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대산칼럼
지난 가을,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게 살다간 시인 백석의 삶을 재구성한 연극 「백석우화」를 봤다. 첫 시집이자 마지막 시집이 된 『사슴』의 발간 직후부터 한반도 최고의 오지 삼수에서 양치기로 살며 쓸쓸히 죽음을 맞기까지의 백석의 생애를 그린 이 연극은 해방공간에서 자의도 타의도 아닌 단지 자신의 고향에 남음으로써 불행해진 북쪽에서의 삶을 복원하는 데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연극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된 시기인 1961년의 두 장면이다. 하나는 교조적인 이데올로기의 개입으로 설 수 있는 문학적 공간을 잃어버린 백석이 남쪽의친구이자 사랑했던 여인의 남편이 된 신현중에게 쓴 공개편지(《문학신문》 1961년 3월23일자)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남녘땅에서 모든 붓들이 창검의 숲이 되어 미제와 박정희 군사깡패를 몰아내고 쓸어 눕히기 위해 일어설 때는 왔다”며 생존을 위해 북의 정권이 요구하는 글을 쓴 백석의 모습이었다. 연출자는 이 장면에서 백석을 광대에 비유했다.
다른 하나는 그해 《현대문학》 9월호에 20대의 패기에 찬 평론가 유종호가 「한국의 페시미즘」이라는 글을 통해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 시의 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낙백(落魄)한 영혼이 펼쳐 보이는 이 비관론의 절창이 한국 최상의 시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중략)…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인의 생활철학과 인생관이 집약된 대표적인 사상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라는 지금도 백석의 시를 논할 때 정론으로 유효한 유종호의 뛰어난 비평적 심미안을 새삼 확인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지만 더 주목되는 것은 이 글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이다.
그가 훗날 어느 좌담에서 밝힌 바 있듯이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남쪽에서 어느 날 ‘조선’이란 말이 금기시되니까 불과 두어 달 사이 멀쩡하게 사용하던 ‘조선옷’, ‘조선기와집’이란 말이 없어지고 ‘한복’, ‘한옥’으로 바뀌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4·19혁명으로 자유를 누렸지만 곧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가 집권하며 깊은 절망감과 함께 찾아온 ‘더 무서운 세상’에 이 글을 발표한 것이다. 비록 시인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유치한 글에다 시만 인용했다고 겸손해 하지만 여기서 문학과 문학인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북과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세우던 엄혹한 시대를 뚫고 분단 후 백석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젊은 평론가의 용기와 문학정신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백석의 자리를 찾는 초석이 되고 한국문학을 온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문학과 예술의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연설을 했다는극작가 겸 연출가, 그리고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희곡을 쓴 또 다른 극작가 겸 연출가에 대한 창작지원이 심의위원회 결과와는 달리 뒤집히고 나아가 배제와 포기종용으로 이어지더니 다른 연극의 검열문제로 확대되는 광풍, 정부 지원을 받는 대형 문학행사에 여러 문인들이 비토 당했다는 후문, 그리고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돈다는 가라앉지 않는 수군거림. 이어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이르기까지 예술문화계 전반에 최소한의 자율성 문제를 넘어 정치적, 지적 일치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북에서의 백석이 그랬듯이 문학(예술)은 힘으로 일시적으로 통제하고 표면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예술을 광대로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상황 전체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무서운 시절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젊은 평론가의 모습에서 그 본질과 절대로 교환될 수 없는 가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문학은, 예술은, 문화는 이념 정치 등의 외부환경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빤한 말 대신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혼돈스럽고 불온한 것이다. 언제나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자유를 이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써 하나의 작품이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무질서해보이고 혼돈스러울지 몰라도 다시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인 것이다.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며 복잡하고 다층적인 시대의 그늘을 찾고 그것을 보듬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누구도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에게 공헌하는 것이 예술이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문학이다. 오늘 ‘무서운 세상’과 그것을 횡단하는 문학이 새삼 떠오른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이고 또 희극이다.
날마다 많은 주장과 의견들이 표출되고 충돌하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구태의연하고 울림이 없는 진보와, 과거 철없는 진보의 그것보다 더 유치하거나 더 과격하고 무례한 방법으로 보수를 자임하는 이들을 보며 광대가 되어버린 시인과 그 험난한 시절 문학적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한 젊은 평론가를 생각한다. 도덕성과 미래지향적인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진보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인내의 미덕을 잃지 않는 따듯한 보수의 균형 있는 공존을 생각한다.
