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문학현장
정영문의 『바셀린 붓다』를 독일어로 옮긴 얀 헨릭 디륵스(Jan Henrik Dirks)의 『Vaseline-Buddha』(Literaturverlag Droschl, 2015)가 올해의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수상작이 되었다. 이번 수상작으로 우리는 이제 한국문학의 독일어 번역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 전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학번역원이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의 해외소개를 위한 지원을 시작한 이래 늘 꿈꿔왔던 한국문학번역의 이상적 단계에 마침내 접어든 것이다.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독일어 능통자인 한국인이 주번역자가 되고 한국어를 조금 알거나 많은 경우 아예 모르는 독일인이 공역자가 되어 윤문을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을 제1세대 번역자라 한다면 여전히 한국인이 주번역자 역할을 하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지닌 독일인 번역자가 번역 작업에 상당히 깊이 관여하여 공동작업을 한 경우를 제2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이제 한국문학을 전공하였거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능통한 독일인 번역자가 주도적 역할을 맡거나 단독으로 번역하여 문학성 높은 성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제3세대 번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수상한 얀 헨릭 디륵스는 한국문학과 문화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정영문의 『바셀린 붓다』를 유려한 독일어 문학작품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우리가 고대해 마지않던 독일인 한국문학 전문번역가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원본인 정영문 소설의 문체는 우리말로 읽기에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이를 과연 독일어로 잘 옮길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바가 많았는데 번역자는 이를 매우 문학성 있는 독일어로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 디륵스의 번역본은 우선 번역 자체가 훌륭하다. 원본을 가감하거나 변형하지 않고도 뛰어난 독일어 표현과 문체를 통해 막힘없이 잘 읽히는 가독성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체 수준을 작품 끝까지 잘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원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말의 뉘앙스나 문체의 특징까지도 잘 살렸다는 점 또한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까다로운 한국어 표현에 맞는 독일어의 대응표현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데, 그렇게 해서 찾아낸 독일어 표현이 매우 적확하고 훌륭하다. 책 어느 곳을 펼쳐도 그런 바람직한 번역의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아가서 원본에서의 독특한 우리말 비유나 새로운 개념을 독일어권 문화에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지 않고 단어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 시도 또한 높이 살만하다. 예를 들어 “빛의 물웅덩이”나 “부패한 빛”을 “Lichtpfütze” 와 “verfaultes Licht”(184쪽)로 옮긴 것이 그러하다. 이를 통해 디륵스의 번역본은 독일 독자에게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미덕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번역본은 프리츠 팹케(Fritz Paepcke)가 말하는 “성공한 번역의 범주”를 잘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의 간단한 오역이나 교정상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해 오탈자가 발생한 것(예, 11쪽 “alssolcher”, 14쪽 “Bank...auf dem sich…”, 153쪽 “ich ich” 등)은 앞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디륵스의 번역본이 지니는 또 다른 장점은 스위스의 명망 있는 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됨으로써 독일어권 독자나 언론 그리고 비평가들에게 좀 더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여러 언론에서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독일 서남부 방송의 문학프로그램에 자세히 소개된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렇듯 이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특정한 줄거리가 없는 연상적 글쓰기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라는 독특한 형식과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번역자는 이 또한 매우 격조 있게 번역해 내었다. 이를 통해 사무엘 베케트나 토마스 베른하르트 같은 유럽 모더니즘 문학전통에 익숙한 독일어권 독자들은 한국문학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도 이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정영문 소설은 지금까지 독일어권에 소개된 한국문학의 주요 경향과는 다르다. 그 점 또한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문학과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탄탄한 지식과 함께 격조 높은 독일어 표현 능력까지 겸비한 독일인 번역가를 갖게 되었다. 한국문학을 자신의 모국어로 훌륭하게 옮긴 얀 헨릭 디륵스와 같은 한국문학 전문번역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글 김용민 ㅣ 연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1957년생
역서 『젊은 베르터의 고뇌』, 저서 『문학생태학』 등
프리트헬름 베르툴리스 ㅣ 대구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1958년생
역서 『Der Dichter(시인)』 등
얀 헨릭 디륵스 독역
Vaseline-Buddha (바셀린 붓다, 정영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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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문의 『바셀린 붓다』를 독일어로 옮긴 얀 헨릭 디륵스(Jan Henrik Dirks)의 『Vaseline-Buddha』(Literaturverlag Droschl, 2015)가 올해의 대산문학상 번역부문 수상작이 되었다. 이번 수상작으로 우리는 이제 한국문학의 독일어 번역이 새로운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년 전에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학번역원이 본격적으로 한국문학의 해외소개를 위한 지원을 시작한 이래 늘 꿈꿔왔던 한국문학번역의 이상적 단계에 마침내 접어든 것이다.
