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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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글과 사진 ㅣ 조운찬 경향신문 후마니타스연구소장. 1963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
- 김육의 『잠곡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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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최고의 개혁, 대동법의 완성자
대동법(大同法) 하면 김육(金堉, 1580~1658)을 떠올린다. 그는 조선 최고의 개혁으로 불리는 대동법의 완성자이다. 그러나 대동법은 김육의 독창적인 제도가 아니다. 처음 제기한 것도 아니다. 김육에 앞서 이이, 류성룡, 이원익, 한백겸, 조익 등이 대동법을 구상하고 주장했다. 김육이 대동법 확대를 소리 높여 외쳤을 때, 강원도 등 일부 지역에서는 이미 대동법이 시행되고 있었다. 그렇다고 대동법을 얘기 하면서 김육을 빼놓을 수는 없다. 김육은 대동법을 전국으로 확대시킨 결정적 인물이다. 그의 평생에 걸친 노력 덕분에 함경도와 평안도를 제외한 전국에 대동법이 뿌리 내리게 되었다.
김육의 문집 『잠곡유고(潛谷遺稿)』에는 대동법 시행을 건의하고 주장하였던 글들이 여러 편 실려있다. 김육은 생애 말년에 이르러 대동법 실시를 더욱 강도 높게 주장한다. 이를테면 죽기 한 해 전인 효종 8년(1657)만 하더라도 김육은 충청도와 전라도에 대동법을 실시해야 한다는 상소문을 세 차례나 올린다. 그는 78세의 노인에 병으로 몸도 제대로 가눌 수 없었지만 글은 서릿발처럼 준엄하다. “앞서 호남 사람들이 대동법을 시행하자고 잇따라 청원하였지만,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고 승정원에서도 그 상소를 올려 보내지 않았으니, 신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 대개 호남은 나라의 근본인데 재해를 크게 당해 민심이 이미 떠나 있습니다. 반드시 가을 안에 이를 시행해야만 조금이나마 혜택을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죽음을 무릅쓰고 여러 차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호남과 호서에 대동법 시행을 청원하는 상소')김육은 죽음을 앞두고서도 대동법 걱정이었다.
『잠곡유고』 연보는 타계 직전에 김육이 남긴 유언이 “전라 감사가 올린 상소에 대한 회계가 어찌 되었는가?”였다고 적고 있다. 감사 서필원이 호남에 대동법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상소한 것을 비변사에 내렸는데, 이 날이 회계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물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김육에게 대동법 시행은 필생의 사업이었다. 김육이 타계한 뒤 효종은 “김육과 같이 뜻이 확고한 사람을 어찌 얻을 수 있을까?” 라고 탄식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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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세가의 길… 농사꾼에서 영의정까지
김육은 조선시대 관료 가운데 경세가의 면모가 가장 두드러진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관심은 민생에 직결되는 경제, 조세, 재정 문제였다. 그는 강인하고 과단성 있는 인물이었다. 한번 결심하면 끝을 보아야만 하는 성미를 지녔다. 이러한 김육의 성품 으로 인해 대동법은 빛을 볼 수 있었다.
김육의 과단성 있는 정책 추진력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그의 신산스러운 삶에서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김육은 서울 마포에서 청풍김씨 양반가문의 자제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양반 자제의 수학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13살 되던 해 만난 임진왜란은 안정적인 사대부 가문을 흔들었다. 왜구를 피해 황해도로 이주한 김육의 피란과 난민 생활은 10여 년간 계속되었다. 전쟁의 상처는 컸다. 15살에 아버지를 잃었고, 21살에는 어머니까지 보내야했다. 25살이 되어 결혼을 했다. 이듬해에 사마시에 합격했다.
결혼도, 과거도 늦었다. 그러나 유생으로서의 기개는 높았다. 성균관에 들어가 문과 공부를 하던 31세 때, 그는 성균관 재생들과 함께 ‘오현종사 청원상소’를 올렸다.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 5명의 유학자를 문묘에 모시자는 상소였다.
