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좋은 언어

너무 일찍 혹은 너무 늦게 도착한 사랑과 어긋난 길들

페미니즘은 여성이 무엇이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확장시켜

「B사감과러브레터」 이어쓰기 ①사랑의 진실 ②B사감과 자매들 ③B사감과 운명의 화살 ④그리고 소문은 단련된다 2 ⑤신여성 ⑥눈물

‘왜’와 ‘만약’을 허용하는 역사학적 상상력

코로나 시대의 역설

김소월 혹은 흰 달의 노래를 찾아서

일제강점기 장안을 사로잡은 유행가, 트로트

눈 오는 밤, 식민지 북국의 한 로맨티스트

‘디귿’ 없는 글쓰기

밀란 쿤데라, 두 번의 추방

앵앵시사(櫻櫻詩社) 문우들

민족혼의 숙소 현저동 101번지

쓸쓸하고 초라했던 만년의 자화상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고생은 참을 수 있지만 치욕은 참을 수 없었던 시인 부재(不在) 하는 방랑자 '예술의 목적은 인생’이라던 고독한 ‘원형적비평가’ 멋, 술 그리고 病

①나 세상 떠날 때,그가 울까봐 걱정이다 ②한 달 동안,감정적

엄마가 사준 옷

아빠를 중고로 팔아버렸어

①숭어 이야기 ②바보의 웃음 ③통증이 오는 시간

공포의 대상 혹은 욕망의 주체

팬데믹 시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작가들의 질문

부자를 만들어주는 요술책들

1980년대 영국 사회에 대한 세밀하고도 방대한 증언

되풀이 속에서 되풀이되는

또 다른 벽, 타문화와 역사에 대한 선이해

신석정 시인의 영역 시선집을 내며

대산세계문학총서,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20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글밭단상

①숭어 이야기

유홍준
시인, 1962년생
시집 『喪家에 모인 구두들』 『나는, 웃는다』 『저녁의 슬하』
『너의 이름을 모른다는 건 축복』, 시선집 『북천-까마귀』 등

글밭단상①

숭어 이야기

자동차 정비업 하는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이래저래 힘들고 갑갑한데 바다낚시나 가자는 거였다. 바다라…… 낚시를 잘 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지만 흔쾌히 따라나서기로 했다. 생수를 사고, 김밥을 사고, 바늘을 사고, 채비를 마치고, 우리는 남해를 향해 갔다.
삼천포에서 남해로 가는 풍경은 볼 때마다 멋졌다. 남해군 창선면 어디, 친구가 잘 아는 장소가 있다고 했다. 아시다시피 남의 차를 얻어 타고 처음 가는 행선지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게 마련. 바닷가 마을에서 만나는 나무며 사람이며 갖가지 풍경들에게서 흠흠, 무언가 특별한 것을 느끼려고 시선은 분주하기 마련이다.
사실 나는 낚시를 잘 모른다. 낚싯줄을 제대로 맬 줄도 모르고, 조류의 흐름을 읽을 줄도 모르고, 봉돌의 무게를 정할 줄도 모르고, 정확하게 챔질의 순간을 맞출 줄도 모른다. 요령이 없기는 낚시뿐만 아니라 사는 것도 마찬가지. 나는 그저 닥치는 대로 살아가고 있다. 도무지 사회 머리가 없다고 여기저기서 지적을 당하곤 한다. 돈벌이에도 젬병, 인간관계에도 젬병, 기계를 고치는 것에도 젬병,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친구가 자주 다니는 절의 스님이 그랬단다. “저 사람은 생각이 너무 많아서 안 돼요.” 그런데 그건 잘 모르고 한 말이다. 생각이 많다니. 솔직히 별생각도 없는 게 나다.
친구가 그런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바다가 육지 쪽으로 옴폭 들어와 있는 곳. 숭어 떼가 모이는 곳이었다. 그곳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서둘러 친구는 낚싯대를 펼치고, 줄을 매고, 바늘을 달기 시작했다. 그런데 숭어 낚싯바늘 그거, 엄청 크고 무서웠다. 크고 굵은 여러 개의 바늘이 한 뭉치로 뭉쳐져 있었다. 일명 ‘훌치기낚시’라고 했다.
훌치기라! 훌친다?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 먼저 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친구가 매고 있는 모양의 무시무시한 바늘을 달고 저만치 바다를 향해 던지고 감고 던지고 감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훌치고 있었다. 어떤 숭어는 옆구리에, 어떤 숭어는 등짝에 바늘이 꽂혀 올라왔다. 엉거주춤, 친구가 건네는 낚싯대를 받아들고 나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던지고 감고, 던지고 감고.
어쩌자고 숭어는 떼로 뭉쳐 다닐까?
숭어 떼 같은 인간 군상은 어떤 사람들일까?
생각이 많은 나에게 물고기가 잡히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런데 저만치 유독 숭어 잘 잡는 사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낚시를 포기하고 그 사람 쪽으로 가 보았다. 거무튀튀했다. 비늘이 붙은 것처럼, 그 사람의 피부는 번들거렸다. 눈빛이 달랐다. 그가 하는 행동 중에 나를 경악케 하는 무엇이 있었다. 무리지어 움직이는 숭어 떼 속에서 무작위로 한 마리를 잡아올린 그는 뚝, 숭어의 모가지를 분질렀다.
뚝,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뚝, 그 소리는 너무나 컸다.
숭어 모가지 부러지는 소리는 공포. 시각보다 청각이 더 무섭다는 사실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모가지가 부러진 숭어는 버둥버둥 방파제에 피를 뿌리며 죽어갔다.
뚝……
세상 어딘가에서 지금 이 순간도 모가지가 부러지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직장을 잃고, 자식을 잃고, 목이 부러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배신을 당해 목이 부러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숭어 잘 잡는 사람에게 나는 왜 목을 부러뜨리느냐고 물었다. 그는 숭어는 잡는 즉시 목을 부러뜨려야 신선도가 오래간다고 했다. 피를 빼야 맛이 더 좋다고 했다. 그는 거리낌이 없었다. 자신만만했다. 진압군 같았고, 형사 같았고, 고문관 같았다. 아직도 나는 그 숭어 모가지 부러지는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어쩌자고 친구는 나에게 그 소리를 들려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