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기획특집
국립중앙도서관 홈페이지 소장자료 검색창에 ‘전집’을 입력하면 단행자료의 수가 22,775라고 뜬다. 도서, 전자책, 고서, 학위논문도 포함한 수치다(‘총서’로 검색하면 심지어 10만 건이 넘는 단행자료 목록이 나타난다). 1995년 문학사상사의 『李箱(이상)문학전집』을 선두로 『대중가요 대전집』(평화당, 1998), 『심청전 전집』(박이정, 1997)』 『(소년소녀)세계문학전집』(한림출판사, 1980), 『세계과학문학전집』(한국과학기술진흥재단, 1979), 『한국전기전집』(1983, 정훈출판사), 『브.이.레닌전집』(조선로동당출판사, 1956), 『교양에세이전집』(청화, 1991) 등이 이어진다. 그 가운데 슈베르트 피아노전집(음악춘추사, 1997) 등의 악보류가 드문드문 섞여 있고, 『낚시채비전집:민물고기 24종·바닷고기 56종』(태림출판사,1992)처럼 뜬금없이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도 눈에 띈다. 발행연도에서 가장 앞선 전집은 이규보의 『東國李相國全集(동국이상국전집)』(1251)으로 검색된다. 13세기 고서에서 ‘전집’이라는 표제를 만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다. 하긴, 인간이 시인(문인)의 전작을 한 곳에 모으고자 한 시도의 역사는 문자의 기원과 맞물려 있을지 모른다.
여하튼 1945년 이후로 검색의 범위를 좁히면『韓未關係五十年史(한미관계오십년사)』(朝光社(조광사), 1945)가 맨 먼저 나타나고 그 뒤로 다시 궁금증을 낳는 자료들이 이어진다. 『루팡全集(전집):千古(천고)의 秘密(비밀)』(모리스 르블랑, 三友出版社(삼우출판사), 1945)의 때 이른 간행은 그렇다 치고 대체 『愛國(애국)삐라全集(전집)』(李革(이혁), 祖國文化社(조국문화사), 1946)은 무슨 책일까. 자료를 뒤지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시도들이 ‘전집(complete collection)’이라는 콘셉트를 걸고 이 땅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그것이 어쩌면 출판이라는 일의 궁극적 로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문제 혹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에 답하는, 사상과 언어의 ‘기념비적’ 산물을 한데 ‘모두’ 모아 읽도록 해주는 것. 문학전집은, 특히 고전전집은 그 무수한 로망의 실현들 중에서도 가장 빈번히 출현하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해방 직후의 『現代朝鮮文學全集(현대조선문학전집)』(朝光社(조광사), 1946), 『朝鮮野史全集(조선야사전집)』(尹白南(윤백남), 朝鮮使料刊行會(조선사료간행회), 1949), 『現代詩人全集(현대시인전집)』(이용악, 노천명, 同志社(동지사), 1949), 『(要約)世界文學全集(요약세계문학전집)』(古今出版社(고금출판사), 1955~1956), 1950년대 말 정음사(正音社)에서 펴내기 시작한 세계문학고전 시리즈, 혜원출판사, 을유문화사의 문학전집들, 참신하고 선구적인 기획으로 편집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韓國戰後問題作品集(한국전후문제작품집)』(신구문화사, 1966), 『第三世代韓國文學(제삼세대한국문학): 우리시대 한국소설의 정신』(삼성출판사, 1983) 등, 한 시대의 대표작이라고 분류되는 문학작품을 엮어내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한국출판계에서 문학전집류는 지금도 크게 두 부류로 보인다. ‘한 대가의 전작’과 ‘(테마별)명작(고전)전집’. 1980년대 민음사에서 펴내고 3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혔던 『金洙暎全集
(김수영전집)』과 『未堂徐廷柱詩全集(미당서정주시전집)』은 한국의 문학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명품섭렵 욕구의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시초가 아니었을까.
