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문학현장
집 떠나면 집이 그리워지고, 헤어지면 그 사람이 새삼 간절해지듯이, 모국어를 떠나면 모국어가 더 그리워지게 된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모국어는 어느 면에서 공기 중에 흔한 산소와도 같은 존재이다. 모국어 집단 속에서 모국어는 개방된 공간에 널리 퍼져 있는 산소처럼 너무 많고 흔해서 모국어 화자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산소의 소중함을 목숨처럼 절감하듯, 외국어 집단 속에서 모국어 화자는 모국어를 생명처럼 느끼게 된다. 마종기 시인은 표지에 쓴 자서에서 낯선 땅에서 얻은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그 자유에는 좀 추운 구석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자유 속에서 추위를 느꼈다면 그것은 모국어 상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모국어 집단속에서 자유가 추위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는 일상 담화 속에서 화자의 체온을 느끼게 되는데, 그 느낌이 화자의 목소리에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담화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체온은 언어 자체에 이미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언어는 그 자체에 언어 사용자의 체온이 담겨 있다. 우리가 외국어를 아무리 잘 알아들어도 외국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고, 또 어떤 이가 비록 모국어를 서툴게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채게 되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은 결국 모국어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를 더 사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모국어 사용 욕구는 더욱 커지고, 모국어는 더욱 숭배된다. 시인의 이번 시집엔 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고, 대체로 말이 장황한데, 한국의 현대시 감각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수다스러워 보이는 이 산문시들은 모국어 사용 욕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국에서의 모국어 사용 욕구는 모국인의 혼과 체온의 공유 욕구로 이어지고, 그것은 모국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데, 그 나라 사랑은 모국에서 보다 더 진하고 절실한 면이 있다. 타국에서 모국어 사랑을 쏟는 마종기 시인 또한 여기서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시에는 모국의 시인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특별한 역사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비 사막3」같은 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인은 몽골의 고비 사막을 여행하던 중, 한국인과 닮은 몽골여자를 만나곤, 고려시대 역사를 떠올리며 그들이 어쩌면 당시 몽골로 끌려갔던 조선 여인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리하여 그는 몽골 노래에서 조선 여인의 음성을 듣고, 고비 사막의 바람에서 고려의 말을 듣는다. 시인은 그 몽골 여인에게서 고려 여인의 피가 보일까 봐 부끄러워하는데, 그 감정은 부끄러운 고려의 역사를 자기 온몸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시인은 한국의 역사를 관념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과 유전자 의식으로 느끼고 있다. 시인이 고비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주운 뼛조각을 동물의 뼈라는 가이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려 여인의 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주머니에 넣곤 온몸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강렬한 혈연의식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감지하게 된다.
타국에 거주하는 시인에게 내장되어 있는 이 깊은 혈연의식은 고국을 방문해 고국을 무대로 한시에서는 매우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되면서 한층 격조 높은 시로 승화된다. 그러한 예의 하나로 꼽히는 「옛집 근처」라는 시는 제목부터 아름답다. 이 시의 제목은 그 자체로 풍부한 시적 여운을 지닌다. 오늘의 한국 시인들에게 ‘옛집’과 ‘골목’은 시어의 목록에서 거의 지워졌다. 한국의 급격한 도시 개발은 옛집과 골목을 빠르게 없애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에 대한 추억이 아예 없는 젊은 시인들도 많을 것이다. 옛집 근처의 골목길에서 그 옛날의 흙길 밟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지금의 그곳에서 혈육의 발소리를 들으며, 옛집의 터에서 ‘지상에서 잃은 모든 것은 / 언젠가 다 되찾게 된다’는 아포리즘성 명구를 낳은 것은 오랜 기간 타국과 고국을 오가는 시인의 독특한 삶의 이력에서 얻은 시적 성취일것이다. 「물의 정성분석」이란 시도 시인의 특별한 삶의 체험의 소산으로 읽힌다. 이 시는 채우고, 떠나고,섞이고, 증발해 버리는 물의 속성을 예리하면서 따뜻한 언어로 묘사한다. 이러한 물의 속성은 마종기 시인의 삶의 이력에 그대로 대응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생의 경로이기도 하다. 시인은 물의 이동경로에서 마침내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데, 이 또한 우리 모두가 희구하는 삶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타국과 고국 사이에서 발생되는 그의 시들은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면서 우리시의 잉여부분을 채워주고, 또 한편으론 삶의 보편적인 내면세계를 더욱 절실한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글 고형진 ㅣ 평론가.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 1959년생
저서 『시인의 샘』 『또 하나의 실재』 『현대시의 서사지향성과 미적 구조』 『백석시 바로 읽기』 『백석 시를 읽는다는 것』 등
마종기 시집
마흔 두개의 초록
|
집 떠나면 집이 그리워지고, 헤어지면 그 사람이 새삼 간절해지듯이, 모국어를 떠나면 모국어가 더 그리워지게 된다. 우리가 늘 사용하는 모국어는 어느 면에서 공기 중에 흔한 산소와도 같은 존재이다. 모국어 집단 속에서 모국어는 개방된 공간에 널리 퍼져 있는 산소처럼 너무 많고 흔해서 모국어 화자는 그 고마움을 모르고 지낸다. 그러나 밀폐된 공간 속에서 비로소 사람들이 산소의 소중함을 목숨처럼 절감하듯, 외국어 집단 속에서 모국어 화자는 모국어를 생명처럼 느끼게 된다. 마종기 시인은 표지에 쓴 자서에서 낯선 땅에서 얻은 자유의 소중함을 강조하면서, 한편으로 그 자유에는 좀 추운 구석이 있다고 말하고 있는데, 그가 자유 속에서 추위를 느꼈다면 그것은 모국어 상실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모국어 집단속에서 자유가 추위를 가져다주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우리는 일상 담화 속에서 화자의 체온을 느끼게 되는데, 그 느낌이 화자의 목소리에서만 발생되는 것은 아니다.
