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글 한기호 ㅣ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 1958년생
저서 『한기호의 다독다독』 『베스트셀러 30년』 『열정시대』 『새로운 책의 시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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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도 절반이 지난 지금 한국소설 시장의 가장 큰 센세이션은 이제는 한국 소설이 독자들로부터 급격히 외면받기 시작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최근 들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소설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이른바 순(본격)문학 작품은 목록에서 완전히 사라지다시피 하고 있다. 2014년에 한국소설 중 가장 많이 팔린 소설은 5만부를 겨우 넘긴 성석제의 『투명인간』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8년 11월에 출간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불과 9개월 만에 밀리언셀러로 등극한 이후 한국소설의 밀리언셀러는 더 이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아니 10만부를 넘는 소설마저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2015년에 접어들어서는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그럴 듯한 화제작도 없이 벌써 연말을 향해달려가고 있는 것은 그렇다 쳐도 6월 중순 이후 두 달 동안 언론지면과 소셜 공간을 뜨겁게 달궜던 신경숙 소설 표절논란이 한국 소설을 회복 불능의 상황으로 몰아넣은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신인 저자를 꾸준히 배출하며 문학시장의 규모를 가장 앞장서서 키웠던 민음사는 계간 《세계의문학》의 휴간을 결정했다.
이제 문학권력 논쟁의 중심에 섰던 창비, 문학동네, 문학과지성사를 제외하고는 우리 소설을 꾸준히 펴내는 출판사는 손으로 꼽을 정도다. 초판 3천 부를 넘기기가 어려운 현실이니 그럴 만도할 것이다. 문학동네가 한 달에 5~6권의 우리 소설을 펴내고 있을 뿐, 한 달 평균 두세 권의 소설을 펴내는 출판사도 이들 출판사 외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현실에서 작가들이 소설만 써서는 먹고살 수가 없다. 전업으로 겨우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는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다.
소설 시장이 왜 이렇게 쇠락했을까? 과거의 문학소녀(소년)들이 모바일 기기로 대부분의 정보를 소비하기 시작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르가 ‘웹툰’이다. 웹툰을 그리는 작가가 2천 명이나 되고, 1일 1천만 명이 웹툰을 즐기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2018년 국내 만화산업 매출 1조 원 시대”라는 예상마저 나온다. 이런 세상이 갑자기 등장한 것은 아니다. 모든 문화상품은 시대의 산물이다. 가령 올림픽이라는 행사가 소설을 잘 팔리게 한다는 분석이 있었다.
1964년에 도쿄올림픽이 열린 일본에서는 투병 생활을 한 여학생 오시마 미치코와 그의 연인인남학생 고노 마코토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은 『사랑과 죽음을 응시하며』, 야마오카 소하치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점령했다.
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이나 요시모토 바나나의 소설들이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다. 『노르웨이 숲』이 갖고 있던 2백38만 부(하권은 211만 부)란 최고 기록을 깬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타야마 교이치)가 등장해 3백50만 부라는 초유의 기록을 수립한 것도 올림픽이 열린 2004년이었다. 우리 시장을 분석해 보았더니 올림픽이 열린 해에는 한 번을 제외하고 소설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모두 차지했다. 강력한 스포츠 행사가 이럴진대 세계화와 정보화의 양 날개가 활개를 치기 시작한 이후의 세상의 변화가 문학 시장을 가만히 내버려둘 리가 없다. 그러면 이후 경제적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이 문학시장에서 어떤 새로움을 추구했는지를 살펴보자.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는 판타지 소설이 떴다. 한국형 판타지의 원조로 꼽히는 이영도의 『드래곤 라자』와 1천만 부를 넘긴 이우혁의 『퇴마록』을 비롯해 『왜란종결자』(이우혁), 『용의 신전』(김예리), 『귀환병 이야기』(이수영) 등 장편 판타지의 출간이 줄을 이었다. 이즈음에는 영화 기획 단계에서 영화의 내용을 소설화한 『편지』, 『8월의 크리스마스』, 『정사』, 『약속』, 『짱』,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등의 ‘영상소설’이 동반해서 인기를 끌
었다. ‘카드대란’이 터진 2003년에는 인터넷소설의 붐이 엄청났다. 여고생 인터넷 소설 작가 귀여니의『그 놈은 멋있었다』를 비롯한 인터넷소설은 할리퀸문고에 익숙했던 어린 독자들을 유혹했다. 솔직하고 밝은 캐릭터가 등장하는 빠른 스토리 전개의 인터넷소설은 계몽과 교훈을 포기하고 감성과 이미지로 승부했다. 이즈음에 동반해서 인기를 끈 것은 『파페포포 메모리즈』를 비롯한 ‘카툰’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엄습한 2008년에는 성장소설이 대세를 이뤘다. 황석영의 『개밥바라기별』(문학동네)과 김려령의 『완득이』(창비)는 그 해 가장 많이 팔린 소설로 등극했다. 경제가 성장을 멈추니 문학작품을 통해서라도 성장의 의미를 되새겨보고 싶었을까? 그해에 성장소설이 아닌 인기 소설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고, 외국 소설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 또한 성장소설 『리버보이』(팀 보울러)였다. 이 해에 이름 있는 작가들은 모두 인터넷 속으로 들어가 소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세 시기의 사이에 어떤 소설이 읽혔는가도 중요하다. 1998년과 2003년 사이에는 순애(純愛)소설붐이 대단했다. 『국화꽃 향기』(김하인), 『가시고기』(조창인),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등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린 소설들의 위세는 IMF 외환위기로 가족 해체의 위기를 겪은이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이때 《조선일보》에 대중소설 논쟁이 펼쳐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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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과 2008년 사이에는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를 필두로 한 팩션 붐이 있었다. 이즈음 역사서마저 팩션을 즐기기는 했으나 우리 소설이 팩션 붐을 주도하지 못했다. 팩션 붐을 주도한 것은 드라마와 영화였다. <주몽>, <대조영>, <해신>등의 드라마와 <살인의 추억>, <왕의 남자>,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등의 영화가 문화 시장을 휩쓸었다.
