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동화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장은서
동화작가, 제17회 대산대학문학상 동화부문 수상자, 1997년생
동화 「타조 관찰일지」 등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내 실수였어. 원래는 아빠 옷을 팔려고 했거든. 이맘때 딱 입기 좋은 파란색 봄가을잠바 말이야. 값이 꽤 나가겠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중고로 팔았어. 세상 모든 물건을 사고파는 중고세상 사이트에.
사실 이건 내 용돈벌이야. 살다 보면 돈이 필요한 곳이 정말 많거든. 모으고 또 모아도 늘 부족하지. 그러니까 돈을 버는 거야. 집에 있는 안 쓰는 물건들을 중고세상 사이트에 올리는 거지. 팝니다, 한 번도 입지 않은 새 옷. 깃털보다 가볍고 빨기도 편해요. 그럼 누군가는 그 물건을 갖고 싶어 하거든. 그 사람한테 싸게 팔아. 돈을 받고 택배 상자에 넣어서, 받는 사람 주소를 쓰고 우체국에 보내면 돼. 벌써 이걸로 꽤 많이 벌었어. 조금만 더 모아서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갈 계획이었지. 집이 좁아터져 죽겠거든.
그러니까, 다 집이 좁아서 그런 거야. 실수로 아빠를 팔아버린 거 말이야.

아빠는 늘 쓸모없는 새 물건을 사. 언제는 청바지를 사고, 언제는 전자레인지를 샀어. 집에 청바지와 전자레인지가 있는데도 말이야. 심지어 산 걸 뜯어보지도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지. 그러곤 넘쳐나는 새 물건 사이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을 하고. 덕분에 집에 택배 상자가 넘쳐난다니까. 택배를 피해서 홍학처럼 겅중겅중 걷는 것도 이미 익숙해졌어. 쇼핑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하면 아빠는 늘 동굴 같은 목소리로 대꾸했지.
“다 쓸 데가 있어서 사는 거야.”
한 번도 쓰지 않았으면서. 봄가을잠바도 그런 거였어. 사놓고 한 번도 안 입은 아빠의 옷. 그래서 그걸 중고세상에 올렸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당연히 냅다 팔아버렸지. 개나리색 택배 상자에 넣고 우체국에 가져가 부쳤다고.
하필 그날 아빠가 그 옷을 입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 알아도 헷갈릴 법 했지. 누워있는 아빠랑 옷더미를 구분하는 일은 정말 어려우니까.
다행인 건, 내가 무척 책임감 있는 어린이란 사실이야. 나는 잘못한 걸 인정할 줄 알지. 실수를 수습할 줄도 알고.
아빠와는 달라. 그래서 아빠를 찾아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거야. 어른들은 이런 나더러 “예은이는 다 컸으니 이만 시집보내도 되겠구나!”라고 말하지만, 나는 다 크려면 아직 30cm나 더 자라야 하는 데다가 할머니 될 때까지 아빠랑 둘이 살겠다고 약속했는걸.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 아빠는 다 크기도 전에 장가부터 든 모양이거든. 그러니까 우리는 상호 보완적인 관계란 말이야. 대충 서로가 필요한 사이라는 뜻이야.
*
우체국은 집에서 큰 횡단보도를 두 번 건너면 있어. 작년에 지은 엘레지아 아파트 단지 사이로 한참 들어가면 보이는 땅딸막한 2층짜리 건물이지. 오래된 유리문을 몸으로 힘껏 밀고 들어가면 남색 리본을 맨 직원 선생님이 반겨줘. 나는 단골이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아. 선생님과 내가 나누는 대화는 늘 똑같거든.
‘무슨 일로 왔어요?’
선생님이 물으면,
‘택배 부치려고요. 현금으로 결제할게요’라고 대답하는 거야. 물론 이번엔 조금 다르게 대답해야 했지만.
“제가 깜빡하고 택배에 아빠를 넣은 것 같아요. 혹시 찾아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내 이름을 물어보더니, 잠깐 자리를 비우고 우체국 뒤에 있는 문으로 사라졌어. 나는 의자에 앉아 얌전히 기다렸지. 우체국엔 택배를 보내러 온 사람들로 북적였어. 택배를 찾으러 온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주변에서 들리는 딩동 소리를 일곱 번쯤 세고, 342번이었던 번호표가 349번이 되었을 때 직원 선생님은 돌아오셨어.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말이야. 선생님은 가쁘게 숨을 몰아쉬느라 띄엄띄엄 말했지.
“이예은 씨가…… 보낸 택배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요.”
“이런 일이 흔한가요?”
“그럼요……. 물건을 잘못…… 보내는 일이야 많죠. 편지…… 봉투에 편지 대신…… 깻잎을 보낸 사람도 있는걸요. 밥상에 올라간…… 깻잎이었죠.”
선생님은 여전히 숨을 헉헉거리면서, 책상에서 메모지를 꺼내더니 마구잡이로 휘갈긴 주소를 적어주었어.

