. 원고를 간신히 보냅니다. 오래간만에 붓을 들었더니 붓끝이 까슬까슬하여 겨우 썼소이다. 일 엽 소설이 두 엽 소설이 되었나 보외다. (중략) 겨울에나 가게 될는지요. 못 가면 정희 씨 이곳에 놀러 오시오. 총총하여 두어 자 이만 그칩니다.2)

조금은 쓸쓸한 발길로 우편국을 나섰다. 그래도 그는 애써 행복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는 더 이상 제국대학을 나와 엉겁결에 총독부 경무국 도서과에 취직해 다니던 시절의 참혹하도록 부끄러운 그가 아니었다. 아니, 아니기를 바랄 뿐이었다. 세상도 시치미를 뚝 뗀 채 그런 그를 지켜보는 것 같아, 효석의 발길은 어쩐지 그런 세상 바깥으로 자꾸 달아나는 것이었다.


1) 이 글을 쓰는 데 주로 「고요한 ‘동’의 밤」, 「북위 42도」, 「6월에야 봄이 오는 북경성의 춘정」, 「전원교향악의 밤」 등의 수필과 단편 「북국 사신」. 「행진곡」. 「기우」 등의 단편을 참고했다. 모두 이효석문학재단 편, 『이효석 전집(5)』(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6) 수록.

2)  1932년 11월 27일자 편지로, <삼천리> 잡지사에 근무하는 소설가 최정희에게 보낸 것. ‘일 엽’ ‘이 엽’의 ‘엽(頁)’은 ‘쪽’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