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무방과 들병이와 장삼이사들을 만나다-김유정의 실레이야기마을
지식산업의 중심, 출판의 안과 밖 해방 후 상업출판사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네 가지 전략 전집(全集), ‘모두’를 모아 읽게 해주려는 로망 순문학의 죽음과 이야기의 탄생
조선 재건에 헌신한 농사꾼 출신 영의정의 궤적-김육의 『잠곡유고』
문학의 풍경 자동차 이력서 진실은 반박당하기 쉽다 낙서의 기술
수상작 선정｜ 어둠 속에도 빛을 발한 2015 한국문학의 별들 제23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인터뷰 수상작 리뷰 시 부문｜타국에서 촉발되는 혈연의식과 간절한 언어 수상작 리뷰 소설 부문｜나는 서 있어 이 이야기 앞에 수상작 리뷰 희곡 부문｜'딱 중간에 서는 인생' 의 연대기이자 현대사 수상작 리뷰 번역 부문｜제3세대 번역가의 탄생
우리시대의 화제작
2000년대 전반기의 출판 풍경은 자기계발서와 대중문화 붐을 빼고 말하기 어렵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있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나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와 같은 우화 형 자기계발서는 1997년 IMF 구제금융 사태의 여파로 2001년 모 카드회사 광고에서 외쳐졌던 당부의 말 ‘부자 되세요’와 함께 2000년대 초반 대중의 변화된 정서의 일면을 그대로 반영한다.
2001년부터 방송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는 단숨에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으며 이른바 ‘느낌표 브랜드’ 문학상품을 만들어냈다. 베스트셀러는 대개 미디어셀러이거나 스크린셀러와도 중첩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대표되는 문학작품들이 스크린셀러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원작과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에서 나아가 이미 방영된 드라마가 소설로 출간되는 역방향적 현상도 생겨나게 되었다. 출판계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서점이 점차 문을 닫게 되는데 종로서적의 도산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저변에 자본의 힘이 깔려 있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교양 독자의 관심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읽을거리의 성격은 점차 가벼워지는 추세였다. 문화상품을 ‘독서’하려는 독자가 등장하는 동시에 교양독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세계적 판매고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형 소설이 채우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대한 한국독자의 열광은 이런 시대정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독자가 특별히 아끼는 외국 소설가 가운데 하나다. 그의 소설에 대한 한국독자의 유별난 애정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뒤지지 않는다. 『개미』의 폭발적 인기 이후로,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위엄을 자랑한다. 종종 호기심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 탐구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근본에서 그의 소설의 매력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에 대한 ‘약간’의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베르베르 소설이 갖는 ‘어른을 위한 동화’의 성격은 1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 『나무』의 머리말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나를 재우기 전에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밤에 그 이야기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 뒤로 나는 세상살이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마다 짤막한 이야기를 짓곤 했다. 내가 겪는 문제의 요소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짓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은 갈수록 환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 말이다”(「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무』, 열린책들, 2003, 7쪽). 『나무』에 실린 소설들이 제공하는 환상적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볍게 터치하면서 고단한 삶에 위안을 건넨다.
소설 「가능성의 나무」에서 밝히고 있듯이 -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만약 기상에 중대한 이변이 생긴다면’, ‘만약 지구에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부족하게 된다면’, ‘자본가들이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는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인간 복제 기술을 이용한다면’, ‘만약 우리가 화성에 도시를 건설한다면’, ‘만약 어떤 고기를 먹는 사람들 모두가 그 고기 때문에 똑같은 질병에 감염된다면’, ‘만약 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핵 잠수함에서 방사능 물질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면’ 등등”(『나무』, 129쪽) - 소설집 『나무』 전체가 가령,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한다면(「내겐 너무 좋은 세상」), 시간 여행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바캉스」), 사람의 피부가 투명해진다면(「투명 피부」)……과 같은 식의 다양한 질문과 발랄한 상상력 그리고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으며 이런 질문들 아니 이야기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 것인지 상상하는 일도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다양한 질문들은 폭넓은 지적 정보들을 통해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보고인 『나무』를 읽는 일은 얼마간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면서 독서의 즐거움도 제공해주는 유익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자면 아쉽게도 『나무』가 제공하는 상상력은 기발함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다. 『나무』의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통찰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채워진 베르베르 소설의 이면인 이런 점은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에서 꽤 중요한 요소다. 사실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이점에 대한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소설이 삶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독자에게는 기발함에 그치는 상상력은 『나무』를 포함한 베르베르 소설의 한계로 말해지곤 한다.
그러나 적당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삶을 뒤흔들지 않는 이런 면모는 일상이 자본에 의해 잠식되어감에 따라 삶이 척박해지던 시절을 산 독자에게 맞춤형 소설의 한 양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독서 행위가 그저 킬링 타임용 취미만은 아니라는 거짓위안을 건네면서도 『나무』가 제공한 ‘다른 관점’은 이야기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며 독자의 삶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육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고 가벼운 상상력에 의탁할 수 있게 하는 힘, 여기에 베스트셀러 『나무』에 대한 시대적 요청의 이유, 아니 베르베르소설의 치명적 매력이 있었다.