담화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체온은 언어 자체에 이미 내장되어 있는 것이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담은 언어는 그 자체에 언어 사용자의 체온이 담겨 있다. 우리가 외국어를 아무리 잘 알아들어도 외국 사람의 속마음을 알기 어렵고, 또 어떤 이가 비록 모국어를 서툴게 말하더라도 그 사람의 속마음을 알아채게 되는 것은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타국에서의 외로움은 결국 모국어 결핍에서 오는 것이다. 그리하여 외국에 나가면 모국어를 더 사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외국에서 모국어 사용 욕구는 더욱 커지고, 모국어는 더욱 숭배된다. 시인의 이번 시집엔 많은 이야기와 다양한 주제들이 담겨 있고, 대체로 말이 장황한데, 한국의 현대시 감각에 비추어 상대적으로 수다스러워 보이는 이 산문시들은 모국어 사용 욕구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타국에서의 모국어 사용 욕구는 모국인의 혼과 체온의 공유 욕구로 이어지고, 그것은 모국에 대한 사랑을 낳는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되는데, 그 나라 사랑은 모국에서 보다 더 진하고 절실한 면이 있다. 타국에서 모국어 사랑을 쏟는 마종기 시인 또한 여기서 예외가 아니어서, 그의 시에는 모국의 시인에게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특별한 역사의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고비 사막3」같은 시가 대표적인 예이다. 시인은 몽골의 고비 사막을 여행하던 중, 한국인과 닮은 몽골여자를 만나곤, 고려시대 역사를 떠올리며 그들이 어쩌면 당시 몽골로 끌려갔던 조선 여인들의 후손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그리하여 그는 몽골 노래에서 조선 여인의 음성을 듣고, 고비 사막의 바람에서 고려의 말을 듣는다. 시인은 그 몽골 여인에게서 고려 여인의 피가 보일까 봐 부끄러워하는데, 그 감정은 부끄러운 고려의 역사를 자기 온몸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시인은 한국의 역사를 관념과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혈연과 유전자 의식으로 느끼고 있다. 시인이 고비 사막을 걷다가 우연히 주운 뼛조각을 동물의 뼈라는 가이드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려 여인의 뼈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주머니에 넣곤 온몸이 편안하고 따뜻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에서 우리는 그가 얼마나 강렬한 혈연의식을 간직하고 있는가를 감지하게 된다.
타국에 거주하는 시인에게 내장되어 있는 이 깊은 혈연의식은 고국을 방문해 고국을 무대로 한시에서는 매우 서정적인 언어로 표현되면서 한층 격조 높은 시로 승화된다. 그러한 예의 하나로 꼽히는 「옛집 근처」라는 시는 제목부터 아름답다. 이 시의 제목은 그 자체로 풍부한 시적 여운을 지닌다. 오늘의 한국 시인들에게 ‘옛집’과 ‘골목’은 시어의 목록에서 거의 지워졌다. 한국의 급격한 도시 개발은 옛집과 골목을 빠르게 없애고 있기 때문에, 아마 그에 대한 추억이 아예 없는 젊은 시인들도 많을 것이다. 옛집 근처의 골목길에서 그 옛날의 흙길 밟는 소리를 환청으로 듣고, 지금의 그곳에서 혈육의 발소리를 들으며, 옛집의 터에서 ‘지상에서 잃은 모든 것은 / 언젠가 다 되찾게 된다’는 아포리즘성 명구를 낳은 것은 오랜 기간 타국과 고국을 오가는 시인의 독특한 삶의 이력에서 얻은 시적 성취일것이다. 「물의 정성분석」이란 시도 시인의 특별한 삶의 체험의 소산으로 읽힌다. 이 시는 채우고, 떠나고,섞이고, 증발해 버리는 물의 속성을 예리하면서 따뜻한 언어로 묘사한다. 이러한 물의 속성은 마종기 시인의 삶의 이력에 그대로 대응된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결국 우리 모두의 보편적인 생의 경로이기도 하다. 시인은 물의 이동경로에서 마침내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데, 이 또한 우리 모두가 희구하는 삶의 종착지이기도 하다. 타국과 고국 사이에서 발생되는 그의 시들은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키면서 우리시의 잉여부분을 채워주고, 또 한편으론 삶의 보편적인 내면세계를 더욱 절실한 언어로 드러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