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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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부문 수상자
『마흔두 개의 고독』 • 마종기
Q 많은 독자들이 선생님의 미국에서의 삶을 궁금해 합니다. 근황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저는 늦게나마 한국의 시인으로 살고 싶어 13년 전인 2002년, 좀 이른 나이에 미국의 의사 생활을 은퇴했습니다. 그리고 37년 동안 살았던 오하이오 주의 추위를 피해 미국의 동남쪽 끝인 상하의 플로리다 주 로 이사를 했습니다. 이곳에선 아내와 함께 책도 읽고 산책도 즐기며 조용히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다 결혼해 세 시간 내지 다섯 시간의 비행시간이 걸리는 먼 곳에 살고 있어 일 년에 한두 번 겨우 만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년 몇 달씩은 고국을 방문해 성묘도 하고 옛 친구도 만나며 재미있게 지냅니다.
Q『하늘의 맨살』 이후 5년 만에 나온 시집으로 수상하셨습니다. 이번 수상이 갖는 의미가 있을지요.
이번 시집은 제게는 색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시집이 제 마지막 시집이 될 것 같은 느낌이들어서였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시집 만들 준비를 하는 게 기쁘기보다 힘이 드는 느낌이었습니다. 편집자에게 이번 시집이 마지막 시집이 될 것이란 말을 시집에 넣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 의견은 당장에 거절되었지만요. 제 시들은 상당히 사적이고 하루하루의 생활과 생각이 그대로 보이는 편입니다. 이번 시집은 몇 해 전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시가 많고 작년 회복한 제 국적에 대한 감회가 길게 풀어져있습니다. 혹 이런 일상의 느낌이 공감을 얻어 상을 수상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며 은근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Q 해외에서 생활하시며 모국어로 작품을 쓰는 문인으로서 독특한 위치를 갖고 계시는 듯 합니다. 이러한 부분이 작품 활동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에서 살며 모국어로 작품을 쓰는 것은 아무리 다르게 보려 해도 좋게 보이지 않습니다. 50년 전에 고국을 떠났던 건, 의사 수련 중에도 먹고 살 수가 있다고 하니 앞선 기술을 배워 좋은 의사가 되어야겠다는 욕심 때문이었지 문학을 위해서는 천만 아니었습니다. 그러다가 너무 고생스러워서 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외국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유일한 짓거리였던 모국어로 시 쓰기를 다시 시작한 것입니다. 제가 무슨 특별한 재주가 있어 바쁘고 고단한 외국 생활 중에 즐기며 장난하듯 시를 쓸 수 있었겠습니까. 저는 살기 위해 시를 썼고 그래서 좀 살게 되니까 시 쓰기가 어려워져서 공부를 했고 남의 좋은 시를 많이 읽게 되었습니다. 제 재주가 부족한 탓이 크겠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고국에 사는 좋은 시인의 예리하고 빛나는 시를 읽으면 많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시가 자주 산문적이 되고 저도 모르게 평면적이고 설명적이 되는 것도 아마 모국어에 대한 느낌과 반응이 수십 년의 외지 생활 때문에 많이 무디어진 탓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시인은 무엇보다 자기 모국어와 가까이 있는 게 좋습니다. 그래야 오늘의 모국어를 재료 삼아 오늘의 언어로 시를 쓰고 때로는 주위의 시인들과 문학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하고 좋은 문학 서적을 쉽게 찾아 즐길 수 있습니다. 혹시 외국에 사는 한 가지 장점 같은 게 있다면 아마도 사고의 표면적이 좀 넓을수 있다는 것, 모국에서 많은 이들이 느끼고 보는 일관된 시각을 벗어나 자신만의 유니크한 시선을 즐길수도 있겠다는 정도일 것입니다.
Q 한국 사회에서는 인문학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도 주위 의사들에게 평소 인문학을 꼭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있을지요.