문학시장의 크기가 대폭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이청준, 김승옥, 박경리, 박완서, 고은 등, 한국문학사에서 일가를 이룬 작가들의 전집은 여전히 편집되고 있다. 문학전집의 편찬 역사만 보더라도‘전집’은 발행인과 편집자 혹은 편집위원들이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어떤 입장의 표명이다. 누구의 작품을, 언제, 어떻게 읽히고자 하는가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독자를 찾아가는 일에 들이는 발행 주체의 힘은 물론, 모든 책에 투사되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집의 출판은 만드는 사람의 ‘특별한의지’가 더 크게 반영되는 일이다. 한 종의 시도와는 비교할 수 없게 감수해야 하는 비용의 리스크가 높은 일이며 출판사의 명성을 만들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이제 3백 종을 훌쩍 넘겼다. 1996년 민음사 편집부에 입사했을 때 세계문학전집을 위해 번역이 진행 중이던 타이틀이 1백 종 가까이 되었다. 1998년 첫 10권이 출간되기 거의 10년 전부터 구상과 기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작년에 박맹호 회장을 뵈었을 때, 수 많은 문학전집 판본들이 널려 있던 때 어떻게 같은 시장에서 다시 대형 문학전집을 펴낼 작정을 하실 수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고전은 불패다!” ‘고전’이라는 답에는 시대를 초월해 어디서나 다시 만나야 하는 명저의 의미에 대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제1권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다. 문학의 시원, 이야기의 원형, 세계문학의 정령 같은 것을 품고 있는 텍스트를 앞세웠던 발행인의 판단은 그 후로 20년 동안 이어진 전집 간행의 키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사점과 차별성을 갖는 고전전집의 편찬은 지난한 문제해결의 연속이지만 영리한 일임은 분명하다. 탄탄하게 개발한 전집은 잘 모은 콘텐츠들이 서로서로에게 견인차 역할을 하며 더 오래, 더 많이 판매되는 든든한 백리스트의 기능뿐만 아니라 한 출판사의 비전과 목표를 독자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알리고, 단기간에 폭넓게 읽히기 어려운 타이틀까지 한꺼번에 홍보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고전전집만큼 마케팅의 기회들이 다각도로 열려 있는 제품도 없다. 세기를 거듭해 호출되는 대가들의 대표작을 수집해놓은 전집의 경우라면 그 안에서 주기적 홍보 이슈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전집의 편찬과 원고 확보를 위한 전문가들과 의 교류는 경쟁력 높은 기획으로 이어진다. 해당 분야 독자들이 호응하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프로모터 역할이 가능한 필자들의 차기작 기획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별로 고전 콘텐츠를 선별해 만들어지고 있는 전집은 끝이 없어 보인다. 비록 엇비슷한 조합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 도드라진 의미를남기는 기획으로 남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얼마만큼의 열의를 투자하여 그것들을 동시대 독자들의 니즈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다시 편집해내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동시대 독자들의 니즈에 호응하는 방식을 찾는 것!’, 몇 개의 단어로 간단히 표현되는 이 과제가 이제 모든 전집 기획의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2년 전부터 개발 단계에 있는 전집 기획을 현재 두 종류 관리하고 있다. 60년 넘게 글을 써온 한 작가의 저작 모두를 담아내야 하는 전집과 세계문학사의 거장들의 삶과 작품에서 오늘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야 하는 방대한 시리즈. 두 개의 큰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하나의 질문 앞에서 나는 막막함과 기대감 사이를 일 년째 오가고 있다. “누가 이것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인가?” 텍스트 한 편 한 편의 성취가 느껴질 때는, 문헌의 역사적 가치를 남김없이 설명해줄 주해를 덧붙이는 일이라든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을 디자인을 도
