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나의 데뷔작

‘디귿’ 없는 글쓰기

배명훈
소설가, 1978년생
장편소설 『첫숨』 『고고심령학자』, 소설집 『타워』 『예술과 중력가속도』 등



‘디귿’ 없는 글쓰기
-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 수상작 「스마트D」






대략 7년 동안 “신인 작가”라는 말을 들었다. 7년간 계속 어딘가에 데뷔한 셈이다. 상황이 이러니 어느 글이 데뷔작인지도 내가 정하기 나름이겠으나, 공식적으로 내 데뷔작은「스마트 D」다.
2005년 과학기술창작문예라는 SF 공모전 단편 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된 이 글은, 남들에게는 다 있는 평범한 것 하나를 빼앗긴 소설가 이야기다. 그가 빼앗긴 것은 ‘ㄷ’이다. 대단히 편리한 정보처리 기술을 구축한 다국적 기업 “스마트 D”사는, 거의 무료나 다름없는 가격에 이 서비스를 전 세계 사람들에게 제공한다. 알파벳 스물여섯 개 중 단 한 글자, D에 대해서만 과금하는 방식이다. 언어에 따라 이용료를 부과하는 방식은 조금씩 다른데, 예를 들어 한국어 사용자들은 ‘ㄷ’에 대해서만 사용료를 내는 식이다. 스마트 D사는 이런 방식으로 정보를 독점한다. 여기에 저항하는 사람들, 즉 스마트 D사의 정책을 고의로 위반한 사람들은, 세상 사람 모두가 속해 있는 근미래 네트워크 환경에서 D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디귿을 박탈당한 소설가가 생겨난 배경이다.
작품 속 소설가는 디귿 없는 글을 쓴다. 가장 평범한 종결어미를 쓰지 않고 소설 한 편을 완성하는 일. 사실 이 앞 문장은 디귿 없는 글쓰기의 예다. 「스마트 D」안에는 이런 문장이 가득하다. ‘다’로 마무리할 수 없으므로 어딘가 한 군데는 어색해질 수밖에 없는 문장들.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한 편집자들이 다듬기를 시도하다가 뒤늦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어색해야 정상인 문장 탓이다. 이 소설은 2016년에야 소설집『예술과 중력가속도』에 수록되었는데, 이때 나는 ‘ㄷ’뿐만 아니라 ‘ㄸ’도 모두 없애기로 했다. 그 바람에 나도 편집자도, 혹시 남아있을지도 모를 디귿을 색출하느라 눈이 빠지게 교정지를 들여다봐야 했다.
이런 표현 방식을 두고 어떤 독자는 내가 다른 작품을 표절한 것 같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물론 정당한 비판은 아니다. 특정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표현 방식은 리포그램(lipogram)이라는 이름이 따로 붙어 있을 만큼 역사가 길다. 내가 표절한 것 같다는 그 작품 또한 리포그램을 활용한 작품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아니다.
다시 작품으로 돌아와서, 평범한 무언가를 박탈당한다는 것은 창작자에게 어떤 의미일까. 우선 검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처럼. 그런데 창작자에게 검열은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흔하다. 검열은 대체로 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언뜻 생각하면 표현의 자유는 많을수록 좋을 것 같지만, 원고를 붙들고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쓰지 않는 게 좋을 표현은 수도 없이 많다. 어떤 제약은 표현의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따를 가치가 있다. 시대에 뒤처지지 않는 창작자가 되려면, 우선 해서는 안 될 말을 안 하는 법부터 배워야 한다.
창작자 입장에서 다행인 점은, 실제로 해 보면 제약이 있는 글쓰기도 꽤 재미있다는 사실이다.「스마트 D」를 쓰고, 10년이 지난 뒤에 다시 고쳐 쓰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디귿 없는 글쓰기는 꽤 재미있다. 그 글자를 피하느라 어색해진 문장을 통해 작가는 오히려 검열의 우스꽝스러움을 날것으로 보여줄 수 있으니까. ← 바로 이렇게 말이다.
또 하나 덧붙일 이야기가 있다.「스마트 D」는 한국에서 ‘스마트폰’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쓴 소설이다. 2005년에는 그래도 꽤 참신하게 들렸던 ‘스마트’라는 개념은, 2016년이 되자 누구나 다 아는 유행어에 기댄 낡은 표현으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스마트 D』가 될 수도 있었던 소설집의 제목은 『예술과 중력가속도』가 되고 말았다. 2016년에야 데뷔작을 소설집에 실을 수 있게 된 것은, 데뷔 후 7년 동안 매해 꼬박꼬박 “신인 작가”로 불렸던 고단함과 깊은 관련이 있다. 내가 이 글을 숨겼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대체로 내가 쓴 글들을 좋아하는 유형의 작가고 이 글,「스마트 D」도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