저는 2002년 6월 말에 미국 의사 직에서 은퇴를 했고, 그 한 달 뒤 모교에서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학과목의 강의를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9월부터 시작된 학기에서 ‘문학과 의학’이라는 학과목을 맡아 일주일에 세 시간씩 강의했습니다. 의과대학에서 정규 과목으로 인문학을 가르친다는 참신한 계획은 곧 언론에 알려지게 되었고 일간 신문이나 의료계 전문 신문에서도 크게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강의는 인기 속에 지속되었고 저는 학교 강의뿐 아니라 다른 의대나 큰 병원에서도 특강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강의실에는 학생뿐 아니라 의사, 교수, 간호사와 병원 관계자들까지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이 학과목은 그 후 6년이 지나 학교의 새로운 운영진이 예산 문제로 지속할 수 없다는 변명을 할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제가 이 학과목에 열성을 다 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가 미국에 사는 한국인 의사였지만, 실력 있고 착실하고 성실하던 의사들이 자신의 눈 깜짝할 실수로 환자가 죽거나 고통을 받는 것이 괴로워 숨어서 술만 마셔 중독자가 되기도 하고, 목을 조이는 듯한 긴장과 재미없는 의술에 지쳐 여가의 시간에 마약이나 여자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과학자로서의 의학밖에 몰라 환자를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되는 스트레스에 몰려 심한 우울증으로 자살까지 한 의사를 여러 명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의사들에게 그런 실수로 인생을 낭비해 버리지 않도록 충고해주었습니다. 의사에게 확실한 행복의 대답은 인문학입니다. 미래를 위해 지금의 귀한 시간을 투자해라. 문학을 가까이 해라. 예술에 빠져라. 그러면 의사의 무미건조한 삶이 향기를 품을 것이다. 삶이 힘을 얻을 것이다. 행복한 의사가 될 것이다. 너희가 의사가 되어 언젠가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느낌이 올 때 의학과는 전혀 다른 인문학이 너희를 살려낼 것이다. 너희들의 방패막이는 바로 예술이고 문학이다. 갑자기 그런 취미가 생기지는 않는다. 학창 시절에 그들과 친해지도록 해라.
바로 그즈음 하버드의 생물학 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Edward Wilson)이 ‘통섭(consilience)’이라는 낯선 학설을 들고 나왔고 연이어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나 다니엘 핑크(Daniel Pink) 등도 경제학이나 다른 분야의 학문에 지식의 통합이니 융합이라는 단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종래의 이론으로는 한 분야만 깊이 파고드는 것이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는 길이었지만 이들은 그와 함께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능력, 융합의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텍스트에만 매몰되는 것이 능사가 아니고 컨텍스트 즉 전체의 맥락을 감지하고 이해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합니다. 의사로서는 인간이라는 대상을 상대로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좌뇌파적인 과학자로서의 깊이나 정확성과 함께 우뇌파적 사고 즉 감성의 세계, 인간 이해나 창의력의 중요성을 간파하는 것이 행복한 의사, 좋은 의사가 되는 길이라고 학생들에게 강조하였습니다.우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0년 뜻있는 의사들과 문인들 1백여 명이 함께 모여 ‘문학의학학회’를 결성하고 《문학과의학》이라는 반 연간 학회지를 출간하면서 이제 10호의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학회를 이끌어 가는 것에는 여러 어려움이 많지만 그래도 다른 선진 외국같이 이제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에서도 의대생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려는 움직임이 보여 힘이 생기고 고무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Q 올해로 시력(詩歷) 55년을 맞이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꾸준히 시를 쓰게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지와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어느 틈에 시력 55년이 되었습니다. 그 긴 세월 무엇을 했기에 남 앞에 자랑스럽게 내놓을 작품도 없습니다. 그러나 평생 동안 저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이기 위해 시를 써 왔기에 작품이 변변치 않아도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오랜 세월 고국을 멀리 떠나 살면서 한 해도 쉬지 않고 작품을 발표해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없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제 나이에 앞날의 포부를 이야기하는 것은 쑥스러운 일입니다. 사는 날까지 열심히 문학을 사랑하며 지낼 것이란 말만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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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부문 수상자
『계속해보겠습니다』 • 황정은
Q 2005년 경향신문으로 등단하신 지 10년째 되는 해에 수상하시는 상입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소설 쓰기는 재미있지만, 무엇보다도 외로운 작업입니다. 매일 펼치는 백지를 마주하고 앉으려면 어떻게든 용기를 내야 하는데, 상을 받으면 물론 격려가 되고, 잠시 덜 외롭습니다. 막막한 벌판에 한 개씩 놓인 벤치에 잠시 앉았다 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등단한 지 십 년째 되는 해, 라는 사실 자체는 크게 의미가 없습니다.