2008년 이후에는 영상화된 소설, 즉 스크린셀러나 텔레셀러가 아니면 소설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소설은 이들 장르에 붙어서 명맥을 유지하는 파생 상품으로 전락하다시피 했다. 그러다 등장한 것이 웹툰 붐이다. 웹툰은 이제 한국 서사 콘텐츠의 중심에 서 있다. 영화, 드라마,연극, 뮤지컬, 애니메이션, 게임, 팬시, 출판 등 모든 문화가 오로지 웹툰의 흐름을 지켜보고 있는 형국이다. 웹툰이 문화 시장을 주도한 다음부터 젊은 독자들은 모바일 기기를 이용해 로맨스 판타지 등의 온라인소설도 즐기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자연스럽게 ‘순문학의 죽음’이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만화평론가 박석환은 「왜 사람들은 웹툰에 열광하는가」(《기획회의》 397호, 2015. 8. 5.)에서“초기 웹툰의 무대를 연 것은 훈련된 작가나 성숙한 독자가 아니라, 무명의 생산자였고 목적성이 명확하지 않은 소비자였다. 기존 만화계가 ‘종이출판’이라는 제한적 무대를 기반으로 운영됐다면 이들은 제한 없는 무대, ‘종이 없는 만화 출판’이라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을 좀 더 들어보자.
“종이라는 권위에서 벗어난 만화는 그 자체로 탈권위적이었다. 상품으로서의 정형성과 완결성이 아닌 자유로운 창작 의지에 따른 내용과 최소한의 형식이 갖춰져 있을 뿐이었다. 특정한 목적성을 지니지 않은 이른바 ‘지나가는 손님’들이 작품에 대해 공감하고 소통하기 시작했다. 소비자들 역시 2차 생산자 또는 유포자가 되어 만화를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팬덤이 형성됐다. 만화적 형식을 취한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팬덤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본 포털사이트는 이를 핵심 서비스 아이템으로 선정해 창작자와 소비자를 매개하기 시작했다.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로부터 웹을 기반으로 한 만화 ‘웹툰’이 탄생했다. 포털사이트는 소수의 창작자 그룹과 다수의 사용자 그룹을 매개했고 창작자 그룹의 활동 촉진을 위한 정책을 마련했다. 그리고 창작자 그룹의 이익을 증진시켜주는 방식으로 소비자 그룹의 참여를 확대시켰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이익 역시 강화해 갔다. 이른바 기업 광고 노출 수익을 기반으로 한 포털사이트 ‘무료 웹툰 서비스 플랫폼 모델’이 완성된 것이다.”
박석환은 웹툰이 사라졌던 만화의 중심 소비층을 다시 불러들이고 만화 소비 단절층이라고 할 수 있는 30·40대까지 다시 만화 소비자로 만든 요인으로 훈련되지 않은 신인작가의 등용으로 인한 ‘내용과 형식의 다양성’, 작가의 명성이나 편집자의 권위에 의해 작품을 선택하지 않고 철저히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작품을 선택하고 편성한 ‘사용자 지향성’, ‘무료 가격 정책’ 등을 꼽았다.
창작자이자 편집자(기획자)이자 문화평론가인 오스카 에이지는 순문학계의 ‘작가=창조자’ 등식을 단호히 거부한다. 그는 누구나 배워서 창작을 통해 가능성을 열어갈 여지가 많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점차 축소되어 아사 상태에 이른 일본의 순문학이 라이트노벨을 포함하는
등 서브컬처에 얹혀 생명을 연장하는 상황이라는 주장을 해왔다. 『캐릭터 메이커』 등의 창작론을 다룬 책에서 “어떤 폭력이나 사건으로 ‘자아실현’을 하기보다는 ‘이야기(스토리)를 만드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한 그는 소수에게만 의미 있는 작품이 과연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닐 수 있는지 꾸준히 의문을 제기했다.
이미 네이버에 로맨스 소설을 써서 한 달에 1천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챙기는 사람이 수십 명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만화전문 채널 ‘레진코믹스’에 작품을 연재해 매달 1천만 원 이상을 받아가
는 작가가 30~40명이고, 매달 5천만 원 이상을 받아가는 작가도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플랫폼과 모바일이 문화의 생산과 소비를 주도하는 지금, 순문학이 존재감을 점차 잃어가는 사이에 이야기성이 강한 서브컬처가 주류 문화로 올라서고 있다. 누구나 글을 쓰는(그리고 써야 하는) 시대이다 보니 ‘글쓰기’와 ‘읽기’에 대한 책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이제 문학이 ‘문장의 힘’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잘 품어야겠지만 그 이전에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부터 만들어 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