미리구 유채로 76 남미리우편집중국

“여기에서 보낸 모든 택배들은 이곳을 거치니까 가서 확인해 보세요.”
*
‘남미리우편집중국’은 이름만큼이나 길고 또 거대한 건물이었어. 기찻길처럼 생긴 벨트가 아빠의 코골이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쉼 없이 움직이고 있었지. 벨트 위엔 콩알만 한 상자부터 우리 집만 한 상자까지 다양한 택배들이 놓여 있었어.
나는 ‘파손주의’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키 큰 아저씨에게 다가가 물었어.
“아빠를 찾으러 왔는데요.”
“……”
기계 소리가 너무 커서 못 들은 걸까?
“아빠를! 찾으러! 왔는데요!”
아저씨는 쉴 새 없이 ‘파손주의’ 스티커를 상자에 붙이면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을 뻗어 먼 데를 가리켰어.
“출고 센터는 저쪽이다.”
아저씨가 말한 ‘저쪽’이 대체 어디까지 가야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걸었어. 거대한 창고를 걷고 또 걸었어. 우리 집에도 상자가 많기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상자들을 보고 있으려니까 눈알이 팽팽 돌 지경이었어. 다리도 점점 아파오기 시작했어. 아빠한테 날 좀 업어달라고 하고 싶었지. 아빠가 그래도 업어달란 말은 잘 들어주거든. 뜨끈하고 축축한 아빠의 등에 뺨을 비비면 세상이 주황색으로 물들어. 가끔은 나도 모르게 깜빡 잠이 들기도 해. 아직까지도 침을 흘리는 잠버릇이 있는 건 아빠한테 영원히 비밀이야.
얼마나 걸었을까, 그러다 보게 된 거야. 아빠를 넣은 개나리색 택배 상자 말이야. 상자끼리 모아놓은 창고 구석에 숨어 있었지. 상자는 마치 빛을 내면서 날더러 반갑다고 말하는 것 같았어. 어쩌면 아빠가 빛을 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 두말할 것 없이 택배 상자를 뜯었지. 상자 속엔……
난생처음 보는 어린이집 체육복이 가득 들어 있었어.

하는 수없이 다시 왔던 먼 길을 걸어서 ‘파손주의’ 아저씨에게 되돌아갔어. 그런데 아까까지 파손주의 아저씨가 있던 곳엔 처음 보는 언니가 있었어.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언니였어. 그 언니는 파손주의 아저씨가 했던 것처럼 상자에 파손주의 스티커를 잽싸게 붙이고 있었지. 다른 점이 있다면, 언니는 키가 아주 작아서 날 금방 발견했다는 거야. 그리고 먼저 나한테 말을 걸어주었어.
“뭘 찾고 있지?”
나는 아빠를 중고로 잘못 팔아버린 얘기를 언니한테 해 주었어. 얘기가 끝나자, 언니는 언제 택배를 보냈는지 물어봤어. 가만있자, 오늘 아침에 짜장 라면을 먹다가 알았으니까, 딱 삼일 됐지. 그 말을 들은 언니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어.
“그렇다면 벌써 택배가 도착했겠는걸.”
“택배가 도착했다고요?”
“그래, 아빠를 엉겁결에 사버린 사람한테. 그 사람 집으로 가는 편이 좋겠다.”
언니는 그렇게 말하고 다시 파손주의 스티커를 상자에 빠르게 붙이기 시작했어.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여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