이 과정에서 정인홍이 이언적과 이황을 비판하자, 정인홍을 유학자의 명부에서 삭제해버렸다. 김육이 주동이 된 이 사건은 당시 조정과 사림을 떠들썩하게 했다. 김육은 다행히 처벌을 면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을 떠나게 된다.
김육은 경기 가평의 잠곡(潛谷)으로 들어갔다. 잠곡의 청덕동에 회정당(晦靜堂)이라는 작은 집을 지었다. 그리고 10년 동안 낮에는 일하는 농사꾼으로, 밤에는 공부하는 학인으로 살았다. 그의 은거는 한가한 ‘귀거래’가 아니었다. 그는 처자를 이끌고 손수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려갔다. 숯을 구워 서울에 내다팔기도 했다. 당시 서울에서 파루(罷漏, 오경삼점(五更三點)에 큰 쇠북을 삼십삼천의 뜻으로 서른 세 번 치던 일. 서울 도성 안에서 인정(人定) 이후 야행을 금하였다가 파루를 치면 풀리었음)를 치면 숯을 팔기 위해 제일 먼저 동대문에 들어간 사람이 김육이었다고 한다. 한번은 부마 신익성이 친구를 찾아 잠곡에 갔는데, 김을 매던 김육은 일을 중단하지 않고 밭두렁에서 그를 맞이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잠곡에서 10년째 되던 1623년 인조반정으로 김육은 새로운 삶을 맞이한다. 44세의 나이에 의금부도사로 발탁된 그는 문과 시험으로 장원을 하면서 본격적인 관료 생활을 시작한다. 이후 김육은 충청감사, 한성부 부윤, 도승지, 이조참판, 형조 판서를 거쳐 영의정까지 오른다. 40대 초반까지 농촌에서 밭 갈고, 숯을 굽던 것을 생각하면 실로 괄목할 사건이다. 김육에게 시련은 약이었다. 임진왜란 피란생활 10년, 그리고 잠곡에서의 농촌 생활 10년은 김육을 단련시켰다. 김육이 ‘잠곡’과 ‘회정당’을 자신의 호로 삼은 것은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으려는 다짐이었다.
『소학(小學)』에 ‘낮은 관리라도 진정으로 상대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반드시 사람들을 구제할수 있다(一命之士 苟存心於愛物 於人必有所濟)’는 구절이 나온다. 김육은 12살 때 이 대목을 읽고 크게 감동받아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기를 관통해 살아갔다.
양란을 겪으면서 나라의 근간은 크게 흔들렸고,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졌다. 전쟁과 가난을 체험한 김육은 관직을 맡자마자 전란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회 재건에 주력하였다. 대동법 등 일련의 사회개혁정책은 김육의 안민(安民) 정신과 시대 상황이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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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중기 최고의 출판인쇄인
김육은 대동법 실시 뿐 아니라 행정, 외교, 문학, 저술, 인쇄 등 다방면에 업적을 남겼다. 그의 문집을 보면 그가 얼마나 큰 족적을 남겼는지를 알수 있다. 김육은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을 다녀왔다.
1636년 5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동지사로 명나라 연경을 다녀왔다. 조선의 명나라 사행은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644년에는 원손(元孫)을 받들고 7개월간 청나라 심양에 머물렀다. 1650년에는 청나라의 수도가 된 연경을 다시 방문하였다. 명-청 교체기에 이루어진 세 번의 사행은 그가 개혁을 구상하는데 밑거름이 되었다. 시헌력(時憲曆, 태음력의 구법에 태양력의 원리를 부합시켜 24절기의 시각과 하루의 시각을 정밀히 계산하여 만든 역법)이라는 중국의 선진 역법을 도입했으며 화폐 유통, 수차(水車) 제조와 같은 개혁 조치를 잇달아 추진하였다.
비록 당대에 시행되지는 못하였지만, 그의 노력은 조선 실학의 선구로 불릴 만하다.