‘무서운 세상’을 횡단하는 ‘혼돈’
글 곽효환 ㅣ 시인, 대산문화재단 상무, 계간 《대산문화》 주간. 1967년생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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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남과 북의 대립과 갈등이 고조된 시기인 1961년의 두 장면이다. 하나는 교조적인 이데올로기의 개입으로 설 수 있는 문학적 공간을 잃어버린 백석이 남쪽의친구이자 사랑했던 여인의 남편이 된 신현중에게 쓴 공개편지(《문학신문》 1961년 3월23일자)를 발표하는 장면이다. “남녘땅에서 모든 붓들이 창검의 숲이 되어 미제와 박정희 군사깡패를 몰아내고 쓸어 눕히기 위해 일어설 때는 왔다”며 생존을 위해 북의 정권이 요구하는 글을 쓴 백석의 모습이었다. 연출자는 이 장면에서 백석을 광대에 비유했다.
다른 하나는 그해 《현대문학》 9월호에 20대의 패기에 찬 평론가 유종호가 「한국의 페시미즘」이라는 글을 통해 백석의 시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을 소개하는 부분이다. “이 시의 작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다만 한 가지 명백한 것은 낙백(落魄)한 영혼이 펼쳐 보이는 이 비관론의 절창이 한국 최상의 시의 하나라는 사실이다. …(중략)… 이 작품이야말로 한국인의 생활철학과 인생관이 집약된 대표적인 사상시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다”라는 지금도 백석의 시를 논할 때 정론으로 유효한 유종호의 뛰어난 비평적 심미안을 새삼 확인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지만 더 주목되는 것은 이 글이 발표된 시대적 배경이다.
그가 훗날 어느 좌담에서 밝힌 바 있듯이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남쪽에서 어느 날 ‘조선’이란 말이 금기시되니까 불과 두어 달 사이 멀쩡하게 사용하던 ‘조선옷’, ‘조선기와집’이란 말이 없어지고 ‘한복’, ‘한옥’으로 바뀌는 ‘무서운 세상’이 되었다. 4·19혁명으로 자유를 누렸지만 곧 5.16쿠데타가 일어나고 군부가 집권하며 깊은 절망감과 함께 찾아온 ‘더 무서운 세상’에 이 글을 발표한 것이다. 비록 시인의 이름을 밝히지 못하고 유치한 글에다 시만 인용했다고 겸손해 하지만 여기서 문학과 문학인의 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가 북과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세우던 엄혹한 시대를 뚫고 분단 후 백석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젊은 평론가의 용기와 문학정신이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백석의 자리를 찾는 초석이 되고 한국문학을 온전하게 만든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 문학과 예술의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야당 대통령 후보의 지지연설을 했다는극작가 겸 연출가, 그리고 대통령의 부정적 이미지를 연상케 하는 희곡을 쓴 또 다른 극작가 겸 연출가에 대한 창작지원이 심의위원회 결과와는 달리 뒤집히고 나아가 배제와 포기종용으로 이어지더니 다른 연극의 검열문제로 확대되는 광풍, 정부 지원을 받는 대형 문학행사에 여러 문인들이 비토 당했다는 후문, 그리고 문화예술계에 블랙리스트가 돈다는 가라앉지 않는 수군거림. 이어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에 이르기까지 예술문화계 전반에 최소한의 자율성 문제를 넘어 정치적, 지적 일치를 강요받고 있는 상황이 그것이다.
북에서의 백석이 그랬듯이 문학(예술)은 힘으로 일시적으로 통제하고 표면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지만 그것은 예술을 광대로 만드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상황 전체를 희화화하는 것이다. 무서운 시절에도 불구하고 예술의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젊은 평론가의 모습에서 그 본질과 절대로 교환될 수 없는 가치를 확인했기 때문이다.
문학은, 예술은, 문화는 이념 정치 등의 외부환경으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빤한 말 대신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혼돈스럽고 불온한 것이다. 언제나 ‘너무나 많은 자유가 없다’고 계속해서 말하는 모험을 감행함으로써 자유를 이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로써 하나의 작품이 성립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으로 무질서해보이고 혼돈스러울지 몰라도 다시 김수영 식으로 말하자면 그것은 자유와 사랑의 동의어로서의 혼란인 것이다. 다원성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며 복잡하고 다층적인 시대의 그늘을 찾고 그것을 보듬고 위로해주는 것이다. 누구도 그 무엇도 의식하지 않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를 위하고 모두에게 공헌하는 것이 예술이고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문학이다. 오늘 ‘무서운 세상’과 그것을 횡단하는 문학이 새삼 떠오른다면 그것은 분명 비극이고 또 희극이다.
날마다 많은 주장과 의견들이 표출되고 충돌하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구태의연하고 울림이 없는 진보와, 과거 철없는 진보의 그것보다 더 유치하거나 더 과격하고 무례한 방법으로 보수를 자임하는 이들을 보며 광대가 되어버린 시인과 그 험난한 시절 문학적 진실을 용기 있게 말한 젊은 평론가를 생각한다. 도덕성과 미래지향적인 도전정신을 잃지 않는 진보와 다양성을 포용하고 인내의 미덕을 잃지 않는 따듯한 보수의 균형 있는 공존을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