출해내는 일이라든가, E-book 전집의 새로운 양식에 대한 고민 등으로 흥분되다가도, 이것을 선택하고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내놓을 독자들은 누구일지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하면, 불현듯 막막함이 밀려온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에게 필요한‘이 시대의 온전한 독서’라는 메시지와 ‘빠짐없는 목록의 독서토대’를 세우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응답을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를 자문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될 때도 있다. 전집의 편찬이 무모한 일처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소비자의 수요를 제대로 읽고, 그에 적합한 편집방식을 선택하고 있는가에 아직 똑바로 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전집만 보더라도 그것을 ‘완전한 콘텐츠 단위’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독자층이 더 이상 견고하지 않고, ‘전작 읽기’의 의의와 의미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완전하게 빠짐없이 모아 엮는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전집 편집과는 다른 콘텐츠 큐레이션 방식이 필요하다면, 그 가능성들은 어디에서부터 찾아가야 할까. 콘텐츠 소비의 플랫폼이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관계없이 분야마다 ‘최상급’의 읽을거리를 가려서 보여주는 작업은 어김없이 지속될 텐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제시하는가를 둘러싼 보다 날렵하고 창의적인 기획들은 어떤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 소수의 집착 또는 의미부여와 타당한 가치평가의 차이는 가려지는 것이 더 생산적일까. ‘보다 가치 있고 유용한 콘텐츠’의 제공과 소비가 가장 절실한 기획들이 ‘전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답을 찾아야 할 시급한 질문들이다.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글 원미선 ㅣ <북이십일> 문학기획팀장. 1970년생
역서 『설탕으로 만든 사람』 『세상의 모든 소심쟁이들에게』 『에디슨법칙』 『고대 그리스로마의 진기록들』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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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1945년 이후로 검색의 범위를 좁히면『韓未關係五十年史(한미관계오십년사)』(朝光社(조광사), 1945)가 맨 먼저 나타나고 그 뒤로 다시 궁금증을 낳는 자료들이 이어진다. 『루팡全集(전집):千古(천고)의 秘密(비밀)』(모리스 르블랑, 三友出版社(삼우출판사), 1945)의 때 이른 간행은 그렇다 치고 대체 『愛國(애국)삐라全集(전집)』(李革(이혁), 祖國文化社(조국문화사), 1946)은 무슨 책일까. 자료를 뒤지기 전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흥미로운 시도들이 ‘전집(complete collection)’이라는 콘셉트를 걸고 이 땅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이루어졌음을 확인하며 그것이 어쩌면 출판이라는 일의 궁극적 로망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문제 혹은 주제의식을 가지고 그것에 답하는, 사상과 언어의 ‘기념비적’ 산물을 한데 ‘모두’ 모아 읽도록 해주는 것. 문학전집은, 특히 고전전집은 그 무수한 로망의 실현들 중에서도 가장 빈번히 출현하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해방 직후의 『現代朝鮮文學全集(현대조선문학전집)』(朝光社(조광사), 1946), 『朝鮮野史全集(조선야사전집)』(尹白南(윤백남), 朝鮮使料刊行會(조선사료간행회), 1949), 『現代詩人全集(현대시인전집)』(이용악, 노천명, 同志社(동지사), 1949), 『(要約)世界文學全集(요약세계문학전집)』(古今出版社(고금출판사), 1955~1956), 1950년대 말 정음사(正音社)에서 펴내기 시작한 세계문학고전 시리즈, 혜원출판사, 을유문화사의 문학전집들, 참신하고 선구적인 기획으로 편집자들의 기억에 남아 있는 『韓國戰後問題作品集(한국전후문제작품집)』(신구문화사, 1966), 『第三世代韓國文學(제삼세대한국문학): 우리시대 한국소설의 정신』(삼성출판사, 1983) 등, 한 시대의 대표작이라고 분류되는 문학작품을 엮어내는 시도는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한국출판계에서 문학전집류는 지금도 크게 두 부류로 보인다. ‘한 대가의 전작’과 ‘(테마별)명작(고전)전집’. 1980년대 민음사에서 펴내고 30년 가까이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굳혔던 『金洙暎全集
(김수영전집)』과 『未堂徐廷柱詩全集(미당서정주시전집)』은 한국의 문학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명품섭렵 욕구의 크기를 가늠하게 하는 시초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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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장의 크기가 대폭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이청준, 김승옥, 박경리, 박완서, 고은 등, 한국문학사에서 일가를 이룬 작가들의 전집은 여전히 편집되고 있다. 문학전집의 편찬 역사만 보더라도‘전집’은 발행인과 편집자 혹은 편집위원들이 보여 주고 싶어 하는 어떤 입장의 표명이다. 누구의 작품을, 언제, 어떻게 읽히고자 하는가를 결정하고 그에 맞는 독자를 찾아가는 일에 들이는 발행 주체의 힘은 물론, 모든 책에 투사되어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전집의 출판은 만드는 사람의 ‘특별한의지’가 더 크게 반영되는 일이다. 한 종의 시도와는 비교할 수 없게 감수해야 하는 비용의 리스크가 높은 일이며 출판사의 명성을 만들기도 하고 지우기도 한다.