한국문학을 독일어로 번역, 출판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독일어 능통자인 한국인이 주번역자가 되고 한국어를 조금 알거나 많은 경우 아예 모르는 독일인이 공역자가 되어 윤문을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이들을 제1세대 번역자라 한다면 여전히 한국인이 주번역자 역할을 하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을 지닌 독일인 번역자가 번역 작업에 상당히 깊이 관여하여 공동작업을 한 경우를 제2세대라 할 수 있다. 그러다 이제 한국문학을 전공하였거나 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능통한 독일인 번역자가 주도적 역할을 맡거나 단독으로 번역하여 문학성 높은 성과물을 내놓기 시작한 제3세대 번역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에 수상한 얀 헨릭 디륵스는 한국문학과 문화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정영문의 『바셀린 붓다』를 유려한 독일어 문학작품으로 재탄생시킴으로써 우리가 고대해 마지않던 독일인 한국문학 전문번역가의 탄생을 알리고 있다.
원본인 정영문 소설의 문체는 우리말로 읽기에도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어서 이를 과연 독일어로 잘 옮길 수 있을지 우려스러운 바가 많았는데 번역자는 이를 매우 문학성 있는 독일어로 훌륭하게 번역해 냈다. 디륵스의 번역본은 우선 번역 자체가 훌륭하다. 원본을 가감하거나 변형하지 않고도 뛰어난 독일어 표현과 문체를 통해 막힘없이 잘 읽히는 가독성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이러한 문체 수준을 작품 끝까지 잘 견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다. 원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말의 뉘앙스나 문체의 특징까지도 잘 살렸다는 점 또한 이 책이 지닌 장점이다. 까다로운 한국어 표현에 맞는 독일어의 대응표현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한데, 그렇게 해서 찾아낸 독일어 표현이 매우 적확하고 훌륭하다. 책 어느 곳을 펼쳐도 그런 바람직한 번역의 예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나아가서 원본에서의 독특한 우리말 비유나 새로운 개념을 독일어권 문화에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지 않고 단어의 조합을 통해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낸 시도 또한 높이 살만하다. 예를 들어 “빛의 물웅덩이”나 “부패한 빛”을 “Lichtpfütze” 와 “verfaultes Licht”(184쪽)로 옮긴 것이 그러하다. 이를 통해 디륵스의 번역본은 독일 독자에게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새롭게 다가갈 수 있는 미덕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 번역본은 프리츠 팹케(Fritz Paepcke)가 말하는 “성공한 번역의 범주”를 잘 충족시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몇몇 부분에서의 간단한 오역이나 교정상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해 오탈자가 발생한 것(예, 11쪽 “alssolcher”, 14쪽 “Bank...auf dem sich…”, 153쪽 “ich ich” 등)은 앞으로 수정해야 할 것이다.
디륵스의 번역본이 지니는 또 다른 장점은 스위스의 명망 있는 문학출판사에서 출판됨으로써 독일어권 독자나 언론 그리고 비평가들에게 좀 더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데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이 나오자마자 여러 언론에서 호의적인 서평을 실었고, 독일 서남부 방송의 문학프로그램에 자세히 소개된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이렇듯 이 작품이 주목받은 것은 특정한 줄거리가 없는 연상적 글쓰기나 글쓰기에 대한 글쓰기라는 독특한 형식과 내용 때문이기도 하다. 번역자는 이 또한 매우 격조 있게 번역해 내었다. 이를 통해 사무엘 베케트나 토마스 베른하르트 같은 유럽 모더니즘 문학전통에 익숙한 독일어권 독자들은 한국문학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도 이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다. 정영문 소설은 지금까지 독일어권에 소개된 한국문학의 주요 경향과는 다르다. 그 점 또한 한국문학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나름대로의 의의가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문학과 한국문화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탄탄한 지식과 함께 격조 높은 독일어 표현 능력까지 겸비한 독일인 번역가를 갖게 되었다. 한국문학을 자신의 모국어로 훌륭하게 옮긴 얀 헨릭 디륵스와 같은 한국문학 전문번역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며 축하의 인사를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