Q『계속해보겠습니다』는 덧없음, 사소함의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젊은 세대들이 공감과 위로를 얻는 소설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생의 목표를 버티는 것에 둘 수밖에 없는 젊은 세대들이 한국 사회에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소설로도 읽힙니다. 어느 부분을 염두에 두고 쓰신 소설인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세상을 혐오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 망해버리라고 무턱대고 중얼거릴 수 없는 이유는 제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으로 단 한 번 만날 수 있을 뿐이지만 한 번뿐이라서 소중한 사람들이 제게도 있고, 그들의 덧없음과 사소함 덕분에 세상에 관해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세상에 대고 이제 그만 망해버리라고 말하고 싶지 않은 것과 같은 이유로, 무조건 버티라고 말하고싶지도 않습니다. 생각한다고 착각하면서 그저 버티는 것과, 세상과 관계에 관해 이것저것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버티는 것은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자에서 후자로 조금씩 이동해가는 화자들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한 사람의 삶을 말할 때 그 일상의 사소함을 말하곤 하지만, 세상의 성격을 결정하는것은 그 사소한 근육들, 그 다발의 생김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 언젠가 이 내용을 조금 더 길게 소설로 다뤄보고 싶습니다.
Q 본심 심사 중에 ‘지금은 잘 다루지 않는 가난이라는 문제를 이전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매우 집중적으로 다루는 의미 있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다고하는 오늘날에 가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그것이 가난, 이라면 이 가난은 여전히 의미 있고 유효하며, 앞으로 더 유효할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Q 황정은 소설가가 앞으로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다짐하는 일들은 어떤 것이 있을지요.
혐오를 견디고, 책을 읽고, 소설을 쓰고, 애정하기.
Q『야만적인 앨리스씨』, 『계속해보겠습니다』에 이어 폭력에 관한 소설을 한 편 더 펴낼 예정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 편을 더, 라고는 하지만 사실 한 편도 제대로 쓰지 못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뭐가 됐든, 계속 써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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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곡 부문 수상자
「알리바이 연대기」 • 김재엽
Q 본인을 비롯한 가족들이 실명으로 등장하는 자전적 작품으로 수상을 하셨습니다. 감회가 남다르실 듯한데 어떠신지요.
말씀하신 대로 「알리바이 연대기」는 자전적 작품으로 1930년 출생인 재일교포 2세 아버지(김태용, 2004년 작고)와 1964년 출생인 큰 아들(김재진), 그리고 1973년 출생인 막내 아들(김재엽), 세 사람의 삶의 연대기를 대한민국 현대사의 궤적에 비추어 그려냈습니다. 특히 세 사람 모두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재조명하려면, 그러한 시대를 살아간 개인의 역사 또한 사실을 바탕으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실명으로 등장하기 위해서 병상간호일기와 가족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사진 및 유품 등의 자료조사를 비롯하여작품의 세부사항까지 팩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소박한 개인사와 가족사가 역사적 진실에 마주하고있는 순간을 담담히 그려내는 과정에서 작가로서의 제 자신을 성찰하는 값진 경험을 얻었습니다. 더불어 관객들로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이렇게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큰 상까지 받게 되어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문학과 연극을 벗 삼아 지낸 짧은 시간 동안 제게 가장 중요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당당하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이 상은 제게 문학과 삶을 어떻게 일치시킬 것인지에 대한 더 큰 화두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Q 2013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희곡상, 연기상을 휩쓴 이 작품의 이력에 이제 ‘대산문학상 수상작’이라는 문구도 추가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일본에서도 공연을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작품이 이렇게관객과 평단의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을 보러 공연장을 찾아주신 분들과 대화를 나누다보면, 늘 그분들의 아버지와 가족들에 대한 얘기를 자연스럽게 나누곤 했습니다. 제 아버지의 개인사가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의 개인사들과 무관하지않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국가’나 ‘국민’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데 익숙해진 우리들은 언제나 가슴 한 켠에 품고 있는 ‘알리바이’를 감추고 망각하는 데 길들여져 있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공연을 통해 새롭게 만나는 관객들의 고백을 들어보면서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개인은 무력하지만, 언제나궁극적인 진실을 견지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정직하게인식하려면, 무엇보다 내 가족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공감을 얻은 것 같습니다. 어느 새 ‘국가’와 ‘국민’이라는 다소 전체주의적인 언어에 의해서 소멸되어버린 낱낱의 개인들이 다시 복원될 가능성에 대한 작은 해방감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작품은 허구를 바탕으로 구성된 드라마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적인 속성이 강한 작품이다보니, 누구나 개인사와 가족사가 있었고, 그것은 동시대의 역사적인 흐름과 결코 별개의 흐름이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에 많은 관객들이 이 작품을따뜻하게 품어주신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일본 도쿄에서 만난 관객들 또한 우리 관객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 공연을 아껴주었습니다.