김육의 업적 가운데 조선의 출판, 인쇄 문화에 기여한 일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김육은 문집 이외에 여러 종의 저서와 편찬서를 남겼다. 『잠곡유고』 이외에 김육이 쓴 대표적 저서는 『잠곡필담』이다. 역대 귀감이 되는 인물들의 행적과 일화를 모은 야사집으로 잠곡 시절에 썼다. 김육은 또 명나라의 역사를 간략하게 기술한 『황명기략』과 중국의 역대 문장을 가려 뽑은 『유원총보』, 신라~조선의 명신들의 행적을 모은 『해동명신록』을 저술하였다. 『인조실록』,『선조수정실록』 찬수에도 참여하였다.
김육은 저술뿐 아니라 책의 편찬 및 간행에도 힘을 기울였다. 『청풍세고』, 『풍암집』, 『벽온방』, 『체소집』, 『기묘팔현전』, 『기묘천과방목』, 『신간효충전경』,『노론정문』, 『송도지』, 『삼대가시전집』 등이 김육이 편찬한 대표적인 서목이다. 『잠곡유고』에는 이들 책에 대한 발문이 실려 있어 편찬의 내력을 알 수 있다. 김육의 노력으로 『해동명신록』, 『기묘팔현전』,『신응경』과 같은 책이 지금도 전하고 있다.
김육은 활자와 인쇄술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
그는 약국 제조로 있을 때, 침술 지침서 『신응경』을 새로 인쇄하고, 내국 도제조를 맡았을 때는 『증보만병회춘』을 찍어내었다. 또 앞서 편찬한 『삼대가시전집』을 목활자로 간행하였다. 이러한 김육의 인쇄에 대한 관심은 아들 김좌명, 손자 김석주로 이어졌다. 김좌명은 ‘무인자’라는 동활자를 만들어 『잠곡유고』, 『서산진씨 심경부주』 등을 간행하였다. 김석주 역시 ‘한구자’라는 활자를 만들어 조선의 인쇄 출판에 기여하였다.
김육은 수십 종의 책을 저술하고 편찬한 출판인이었다. 그러나 그가 펴낸 저술에는 이기론처럼 담론을 논한 성리학서는 한 권도 없다. 문집, 의약서,지리서 등이 대부분으로, 여기에서도 경세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 집구시(集句詩)라는 한시의 실험
『잠곡유고』에는 5백26수의 시가 실려 있다. 문집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이 가운데에는 다른 문집에서는 볼 수 없는 ‘집구시(集句詩)’가 포함돼 있다. 집구시란 다른 사람의 작품에서 한 구절씩 뽑아 지은 시이다. 창작시가 아닌 까닭에 보통 자작시 목록에서는 제외한다. 「충청도 문의에서 조헌을 추억하다(文義憶重峯)」라는 시를 보자.
글은 천하 사람들의 입에 전하고 文傳天下口
의는 아는 사람들이 의논하누나 義杖知者論
옛 사람이 떠나간다 말하였으니 古人稱逝矣
시름하여 앉았다가 문에 임하네 愁坐更臨門
얼핏 보면 일반 한시와 다를 게 없다. 그러나 이 시는 창작시가 아니라 모두 당나라 두보의 시에서한 구절씩 따와 지었다. 처음은 두보의 시 「증정저작(贈鄭著作)」의 구절이고, 두 번째는 「이유소부(貽柳少府)」, 세 번째는 「기가잠(寄賈岑)」, 마지막은 「수좌(愁坐)」라는 시의 구절이다.
『잠곡유고』에는 이러한 집구시가 2백11편이나 실려 있다. 아마 조선시대 집구시로서는 가장 많을 것이다. 집구시는 중국에서는 송나라 때 시작되어 왕안석 등이 즐겨 지었다고 한다. 조선에서는 매월당 김시습의 집구시가 유명하다. 김육은 첫 중국 사행 때 북경에서 문천상이 두보의 시를 집구한 시를 보고 따라 짓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김육의 집구시 가운데에는 사행 때 지은 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김육의 집구시는 모두 두보의 한시에서 뽑아 집두시(集杜詩)라고도 불린다. 글자 그대로 표절해 모은 시인데, 출처를 밝혀 놓았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표절시와는 다르다. 서예에서 왕희지 등 유명인의 글씨를 채집해 비문이나 서첩을 만드는 집자(集字) 풍습이 있는데, 시 구절을 모아 새로운 시를 만드는 집구시 역시 흥미 있는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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