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이 계절의 문학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김유태
매일경제신문 문화부 기자, 1984년생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평소 친분이 있던 김태성 한성문화연구소 대표의 연락을 받은 건 지난 3월 중순이었다. 옌롄커 방한 인터뷰 당시 첫 인연을 맺었고, 그와 비슷한 계보를 이어온 개량형 리얼리즘 계열의 소설가 류전윈 서면 인터뷰까지 김태성 대표가 통번역을 맡아준 이후로 가끔 안부 정도는 나누는 사이였다. 통화의 골자는 코로나19를 둘러싸고 중국 정부의 경직성을 정면 비판한 옌롄커 글을 본지에 게재 가능한지의 물음이었다. 《대산문화》에 실린 옌롄커 기고문을 이미 지면에 기사화한 바 있었고, 존경하는 최재봉 선배를 통해 한겨레신문에 같은 논지의 옌롄커 글이 보도됐음을 확인했던 터여서 망설임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비밀을 실없이 고백해두자면 한국에 출간된 옌롄커 전작(全作)을 관통한 애독자로서 군침 도는 제안이었다. 데스크부터 설득하여 결국 신문에는 한 페이지로, 원고지 50장짜리 전문은 버리는 문장 없이 온라인에 실었다.
봉쇄된 도시 우한의 혹독한 삶과 죽음을 추념하고, 역병 속에서 희생하고 분투한 망자와 환자를 위로하려는 옌롄커의 글이 단지 중국 정부의 비합리성만을 겨냥하는 글이라고 오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인류의 악몽 같은 나날을 응시한 소설가의 참혹한 진단, 지배자를 숭앙하는 가공송덕 분위기에의 서슴없는 일갈이 글의 요지다. 호각을 불지는 못할지언정 호각 소리를 먼저 듣는 사람이 돼야 한다는 대작가의 뼈아픈 진단은 코로나19라는 역병의 안개를 관통한 뒤 그가 단언한 진실의 전부이기도 했다. “삶의 수많은 진실들은 소설이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어떤 진실한 삶의 모습은 허구라는 교량을 통해서만 비로소 확실한 경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1)라던 옌롄커가 허구의 교량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현실을 향해 나아가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특기해둘 만한 역사적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옌롄커는 자신의 자서전 첫 머리에서 시대와 시간의 조건으로 기억(記憶)과 사건(事件)을 꼽은 바 있다. 기억하기 때문에 시대가 존재하며, 사건이 있기 때문에 시간도 있을 수 있다고 그는 보는데, 옌롄커 통찰에 기댄다면 실시간으로 과거가 되어가는 중인 오늘날 시대와 시간은 코로나19에 역행하려는 인간 군상으로 기억됨이 옳겠다. 한국은 어느덧 역병이 잦아들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시작했고 중국은 일찌감치 역병 극복의 축포를 쏘아 올렸지만 세계를 감각하는 촉수를 예민하게 뻗어본다면 아직은 때가 이른 편이니 옌롄커 사유는 구문이 아니고 여전히 유효한 사유를 형성한다.
인간의 존엄이 상실된 역병의 시대에 이르러 옌롄커의 물음은 과연 무엇이 인간인지, 인간의 무엇이 세계를 이루는지에 관한 물음에 가닿는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문학의 역할과 본질에 대한 사유로 이어지기 마련인데 아마도 영원한 난제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살피자면, 역설적으로, 올해 들어 창궐한 역병은 문학의 존재 이유를 설득해내는 가장 유용한 도구로도 기억될 수 있겠다. 이미 죽은 줄 알았던 문장이 되살아나 현실의 역병과 등가를 이뤘다. 카뮈의 『페스트』는 3월부터 베스트셀러 최상위권에 오르며 증쇄 열풍으로 이어졌다.2) 소도시 오랑에서 도시 우한의 실루엣을, 의사 리외에게서 리원량의 사후 표정을, 페스트균에서 코로나의 미래를 발견하려는 욕망의 현현이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는 감기처럼 옮는 실명(失明)의 세계로써 코로나 시대 불가촉(不可觸)적 현실을 발견하게 했고 편혜영 작가의 『재와 빨강』과 정유정 작가의 『28』 등의 소설도 역병과 인간과 악의를 조명케 했다. 또 가십 기사란 비판도 없진 않았으나 우한의 바이러스를 소재 삼은 딘 쿤츠 소설 『어둠의 눈』에의 때늦은 관심도 바이러스와 인간을 발견하려는 사유에의 욕망과 무관치 않았다.