민음사의 세계문학전집은 이제 3백 종을 훌쩍 넘겼다. 1996년 민음사 편집부에 입사했을 때 세계문학전집을 위해 번역이 진행 중이던 타이틀이 1백 종 가까이 되었다. 1998년 첫 10권이 출간되기 거의 10년 전부터 구상과 기획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작년에 박맹호 회장을 뵈었을 때, 수 많은 문학전집 판본들이 널려 있던 때 어떻게 같은 시장에서 다시 대형 문학전집을 펴낼 작정을 하실 수 있었는지 여쭤보았다. “고전은 불패다!” ‘고전’이라는 답에는 시대를 초월해 어디서나 다시 만나야 하는 명저의 의미에 대한 신념이 자리하고 있었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제1권은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다. 문학의 시원, 이야기의 원형, 세계문학의 정령 같은 것을 품고 있는 텍스트를 앞세웠던 발행인의 판단은 그 후로 20년 동안 이어진 전집 간행의 키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새로운 시사점과 차별성을 갖는 고전전집의 편찬은 지난한 문제해결의 연속이지만 영리한 일임은 분명하다. 탄탄하게 개발한 전집은 잘 모은 콘텐츠들이 서로서로에게 견인차 역할을 하며 더 오래, 더 많이 판매되는 든든한 백리스트의 기능뿐만 아니라 한 출판사의 비전과 목표를 독자들에게 가장 선명하게 알리고, 단기간에 폭넓게 읽히기 어려운 타이틀까지 한꺼번에 홍보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마케팅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고전전집만큼 마케팅의 기회들이 다각도로 열려 있는 제품도 없다. 세기를 거듭해 호출되는 대가들의 대표작을 수집해놓은 전집의 경우라면 그 안에서 주기적 홍보 이슈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전집의 편찬과 원고 확보를 위한 전문가들과 의 교류는 경쟁력 높은 기획으로 이어진다. 해당 분야 독자들이 호응하는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프로모터 역할이 가능한 필자들의 차기작 기획을 확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어준다. 그렇기 때문에 시기별로 고전 콘텐츠를 선별해 만들어지고 있는 전집은 끝이 없어 보인다. 비록 엇비슷한 조합처럼 보이는 경우들이 더 많기는 하지만. 그 사이에서 도드라진 의미를남기는 기획으로 남느냐 아니냐의 문제는 어떤 관점에서, 얼마만큼의 열의를 투자하여 그것들을 동시대 독자들의 니즈에 호응하는 방식으로 다시 편집해내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동시대 독자들의 니즈에 호응하는 방식을 찾는 것!’, 몇 개의 단어로 간단히 표현되는 이 과제가 이제 모든 전집 기획의 처음이자 끝일 것이다.
2년 전부터 개발 단계에 있는 전집 기획을 현재 두 종류 관리하고 있다. 60년 넘게 글을 써온 한 작가의 저작 모두를 담아내야 하는 전집과 세계문학사의 거장들의 삶과 작품에서 오늘 나의 문제를 발견하고 답을 찾는 새로운 방식을 제시해야 하는 방대한 시리즈. 두 개의 큰 프로젝트를 실행하며 하나의 질문 앞에서 나는 막막함과 기대감 사이를 일 년째 오가고 있다. “누가 이것을 가지고 싶어 할 것인가?” 텍스트 한 편 한 편의 성취가 느껴질 때는, 문헌의 역사적 가치를 남김없이 설명해줄 주해를 덧붙이는 일이라든가, 시간이 오래 지나도 빛이 바래지 않을 디자인을 도
출해내는 일이라든가, E-book 전집의 새로운 양식에 대한 고민 등으로 흥분되다가도, 이것을 선택하고 기꺼이 시간과 비용을 내놓을 독자들은 누구일지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하면, 불현듯 막막함이 밀려온다. 이것이야말로 당신에게 필요한‘이 시대의 온전한 독서’라는 메시지와 ‘빠짐없는 목록의 독서토대’를 세우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응답을 책임질 자신이 있는가를 자문할 때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될 때도 있다. 전집의 편찬이 무모한 일처럼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어쩌면, 소비자의 수요를 제대로 읽고, 그에 적합한 편집방식을 선택하고 있는가에 아직 똑바로 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전집만 보더라도 그것을 ‘완전한 콘텐츠 단위’로 받아들이고 소비하는 독자층이 더 이상 견고하지 않고, ‘전작 읽기’의 의의와 의미도 변화하는 환경에서, 완전하게 빠짐없이 모아 엮는다는 것의 의미를 어떻게 재설정해야 할까. 지금까지의 전집 편집과는 다른 콘텐츠 큐레이션 방식이 필요하다면, 그 가능성들은 어디에서부터 찾아가야 할까. 콘텐츠 소비의 플랫폼이 어떻게 진화하는가에 관계없이 분야마다 ‘최상급’의 읽을거리를 가려서 보여주는 작업은 어김없이 지속될 텐데,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언제 어떻게 제시하는가를 둘러싼 보다 날렵하고 창의적인 기획들은 어떤 데이터를 바탕으로 추진되어야 하는가. 소수의 집착 또는 의미부여와 타당한 가치평가의 차이는 가려지는 것이 더 생산적일까. ‘보다 가치 있고 유용한 콘텐츠’의 제공과 소비가 가장 절실한 기획들이 ‘전집’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동안 답을 찾아야 할 시급한 질문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