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번역서 리뷰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최권행
불문학자,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54년생
역서 『일기』 『프란츠 파농 연구』 『빠블로 네루다(공역)』 등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불역 이승우 소설 『지상의 노래』


 


우리 문학작품이 다른 언어로 옮겨져 외국에 소개될 때 궁금한 것 중 하나는, 그 나라 독자들은 어느 정도로 작품을 우리와 비슷하게 느끼고 받아들일까 하는 점이다. 어떤 나라의 문화나 역사, 사회에 대한 몇 가지 ‘선입견’을 가진 사람들이 태반일 이 세상에서,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 수준의 이해에 도달해 있을 독자들이 아니고서야, 작품의 의미가 (오해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나마 공유될 가능성이 쉽지 않을 테니 말이다.
이승우의 『지상의 노래』 불역판 서평을 부탁받으면서 떠오른 것은 우선, 작품의 중심소재인 소수 종교 집단 문제였다. 작품은 사실 그 집단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가 통과해온 몹시 어두운 시대와 그 트라우마를 기록하고 있다. 코로나19의 창궐과 함께 전 세계에 이름이 알려진, 실제 한국의 종교 ‘섹트’ 소식이나, 정치적 시위 현장에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기와 함께 빈번하게 등장하며 연일 뉴스에 등장하던 일부 종교 집단의 소식이 불어권 독자의 작품 이해에 어떤 영향을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섹트는 대체로 주류 종교집단과 다른 성격을 강조하는 다양한 규모의 소수 집단이지만 부정적으로는 지도자나 일부 지도부의 이익을 위해 그 추종자들을 이용하고 착취하는 사교(邪敎)로 인식되고 있다.
천산의 섹트는 이와 다르게, 세상과 완전하게 절연하기를 택한 기독교 공동체이다. 자의건 타의건 이 세상에서 물러섰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세상의 폭력에 희생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한국 독자에게는 한국 사회 어떤 시기의 비극적 면모가 환유적으로 선연히 떠오르게 된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 대한 선행 이해가 불충분한 불어권 독자에게도 이 비극의 공동체가 지닌 환유적 성격이 충분히 전해질까? 행여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삶의 상식과 현실의 엄중함에 눈 감은, 그래서 결국은 도피자에 불과한 사람들의 기이한 행적이라고 여겨지지나 않을지 모르겠다.
여러 사람의 이야기가 서로 만나면서 복합적 시선이 교차되는 이 이야기의 불어판 제목을 그대로 다시 우리말로 옮긴다면 ‘대지의 노래’가 될 것이다. 신음과 탄식처럼 느껴지는 삶의 이야기를 작가가 ‘노래’라고 표현한 점은 이해할 수 있지만(인물들이 고통 속에서 실현하려는 것은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라는 어떤 절대 가치에 대한 찬가일 테니까……), 불어 제목에서 먼저 느껴지는 것은, 땅이 피우고 키워내는 꽃과 과일들, 축복받은 자연의 모습이다. 그것은 얼핏 비극성과 거리를 두고 있는 듯싶기도 하여, ‘Le Chant dans le monde’ 혹은 ‘Le Chant sur la Terre’ 같은 역어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작중 화자는 교회사를 연구하는 인물 차동연의 문장을 인용한 뒤, 같은 취지로 “세상은 더 이상 그들의 믿음과 소망을 간섭하지 않았다”라고 적으며 작품을 맺고 있다. 이 ‘세상’은 ‘성스러움과 아름다움’이라는 절대 가치와 본질적으로 대척적인 ‘세속 일반’을 말할 것이다. 불역본에서 이 마지막 문장을 ‘Un monde qui n’avait plus sa place dans leur foi et dans leur espoir’라고 적었을 때, 즉 “그들의 믿음과 소망에 더 이상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하게 된 어떤 세상”이라고 번역한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로서의 이 세상이 절대가치와 본질적으로 적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선이해가 불어권 독자들에게 있어서일까? 사소하지만 흥미로운 지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본다면 이 ‘어떤 세상’이었던 한 시대에 대해 적절한 주석 혹은 시대상에 대한 설명, 즉 한국에서 특히 근세 이후 동학을 비롯한 여러 신흥종교 운동의 연원과 그 역사적 배경, 그리고 군부를 중심으로 한 독재 정권의 대중조작과 섹트의 의미 등에 대해 간결하지만 핵심적인 해설이 덧붙여졌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천산 공동체가 자신의 이름을 비롯한 어떤 개인성도 거세된 사람들의 은둔처로 제시되는 한 그것은 자기상실의 한 양상으로 비칠 뿐, 작중 화자의 마지막 진술에 공감하지 않을 가능성이 더 많아 보인다. 프랑스 문화에서 유독 강조되는 ‘비판적 사유’는 현실과 유리된 신비주의나 혹은 어떤 텍스트의 절대화를 일종의 도피라고 여기며 미심쩍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고통과 절망의 음각화로서의 작품이 불어권 독자에게도 절실하게 전해지기를 기대하며 역자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 불역 『지상의 노래 Le Chant de la Terre 』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 연구, 출판지원을 받아 김혜경, 장 클로드 드크레센조의 번역으로 2017년 프랑스 드크레센조 출판사에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