Q 복잡, 다양한 한국 현대사를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한편으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작업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작품을 쓰시면서 특별히 주의한 점이나 어려웠던 점이 있었는지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10년이 되어서 이 작품을 상연하게 되었습니다. 늘 가슴 속에 품어온 이야기였는데,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기록한 병상간호일기를 들춰볼 때마다 누군가에게 어떻게 들려줄 수 있을지 선뜻 자신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제 아들이 태어났고, 이 녀석은 할아버지를 볼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또한 할아버지를 만나본 적이 없고, 그런 할아버지의 인생이 어떻게 해서 일본 오사카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제 아들이 언젠가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에 대해서 궁금해질 때 이 작품이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작은 바람을 갖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할아버지를 비롯한 아버지 세대의 역사와 만날 수 있는 조그만 열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소망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랬기에 지극히 사소하면서도 단단한 진실을 담기 위해서 노력했으며, 어머니와 형님을 비롯한 가족들과도 내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책을 사랑한 아버지의 영혼이 여전히 제 자신의 언어 속에 깃들어 있다는 작은 깨달음도 얻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내 자신을 보여주려면, 온전한 내 자신으로 정직하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 이 작품을 쓰는 과정에서 늘 제 자신을 맴돌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이 작품을 자신의 가족 이야기처럼 아껴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제 작품의 모자람을 너무나 훌륭하게 채워주었습니다. 창작과정에서 느낀 여러 부담들을 함께 나누어준 고마운 만남들이 많았던 공연이었습니다.
Q 국가 정치 지도자들이 국민의 삶에 얼마만큼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인 동시에 어려운 현실에서도 가족을 꾸리고 삶을 이어가는 건강한 국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작품을 꼭 읽어줬으면 하는 독자가 있나요.
역사의 격변과 시대의 격랑에도 담담하게 자신의 자전거 한 대를 끌고 묵묵히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처럼, ‘전체’와 ‘집단’이라는 이름 앞에서 언제나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채 소외되고 마는, 지극히 작은 하나의 ‘개인들’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관계에서도 그 관계에 거리를 두고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담담한 ‘개인들’입니다. 그런 개인들이 소멸되지 않고 꿋꿋하게 역사를 살아가고 있는 힘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국사’와는 다른 역사가 그 시간을 살아낸 무수한 ‘개인들’의 역사 속에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무수한 ‘개인들’을 극장에서 만나보고 싶습니다.