허구의 서사보다 더 거짓말 같은 현실이 세계 곳곳에서 발동하자 현실 그 자체를 감가없이 그리는 행위만으로도 문학 본연에 가닿은 소설가도 있었다. 도시 우한에서 60일간 자신과 주변의 삶을 써내려간 중국 작가 팡팡의 블로그 연재 글 ‘우한 다이어리’는 가상의 플롯이나 알레고리적 시도 없이도 이미 인간이 위험하고 끔찍한 세계에 수감돼버린 무력자임을 증명해냈다. 마스크를 빨아 쓰는 일상부터 통제의 덫에 빠진 시진핑 정부를 향한 일침까지 팡팡은 전혀 가공되지 않은 문장으로 죽음을 그려냈다. ‘우한 다이어리’는 영미권 출판사 하퍼콜린스에서 먼저 출간된 후 올해 하반기 중에 한국에서 정식 발간될 예정이라 하는데, 코로나19가 종식될 기미가 보이지 않기에 주목을 끌지만 외신에서 보도되었듯이 팡팡과 그의 지지자를 향한 비난의 불씨가 자국 내에서 커지게 되면서 진실을 밝히는 글쓰기는 어쩌면 다시 위기를 맞게 될지도 모른다.
두서없는 글을 매듭지으며 하나의 질문을 공유해본다. 문학에의 환멸이 종횡으로 퍼지던 한국 사회에서 재난의 시대에 이르러 문학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독자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역병의 시대에 문학이 재조명되는 현실은 결코 가벼이 넘길 문제가 아니게 된다. 문학은 명멸을 반복하면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해 왔다. 문학을 공부한 이들은 어렴풋이 기억하겠지만 “이제 아무도 시(詩)를 읽지 않는다”는 종말론적 선언은 1960년대에 이미 진행됐다.3) 세기가 바뀌었음에도 인간은 여전히 문학을 추종하고 문학은 인간 그 자체를 추동하며 역병은 다시 그 사실을 입증했다. 문장을 거울삼아 인간은 자기 자신을 비추는 존재임을 전염병은 확인시켰다. 인간이 인간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은 한 인간의 존엄의 곁에 선 문학은 수십 년, 혹은 수 세기가 지나서도 여전히 인류의 곁에 남을 것임을 코로나19는 환기해준다. 그러므로 우리가 광기 대신 이성을, 악의 대신 선의를 포기 않는 이유마저도 문학 덕분은 아닐까.

1)  옌롄커, 김태성 옮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웅진지식하우스, 2008년, 13쪽.
2)  “시대가 존재하는 것은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시대는 흘러가면서 반드시 칼로 새긴 듯한 흔적을 남기고 어떤 시대는 뜬구름이 흘러가듯 평범하고 담담하게 별로 이상할 것 없이 지나가기도 한다. (중략) 시간이 있을 수 있는 것은 어떤 사건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건은 시대의 표지였다. 노인들의 얼굴에 난 주름이 세월을 나타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옌롄커, 김태성 옮김, 『나와 아버지』, 자음과모음, 2011년, 19~20쪽. 강조는 인용자.
3)  “이제 아무도 시를 읽지 않는다. 소녀들은 가슴에 시집을 품고 다니기를 그만두었고 청년은 그의 연인에게 시를 외워 주지 않는다. (중략) 그러나 이제 시는 대중의 입술에서 자취를 감춘다. 시의 자리에는 재즈의 광란적인 리듬이, 여배우의 풍만한 육체가, 정치가의 제스처와 저널리스트의 선동적인 어휘가, 그리고 도시 청년의 재치 있는 화술이 차지한다. (중략) 그렇다. 오늘날 우리는 시가 남지 않고 시인이 남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52인 시집 편집위원 저, 「이 책을 읽는 분에게」, 『52인 시집』, 신구문화사, 1967년, 2~3쪽. 강조는 인용자. 한문 등은 현대어로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