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대산칼럼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경욱
소설가, 계간『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1년생
단편집 『소년은 늙지 않는다』 『내 여자친구의 아버지들』, 장편소설 『야구란 무엇인가』 『개와 늑대의 시간』 등

코로나 시대의 역설



흔히 아는 것과 달리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의 직계조상이 아니다. 진화론의 관점에서 둘은 부자관계가 아닌 경쟁관계였다. 뇌의 용량도 크고 체격도 우월한 쪽은 네안데르탈인이었지만 종의 전쟁에서 승리한 쪽은 호모사피엔스였다.
『사피엔스』의 저자에 따르면, 호모사피엔스에게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자의 이빨로 목걸이를 엮게 했을 이야기. 모닥불을 빙글빙글 돌며 춤추게 만들었을 이야기. 그런 상징의 힘에 기대어 원초적 두려움을 제어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리하여 공동체 구성원을 비약적으로 늘릴 수 있지 않았을까. 일대일 싸움이라면 지기 힘들었을 네안데르탈인도 팀플레이를 펼치는 더 커다란 규모의 적 앞에서는 역부족이었으리라.
바이러스 하나가 호모사피엔스의 생존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세계적 관광명소는 발길이 끊겼고, 스타디움에는 정적만 감돌며, 종교시설은 굳게 문이 닫혔다. 규모의 경제학을 떠받치고 있던 집적과 효율의 신화가 약한 고리로 돌변했다. 접촉은 위험하다.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저만치 떨어져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어야 한다면 마스크로 코와 입을 가리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
고백컨대, 마스크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나는 실외에서까지 착용하는 건 과하다고 여기는 편이었다. 이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사람이 가까이 오면 움찔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내 일부가 되었을지 모르는 바이러스가 그 사람에게 건너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불러온 진짜 공포는 호흡이라는 본능적 행위가 내 목숨은 물론 타인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데 있다. 우리는 마스크를 써야 했다. 생존자가 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살인자가 되지 않기 위해.
코로나가 물러갔을 때 어떤 세상이 남아 있을지 짐작도 할 수 없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원초적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상징화라는 백신으로 면역해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악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두려움을 타자에 투사해 파괴하려 들 것이다. 차별과 혐오는 그런 식으로 생겨난다. 악이 두려움을 숙주로 창궐한다면 상징이 백신이 되어야 한다. 마스크는 방역적 효능을 넘어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각자도생이 아닌 상생의 상징.
어쩌면 우리는 그동안 지나치게 밀착되어 너무 동떨어져 있었는지 모른다. 카페에 마주앉아 각자의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연인처럼. 대면할 수밖에 없기에 대면으로부터 달아났다. 만날수록 공허해지고, 모일수록 소외되는, 대면 속 비대면 시대.
풍경은 달라졌다. 화상으로 수업을 듣고 회의도 진행한다. 떨어져 있기에 서로의 얼굴을 더 정성껏 들여다본다. 대면의 두려움이 사라지자 비로소 대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기에 상대편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눈빛에도 더 마음을 기울인다. 온 얼굴을 드러내던 시절 유령처럼 서로를 스쳐가던 우리는 마스크가 가리고 있는 서로의 표정을 눈빛으로 상상해낸다. 사회적 거리가 생기자 타자의 존재감이 재발견된다. 그렇게 아직은 이상하고 낯선 비대면 속 대면의 시간을 살아간다.
이 바이러스는 호모사피엔스 문명을 엔트로피 감소가 아닌 증가의 방향으로 뒤집을지도 모른다. 너와 나의 들숨과 날숨이 무작위로 섞이는, 무질서의 질서라는 자연 상태를 지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물컵에 떨어진 한 방울 잉크처럼, 우리는 섞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연대는 서로의 목소리가 뭉개질 만큼 가깝지 않으면서도 가닿지 못할 만큼 멀지 않은 거리에서, 저마다의 두려움을 상징적 이야기로 면역해낼 때 가능할 것이기에.
코로나 이후를 떠올릴 때 우리가 가장 마음 두어야 할 것들 중 하나는 새로운 두려움을 면역할 새로운 상징, 새로운 두려움을 딛고 새로운 연대에 이르게 할 새로운 이야기가 아닐까. 네안데르탈인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어떤 호모사피엔스들이 그랬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