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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는 ‘표절’ 그 후
글 이윤미 ㅣ 헤럴드경제 라이프스타일섹션 부장. 1963년생
# 끝나지 않은 ‘신경숙 사태’
5개월 만에 그의 블로그를 찾았다. 검은 바탕의미니멀한 그의 메인 화면은 꺼진 컴퓨터 모니터처럼 비어 있었다. ‘전체 메시지 0’. 그동안 올린 게시물을 다 삭제했구나! ‘A Writer’s bunker’, 소설가 이응준의 블로그다.
이응준이 ‘신경숙 표절’과 관련, 양심선언하듯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게 발단이 된 사건은 한꺼번에 많은 양을 소비해버린 대중들에겐 피로한 듯한데 문단과 출판계에서는 아직 뜨겁다.
지난 11월 5일 ‘신경숙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문학 동네 대표 자리에서 물러난 강태형 사장이 스페인으로 출국하기 전, 몇몇 기자들과 저녁을 같이 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할 일을 싱겁게 얘기하다 자리가 2차로 이어졌다. 문학동네 소설상 심사를 마친 은희경, 이상운 작가 등 심사위원들과 합석한 자리였다. 뚜렷한 화제 없이 중구난방 흐르다 잠깐 남진우 시인의 ‘표절론’ 얘기가 나왔다. 마침 시인이 《현대시학》에 기고한 「판도라의 상자를 열며- 표절에 대한 명상 1」에 대해, “자살골이나 다름없다”, “비판적인 댓글이 많더라” 등의 얘기가 오갔다.
이 때, 강 사장이 “황정은 팟캐스트 봤냐”며,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라고 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바바파파를 아냐”고 물었다. 모두 뜨악해하자, 소설가 황정은이 한 말이라고 했다.
그래서 얼마 후 들어봤다. 팟캐스트를 들은 건 지난 해 듀오 제이래빗의 팟캐스트를 들은 후 두번째다. 창비의 팟캐스트 <라디오 책다방> 시즌 2의 3회차에 김두식 교수와 함께 초대된 황정은은 똑 부러지게 표절 사태의 핵심을 짚었다. 옮기자면 이렇다.
“제가 좀 불편한 지점이 뭐냐면, 창비 쪽에서 자꾸 ‘하지만’을 붙여서 얘길하는데 대중이 궁금해 하는 것과 창비가 설명하려고 하는 것하고 괴리가 있는 것 같아요. 창비는 ‘미안해. 하지만 당신이 몰라서 그런데……’ 하고 뭘 자꾸 붙인다는 거죠. 단호하고 어려운 단어로 자꾸 붙이는데. 그게 독자들에게 삿대질하는 느낌이 있다는 거죠.”
문단 내에서 이렇게 속 시원한 얘기가 나온 건 처음이 아닌가 싶다.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는 단순 명쾌한 말이다. 그리고 예의 ‘바바파파’란 말이 이어졌다.
“(이번 사태로) 무기력을 경험하면서 젊은 작가들, 저보다 어린 작가들은 바바파파가 돼버렸어요. 바바파파 아세요? 애니메이션이에요. 사람들 사이에 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게 안 보이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는 데 창비가 한 몫하고 있다는 거죠.”
<책다방> 시즌 2를 진행하는 송종원 《창작과비평》 편집위원은 창비가 ‘문학권력’, 즉 영향력 있는 매체이다 보니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창작과비평》 겨울호에 지속적인 논의가 이어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여기에는 창비에 비판적인 평론가의 목소리도 담길 예정이라고 한다.
《현대시학》에 “표절은 문학의 종말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주장을 편, 남진우 시인도 《현대시학》12월호에 ‘표절론’ 2회를 이어갈 예정이다.
문학동네는 남진우 류보선 서영채 신수정 이문재 황종연 등 계간 《문학동네》 1기 편집위원이 겨울호를 끝으로 물러난다. 이번 호에는 편집위원들의 지난 20년의 소회와 현 한국문단의 현상과 과제를 짚는 좌담을 실을 예정이다. 평론가 신형철, 권희철 등 2기 편집위원과 염현숙 신임 대표가 문학동네의 쇄신과 운영을 어떻게 이뤄갈지 관심사다.
창비가 팟캐스트를 통해 대중과 제대로 소통할지는 미지수다. 실망스럽다는 구독 포기자들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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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늦가을 밤의 북콘서트
그가 아니었다면 거기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침부터 머릿속에서 수십 번 더하기 빼기를 하다 결국 발길을 옮긴 건 그의 목소리 때문이라고 해야 옳다. 추슬추슬 비오는 늦가을 밤, 청승맞게 강남까지 간다는 일은 그렇게 간단치 않다. 낮의 고단함을 이어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보상할 만한걸 따져보게 마련이다.
11월 18일 저녁 7시 30분 서초 흰물결아트센터. 황석영 작가의 『해질 무렵』 출간 기념 북콘서트.가수 전인권과 함께 하는 무대다. 한마디로 역대급이다.
김민정 시인의 사회로 우선 황석영 작가와 책에 관한 궁금증을 풀어가는 시간이 마련됐다. 황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된 계기를 이렇게 말했다.
“수년 전 전태일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피디가 용케 전태일 고용 사장을 찾아냈어요. 그 노인이 평범한 아파트 평범한 소파에 앉아서 얘기하는데, ‘나도 어려웠다, 미싱 한 두 대로 시작했다’ 그러더라고요. 피디가 전태일의 죽음에 대해 묻자, 그 노인이 고개를 숙였다가 드는데 눈물이 죽 흐르는 거예요. 그러면서 ‘그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잘해줄 걸’,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그걸 보고 찌릿했어요. 그 사람은 평생의 회한이었겠다, 우리식 자본주의의 회한이구나, 그걸 근사하게 쓰고 싶었어요.”
황 작가의 얘길 듣고, 명치 끝이 묵직해졌다. 아! 작가는 ‘회한’에 마음이 쓰였구나! 전인권과의 무대는 <사랑한 후에>가 연결고리가 됐다.
“일산의 한 까페에 들어갔는데 텅 비어있고 음악이 흐르는데 그게 가슴을 치더라고요. 직원에게 무슨 노래냐고 물으니까 전인권의 <사랑한 후에>라는 거예요. 내가 쓴 소설과 같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둘의 인연이 신통치는 않다. 후배 작가가 전인권을 소개해 주겠다고 해서 술 먹고 한 번 통화한게 오래전 일. 3년 전, 황석영 등단 50주년 축하모임에 초대돼 노래를 선사한 적이 있다.
2부 격에 등장한 전인권은 이 날 노래뿐 아니라 그 특유의 어눌하고 시적인 멘트로 좌중을 감동시켰다. 가령 이런 식이다.
“요즘 저는 뒷모습에 관심이 많아요. 뒷모습을 보면서 노래를 들으면 정말 좋아요.”
“가사 쓸 때 설정만 되면 쉬워요. 설정하기가 어려워요.”
“나이라는 건 멋이라고 생각합니다, 슬픔, 아픔, 다 멋으로 가져갈 수 있는 사람은 나이를 든 사람입니다.”
음반 작업 때문에 『해질 무렵』을 못 읽었다며, 연신 미안해하며 고개를 숙인 전인권의 ‘뒷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