블록버스터 소설의 치명적 매력, 기발함 그리고 위안
글 소영현 ㅣ 평론가. 1970년생
저서 『분열하는 감각들』 『프랑켄슈타인 프로젝트』 『문학청년의 탄생』『부랑청년 전성시대』 『감정의 인문학』(공저) 등
블록버스터 소설의 치명적 매력, 기발함 그리고 위안
- 2003년의 화제작,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
|
2001년부터 방송된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 <느낌표>는 단숨에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순이 언니』,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려놓으며 이른바 ‘느낌표 브랜드’ 문학상품을 만들어냈다. 베스트셀러는 대개 미디어셀러이거나 스크린셀러와도 중첩되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로 대표되는 문학작품들이 스크린셀러의 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영화에 대한 관심이 원작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으며, 이후에는 원작과 원소스 멀티유즈 방식에서 나아가 이미 방영된 드라마가 소설로 출간되는 역방향적 현상도 생겨나게 되었다. 출판계의 전반적인 경기 침체로 서점이 점차 문을 닫게 되는데 종로서적의 도산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추동하는 저변에 자본의 힘이 깔려 있었다. 한국문학에 대한 교양 독자의 관심이 빠져나가기 시작했고 읽을거리의 성격은 점차 가벼워지는 추세였다. 문화상품을 ‘독서’하려는 독자가 등장하는 동시에 교양독자가 빠져나간 자리를 세계적 판매고를 기록하는 블록버스터 형 소설이 채우기 시작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 대한 한국독자의 열광은 이런 시대정서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한국 독자가 특별히 아끼는 외국 소설가 가운데 하나다. 그의 소설에 대한 한국독자의 유별난 애정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나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뒤지지 않는다. 『개미』의 폭발적 인기 이후로, 그의 거의 모든 소설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와 스테디셀러의 위엄을 자랑한다. 종종 호기심과 그것을 해결하고자 하는 과학적 탐구의 면모를 보여주지만 근본에서 그의 소설의 매력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삶에 대한 ‘약간’의 통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나온다.
베르베르 소설이 갖는 ‘어른을 위한 동화’의 성격은 18편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소설 『나무』의 머리말을 통해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어렸을 적에 아버지는 나를 재우기 전에 언제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러면 나는 밤에 그 이야기에 관한 꿈을 꾸었다. 그 뒤로 나는 세상살이가 너무 어려운 것으로 보일 때마다 짤막한 이야기를 짓곤 했다. 내가 겪는 문제의 요소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짓고 나면 이내 마음이 평온해졌다. (…)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이야기들은 갈수록 환상적인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들은 하나의 게임이 되었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뜻밖의 해법을 찾아내게 하는 게임 말이다”(「이야기를 시작하며」, 『나무』, 열린책들, 2003, 7쪽). 『나무』에 실린 소설들이 제공하는 환상적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하고 세상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가볍게 터치하면서 고단한 삶에 위안을 건넨다.
소설 「가능성의 나무」에서 밝히고 있듯이 - “‘만약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한다면’, ‘만약 기상에 중대한 이변이 생긴다면’, ‘만약 지구에 우리가 마실 수 있는 물이 부족하게 된다면’, ‘자본가들이 인건비가 전혀 들지 않는 노동력을 얻기 위해 인간 복제 기술을 이용한다면’, ‘만약 우리가 화성에 도시를 건설한다면’, ‘만약 어떤 고기를 먹는 사람들 모두가 그 고기 때문에 똑같은 질병에 감염된다면’, ‘만약 바다에 침몰한 러시아 핵 잠수함에서 방사능 물질이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면’ 등등”(『나무』, 129쪽) - 소설집 『나무』 전체가 가령, 기계가 사람처럼 행동한다면(「내겐 너무 좋은 세상」), 시간 여행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바캉스」), 사람의 피부가 투명해진다면(「투명 피부」)……과 같은 식의 다양한 질문과 발랄한 상상력 그리고 메시지를 강요하지 않는 흥미로운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한 편 한 편의 소설을 흥미를 가지고 읽을 수 있으며 이런 질문들 아니 이야기의 씨앗이 어떻게 자라날 것인지 상상하는 일도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다양한 질문들은 폭넓은 지적 정보들을 통해 이야기 속에서 어느 정도 해소되기도 한다. 이야기의 보고인 『나무』를 읽는 일은 얼마간의 지적 욕구를 채워주면서 독서의 즐거움도 제공해주는 유익한 일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자면 아쉽게도 『나무』가 제공하는 상상력은 기발함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않는다. 『나무』의 이야기는 결국 삶에 대한 통찰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 상상력으로 채워진 베르베르 소설의 이면인 이런 점은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에서 꽤 중요한 요소다. 사실 그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이점에 대한 입장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소설이 삶에 대한
통찰에까지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 독자에게는 기발함에 그치는 상상력은 『나무』를 포함한 베르베르 소설의 한계로 말해지곤 한다.
그러나 적당히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삶을 뒤흔들지 않는 이런 면모는 일상이 자본에 의해 잠식되어감에 따라 삶이 척박해지던 시절을 산 독자에게 맞춤형 소설의 한 양태로 받아들여졌던 것이 사실이다. 독서 행위가 그저 킬링 타임용 취미만은 아니라는 거짓위안을 건네면서도 『나무』가 제공한 ‘다른 관점’은 이야기 바깥으로 튀어나오지 않으며 독자의 삶에 개입하지도 않는다. 육신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고 가벼운 상상력에 의탁할 수 있게 하는 힘, 여기에 베스트셀러 『나무』에 대한 시대적 요청의 이유, 아니 베르베르소설의 치명적 매력이 있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