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나의 아버지

멋, 술 그리고 病

조태열
조지훈 시인의 삼남, 전 외교부 차관, 전 주 유엔 대사, 1955년생

조지훈(1920~1968) 시인, 국문학자, 경북 영양 출생. 고려대 교수 및 민족문화연구소 초대 소장 역임. 시집 『풀잎단장』 『조지훈시선』 『여운』 등.
고전적 풍물을 소재로 우아하고 섬세하게 민족정서를 노래함으로써 고전적인 미의 세계를 형상화하였음.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짐.


 

생전의 아버님은 당신 세대에서는 보기 드문 6척 장신에다 가르마 없이 앞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 소위 리전트 스타일의 장발 머리에 검은 뿔테 안경 속의 시선은 항상 먼 하늘에 두고 느린 걸음으로 휘적휘적 걸어 다니셨다. 집안에 계실 땐 늘 한복 차림이셨고 외출하실 때도 두루마기를 즐겨 입으셨지만 양복 차림에 종종 나비넥타이를 매고 바바리코트나 두터운 외투를 걸쳐 입고 나서시면 영국 신사도 오히려 머쓱할 만큼 훤칠하고 준수한 외모의 멋쟁이셨다. 1960년대 초반 우리나라 여대생들에게 가장 멋진 남성으로 뽑히기까지 하셨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으니까…… 

성북동 산길에서의 아버지 

먼 산을 바라보며 지그시 담배를 물고 계신 모습,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파이프 담배에 불을 붙이시는 모습, 소매 끝을 슬쩍 걷어 올린 줄무늬 와이셔츠에 베레모를 쓰고 한 손엔 스틱을 쥔 채 성북동 산길을 유유히 산책하시는 모습 등은 사진으로만 봐도 대인의 풍모와 지적 매력이 넘쳐흐른다. 48세에 돌아가셨으니까 모두 40대 초반이나 중반에 찍은 사진들인데 도무지 중년의 모습이라곤 믿어지지 않을 만큼 중후한 노신사의 모습이다. 아버님은 단지 외모만 멋을 부렸던 분이 아니라 내면의 멋과 향기도 범인(凡人)이 흉내 내기조차 어려운 깊이와 품격을 갖춘 분이셨다고들 한다. 남겨 놓으신 글과 시인, 학자, 지사(志士)로 살다 가신 행적이 이를 다 증명하고 있는 바이지만, 아버님의 매운 기개와 지조, 차가운 지성은 당대의 명문으로 꼽히고 있는 「지조론(志操論)」을 읽어 보면 쉽게 접할 수 있다. 후학들의 평가처럼 아버님은 실로 “전체가 부분의 집합보다 큰 인물” 이었다.
아버님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기 때문에 모시고 산 세월은 불과 12년 남짓 밖에 되지않는다. 유교적 가풍의 집안인 데다 잔정이 많은 분이 아니어서 막내임에도 불구하고 아버님께 어리광을 부려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도 술 한잔 하고 귀가하셔서는 “우리 막내”하면서 내 뺨을 비비시거나 무릎에 앉히고 얼러주신 적은 종종 있었는데 아마도 두 분 형님이나 누님은 그런 기억조차 없지 않을까 싶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지금까지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아버님의 모습은 대부분 술자리에서의 모습이다. 돌아가신 후 한 주간지에 소개된 우리 역사상 최고의 주객 명단에서 김삿갓, 황진이, 변영로에 이어 4등을 차지하셨을 만큼 호주가(好酒家)여서 집에서도 늘 반주를 하셨고, 밖에서 술을 드신 후에도 술친구들을 모두 집으로 모시고 와 어머님이 다시 술상을 차리셔야 했던 적이 다반사여서 나도 그 방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감상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이다. 

성북동 집에서 찍은 가족사진 

어린 나이에도 아버님이 주흥(酒興)에 겨워 호탕하게 웃으시며 문우, 제자들과 술잔을 나누는 장면이 멋지게 보였던지 지금도 흑백사진처럼 또렷한 이미지로 내 뇌리에 남아 있다. 나중에 가수 박인희가 노래로 불러서 히트한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은 아버님과 술친구들이 술자리에서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애송하시던 시였는데 나는 초등학교 1~2학년 때 이미 이 시를 하도 많이 들어 거의 외고 있을 정도였다. 술이 거나해진 한 분이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라고 먼저 운(韻)을 떼면 다른 한 분이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네”라고 대구를 이어가며 암송을 하시곤 했다. ‘밤길’이란 제목의 아버님 시도 술자리에서 단골로 애송되던 시 중의 하나였다. “이 길로 가면은 주막이 있겠지요 / 나그네 가는 길에 주막이 없으리야 /꽃같이 이쁜 색시 술도 판다오”라는 첫 구절이 왠지 마음에 들어 나는 입에 술도 대보지 못한 초등학교 시절부터 이 시구를 읊조리곤 했었다. 그리고 나도 커서 대학생이 되면 스승과 함께 그런 풍류와 낭만과 격조 있는 술자리를 즐길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물론 대단한 착각이었지만……

경기도 마석 아버지 묘소에서 찍은 가족사진. 맨 왼쪽이 필자.   

 


잘 알려지지 않은 아버님 시 중에「병(病)에게」라는 시가 있다. “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 / 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 / 그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 /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 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고 오지만 /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이렇게 시작되는 시다. 돌아가시기 4개월 전인 1968년 1월에 발표되었으니까 이 땅에 남기고 가신 마지막 시인 셈이다. 마치 살아계신 병석의 아버님 음성을 듣는 것 같고 그래서 더욱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시여서 읽을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곤 한다. 지금 같았으면 병으로 치지도 않았을 기관지 확장이라는 병을 오래 앓으셨는데 아마도 이 시를 쓰실 때에는 이미 죽음이란 걸 예감하고 계셨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전날에도 막내가 보고 싶다며 나를 병실로 데려오라고 하셨다는데 그때도 아마 죽음의 그림자를 보셨던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 식구 중 아무도 아버님의 그 말씀을 마지막으로 막내 얼굴을 한 번 더 보고 떠나시겠다는 뜻으로 알아듣지 못한 게 한스러울 뿐이다. 그 한때문인지 나는 아버님이 돌아가신 후 수년간 거의 매일 꿈속에서 아버님을 뵙곤 하였다. 신기하게도 매번 이전 꿈의 끝부분이 다음번 꿈에서 연결되어 스토리가 이어지는 연속극 같은 꿈이었다. 그리고 꿈속의 아버님은 언제나 생전의 아버님 모습 그대로인데 나는 계속 나이를 먹으며 성장해 가고 있었다. 아마도 사춘기 시절을 아버님과 대화 한번 나누어보지 못하고 보낸 회한이 그렇게 표출되어 꿈속의 대화로 이어져 간 것이 아닌가 싶다. 지금도 성북동 좁은 골목의 조그만 한옥 대청마루를 가로질러 쪼르르 달려가면 예의 잘 어울리는 한복 차림의 아버님이 “우리 막내 왔나?” 하시며 뺨을 비벼 주실 것만 같은데 이젠 꿈속에서조차 아버님을 뵙기가 어렵다. 돌아가실 무렵의 아버님보다 열일곱 살이나 더 먹은 늙은 아들이 되어 버렸으니 이젠 그리움의 샘조차 말라 버린 것일까? 추억 속의 아버님보다 더 늙은 아들이 되어 다시 불러보는 그 이름, 아버님! 그리운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