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명작순례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가주연
번역가, 1981년생
역서 『찬란한 길』 등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일역마거릿 드래블 장편소설 『찬란한 길』


 

2012년 여름, 대산문화재단의 외국문학번역 지원 사업에 응모하기 위해 받은 추천 번역 작품은 네 개였다. 세 남성 작가와, 한 여성 작가. 공교롭게도 여성 작가가 그중 가장 늦게 태어났고, 여성 작가의 작품이 연대기상 가장 늦은 시기에 출간되기도 했다. 가장 가까운 시기에 쓰인 여성 작가의 작품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다른 선택지 중 1960년대 작품도 훑어보았다. 엄청난 분량에 문체도 매우 까다로웠다. 적당한 시간 내에 번역을 마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별 고민 없이, 1987년작 마거릿 드래블의 『찬란한 길』을 택했다. 1800년대에 출간된 작품 둘은 고려하지도 않았다.
역자가 통번역대학원에 다니던 시절 어느 은사님께서는, 통역할 때마다 ‘내가 또 뭘 모르는가’를 늘 생각하라고, ‘결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함부로 생각하지 마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전용기 타고 다니며 수백만 직원을 둔 세계적 기업의 CEO의 말을 갓 스물 몇 살 먹은 너희들이 감히 그렇게 쉽게 잘 통역할 수 있을 거라고 꿈도 꾸지 마라’고 단언하셨다. 그 날카로운 말씀이 내내 가슴에 남아있어서였을까? 그렇기도 하고, 나는 자신의 능력을 잘 가늠하는 편이기도 하다. 아직 충분치 못한 능력으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번역하고 싶었다. 19세기에 쓰인 문장보다는 20세기의 문장을, 같은 여성인 작가의 여성 인물들의 이야기를 번역하는 게 그나마 덜 힘들 것이라고 판단했다. 문학평론가 유종호 선생께서는 “번역은 근사치를 향한 진땀나는 포복”이라고 말씀하셨다. 땅에 배를 대고 기어가는 지난한 여정에, 하나의 장애물이라도 더 적은 길을 택할 수밖에. 일단 작품이 정해지고 나면 ‘이 소설을 만난 건 운명’이었다고 생각을 바꾼다.
큰 고민 없이 결정한 작품을 번역하면서도 수없는 난관에 부딪힌다. 번역이 원래 그렇다. 번역을 하는 동안, 대부분의 시간은 막막하기만 하다. 어느 부분을 읽다가는 내가 쓴 문장에 도취되어, 빨려가듯 읽고 있게 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훨씬 긴 시간을 ‘이게 뭐지? 난 뭘 한 거지?’ 하는 회의와 ‘다시는 번역 안 해’ 하는 체념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고투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뭘 모르는가.
1980년대 영국 지식인 계층의 삶과 마가렛 대처 집권 후의 사회변화를 소설로 접하는 것은 독특하고 귀한 경험이었다. 『찬란한 길』은 어려운 시절의 이야기이며, 전환기를 살아가는 여성의 서사이기도 하다. 드래블은 지켜본 것을 증언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했고, 그 증언은 아주 세밀하고 사실적이고 방대한 이야기가 되었다.
내 앞에 펼쳐진 1980년대 영국을 더 잘 들여다보기 위해서 마가렛 대처 시대에 대한 책을 여러 권 정독해야 했다. 참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일정 수준의 ‘공부’가 필요했다. 마가렛 대처는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믿었고, 자본주의를 미덕으로 여겼다. “사회 같은 건 없다”며 개개인을 강조했고, “모두에게는 불평등해질 권리가 있다”고 선언했다. 대처는 기득권층, 지식인, 예술가, 전문직 종사자를 좋아하지 않았고, 학문보다는 실질(實質)에 끌리는 사람이었다. 대처는 스스로를 “합의의 정치인이 아닌 확신의 정치인”으로 규정했다. 대처 이후의 영국은 결코 이전과 같지 않았다. 『찬란한 길』이 포착하고 있는 시대는 영국 현대사의 흐름이 바뀌고 있는 시대였다.
우스갯소리로 번역 작업의 절반이 검색이라고도 하지만, 『찬란한 길』은 시대에 대한 이해 외에도 온갖 배경지식이 필요한 글이기도 했다. 각주가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클럽이 무엇인가. 내가 아는 클럽일까. 영국 상류층 사람들이 드나드는 클럽이란? 셰익스피어, 단테, 블레이크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의 이름, 그리고 그들의 작품과 맞닥뜨렸다. 때때로 이탈리아어 사전도 참조해야 했다. 수없이 검색해도 찾을 수 없었던 어떤 식물의 이름에는 각주가 필요했지만 각주를 달지 못하고 영문 병기만 한 채로 둘 수밖에 없었다. 아직도 그 식물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가는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풍경을 중시하고 전원을 동경하는 영국 국민성을 반영한다고 보아야 할까. 영국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는 영국을 잘 아는가? 막연하게, 좀 아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그렇지 않았다.
리즈와 스티븐은 서로 반말을 해야 할까, 존대를 해야 할까. 리즈와 찰스는? 알릭스와 브라이언은?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직면하는 대표적인 문제 중 하나가 반말과 존댓말의 경계이다. 우리말은 이분법적이다. 반말은 반말이고, 존댓말은 존댓말이다. 영어는 그렇지 않다. 친밀감과 위계, 격식의 정도 등에 따라 미세하게 달라지며 연속하고 있을 영어의 스펙트럼 한가운데서, 어느 지점부터 존댓말로, 어느 지점부터 반말로 번역할지 결정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반말을 쓰자니, 그만큼 친밀한가? 존대하자니, 너무 예의를 차리게 되는 건가? 사회적 통념상, 이들의 입장 간에 형성된 위계상 누가 누구에게 존댓말, 혹은 반말을 해야 하는가? 그것은 결국, 아무리 텍스트와 행간을 읽고 또 읽고, 미묘한 어감을 눈이 빠지게 읽어내려 노력한데도, 번역자의 독단적인 결정이 되고 만다. 고심 끝에 내린 결정들이 최선이었기를 바랄 뿐이다.
번역을 시작하고 나서 생긴 개인적인 사정과, 유난히도 완벽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이 책의 번역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역자의 사정을 참작하고 관용을 보여준 대산문화재단에 깊이 감사드린다. 덕분에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매만진 작품을 내놓을 수 있었다. 『찬란한 길』을 번역해 세상에 내놓은 덕분에 나는 이전과는 다른 번역가로, 이전과는 결코 같지 않은 사람으로 거듭났다. 다시 한 번 감사 드린다.

※ 『찬란한 길』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2020년에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