Q「알리바이 연대기」의 재공연 계획은 없는지 또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올해 일본 도쿄 공연 이후에 유럽 국가들에서 「알리바이 연대기」에 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기회가 닿는다면, 언제라도 국내에서 재공연을 시도할 예정입니다. 현재 저는 베를린에서 일 년 간 새로운 작품을 창작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내년에 <세계시민, 이주민, 그리고 난민>이라는 테마로 「알리바이 연대기」에서처럼 실제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바탕으로 다큐멘터리적인 신작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번 수상은 앞으로의 창작활동에 긍정적인 부담을 안겨줄 듯합니다. 겸허한 마음으로 진지하게 정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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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부문 수상자
독역 『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 • 얀 헨릭 디륵스
Q 독일에서 음악교육과 불문학을 공부했던 청년이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고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같은 음대를 다녔던 한국 친구들을 통해서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고, 원래 외국어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한국학 석사과정을 밟고, 10년 전에 한국 전통 공연예술을 배우러 한국에 왔습니다. 당시에는 한국 문학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잘 모르기도 했습니다. 한국어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6년 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문학번역을 가르치시던 교수가 갑자기 유럽으로 돌아가신 후 제가 임시로 그 분이 하시던 일을 하게 되었고지금까지 계속 해왔습니다. 이렇게 우연한 기회로 한국문학 번역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한국문학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그렇지만 그때까지도 스스로 책을 번역할 자신은 없었습니다.그런 자신감은 몇 년 동안 문학 번역을 배우는 학생들의 번역물을 교정하면서 번역에 대한 감각을 키우고 나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영문 작가의 『바셀린 붓다』를 알게 되었을 때야 저도 소설 번역을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정영문 소설가의 작품은 한국 독자들에게도 난해하고 초반에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든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많은 한국 문학작품들 중 독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작품으로 정영문 소설가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정영문 작가의 『바셀린 붓다』를 번역대상작품으로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로 저는 이 작품이 훌륭한 문학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에게 힘들 수 있다는 점은 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에 있어 하기에 힘이 든다는 점이 문제라면 힘들게 등산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힘든 독서야말로 유난히 흥미롭고 정신을 해방시켜 주는 경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정영문 작가가 자신의 독자들을 괜히 괴롭히지는 않는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둘째 이유는 이 소설의 내용이,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초월하고 인간의 의식체험이라고 하는, 보다 보편적인 주제를 다루기 때문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보다 한국적인 작품을 번역하지 않았다는 점을 아쉬워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작품이 한국에 대해서 잘 모르는, 아방가르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이유는 언어적인 이유입니다. 제 생각에 독일어는 정영문의 독특한 문체를 살리는 데 적합한 언어입니다. 정 작가의 모국어가 독일어였으면 작가가 덜 고생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가끔 듭니다. 독일어의 문법은 복잡한 만큼 정확성과 내부적인 논리성이 뛰어나 길고 복잡한 문장을 만드는 데 한국어보다 쉽기 때문입니다.
Q 번역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작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또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바셀린 붓다』의 번역을 시작할 때 저는 문학 번역의 경험이 별로 없었습니다. 제가 원래 언어에 대해 좀 까다로운 편이고, 『바셀린 붓다』가 제 첫 번째 문학번역이라 더욱 꼼꼼히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번역하기 전에 소설 전체를 두 번이나 읽었고 그 다음에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번역했습니다. 이 작품의 특징 중 하나는 아주 길고 복잡하게 얽혀진 문장들인데, 어떤 문장들은 하루 안에도 다 번역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어와 독일어의 문장 구조의 차이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동사가 맨 뒤에 나타난다고 하면 독일어에는 주로 문장의 앞부분, 정확히 말하자면 두 번째 위치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긴 문장을 옮길 때 그 내용적인 긴장의 맥이 번역문에서 끊어질 수도 있는데, 이것을 피하기 위해 나름의 방법을 찾아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글을 완전히 번역하고 난 후에도 번역문을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에 걸쳐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질문들은 정영문 작가와 상의하기도 했습니다. 출판사 측에서 번역문의 편집 작업을 완료하고 난 후에도 원고를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끝까지 수정했습니다.
Q 이번 번역서에 대한 독일 현지의 반응은 어떠한지 궁금합니다.
한국문학은 아직도 독일에서 많은 주목을 받지 못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바셀린 붓다』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몇 개의 일간신문(독일의 바디쉐 짜이퉁(Badische Zeitung), 노이에스 도이츨란트(Neues Deutschland), 오스트리아의 크로는짜이퉁(Kronenzeitung) 등)에 이 작품에 대한 긍정적인 서평들이 실렸고, 서남방송 SWR2 문학프로그램에도 소개되었습니다. 이 서평들은 공통적으로 『바셀린 붓다』가 독자에게 처음에는 큰 도전이 되지만 계속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롭고 매력적인 작품으로 다가온다는 평을 싣고 있습니다.
Q 앞으로 계획 중인 번역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최근엔 정영문 작가의 장편소설 『어떤 작위의 세계』의 출간을 준비하고 있고 배수아 작가의 장편소설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번역하는 중입니다. 이외에 정영문 소설집 『목신의 어떤 오후』도 번역이 완성된 상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