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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문도시 인천, 그 복잡한 표정과 삶의 무늬들
글과 사진 이현식 ㅣ 평론가,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 관장. 1966년생
저서 『곤혹한 비평』 『일제 파시즘 체제하의 한국 근대문학비평』 『성찰적 창조도시와 지역문화』 등
1.
인천은 한국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놓여있는 도시이다. 서울로부터 서쪽으로 50㎞ 쯤 떨어져 황해 바다 옆에 있으면서 공항과 항구를 끼고 있는 곳이 인천이다. 요즘은 인천국제공항으로 잘 알려진 도시, 조금 더 멀리는 한국전쟁 때 맥아더 사령관이 지휘한 상륙작전이 감행된 도시이기도하다.
그런데 인천은 일본에 의해 강제 개항된 1883년만 하더라도 인구가 2천명 남짓한 작은 어촌이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인천은 서울과 부산에 이어 한국에서 세 번째로 큰 대도시로 성장했다. 인구는 300만에 육박하며 강화와 옹진 섬 지역을 포함한 서해안의 최대 도시가 된 것이다. 개항된지 130여 년 만에 인구는 1,000배 이상 늘어났고 면적도 훨씬 넓어졌다. 작은 어촌은 근대 도시로 완전히 탈바꿈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메트로폴리스로 변모되어가는 과정에는 한국 근현대사의 영욕이 함께 녹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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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을 계기로 근대 문물이 쏟아져 들어온 곳이었으므로 인천에는 초창기 근대 문화의 흔적들이 아직도 꽤 남아있다. 최초의 서구식 공원이라는 타이틀이 붙어있는 자유공원을 중심으로 그 둘레가 예전의 도심이었다.
공원에서 항구로 이르는 언덕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인천 중구청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인천부청이었다가 해방되면서 인천시청이 되었다. 시청은 1980년대 중반에 신도시로 이전하고 지금은 인천 중구청이 되었다. 구청 외벽을 장식하고 있는 오래된 타일은 일본 요코하마 시청의 그것과 같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바다 쪽으로 이어진 완만한 내리막길로 걸어 나가면 곧 인천항을 만날 수 있다.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보안과 안보를 이유로 일반인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없는 출입제한구역이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바로 130여 년 전 개항된 제물포항이었다. 인천 중구청 일대를 개항장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제물포항에서 유래한다. 개항과 함께 도시로 형성되었던 곳이라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을 것이다. 중구청을 중심으로 서북쪽으로는 차이나타운이 있고 차이나타운의 언덕을 걸어 내려가면 경인선의 종착역인 인천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개항장을 중심으로 근대식 건축물, 옛 창고건물, 교회, 학교 등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중에는 서양인과 중국인, 그리고 일본인들이 살던 집들도 있다. 한국 전쟁으로 많이 파괴되기는 했지만 한국의 다른 도시에 비해 비교적 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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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본이 2차 대전에서 패전하여 물러가고 한국은 남과 북으로 분단되었다. 한반도 서해안의 중앙에 위치하던 인천항은 분단과 냉전으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여기에 1950년 한국전쟁에서 유엔군의 상륙작전으로 인천은 도시 전체가 파괴되는 시련을 겪는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는 역전되었으나 전쟁은 도시의 건물들을 무너트려 상처를 남겼다. 오정희의 「중국인 거리」에는 전쟁 이후 가난했던 시절 인천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시(市)를 남북으로 나누며 달리는 철길은 항만의 끝에 이르러서야 잘려졌다. 석탄을 싣고 온 화차는 자칫 바다에 빠뜨릴 듯한 머리를 위태롭게 사리며 깜짝 놀라 멎고 그 서슬에 밑구멍으로 주르르 석탄가루를 흘려보냈다.
「중국인 거리」의 첫 대목이다. 소설은 1950년대 중반 인천으로 이주해온 한 소녀의 성장과정을 중국의 옛 조계 지역을 배경으로 그려내었다. 「중국인 거리」에는 자기 나라에서 밀려난 중국인들과 일거리를 얻기 위해 이 도시로 흘러들어온 한국인들, 남의 나라 전쟁에 참여하고 주둔한 미군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 속에서 여러 사건을 겪으며 주인공 소녀가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인상적으로 포착해내었다. 전쟁 이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궁핍한 삶을 여성성(女性性)이라는 관점에서 형상화한 소설이다.
한편 1960년대부터 산업화가 본격 추진되면서 인천과 서울은 그 거점 역할을 하였다. 이른바 경인공업지역을 조성하여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공장이 집결된 공단을 인천의 바닷가와 염전을 매립한 곳에 집중적으로 배치하였다. 농촌을 떠난 많은 젊은이들이 공장에 취직하기 위해 이 도시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인구는 더욱 늘어났다. 급속하게 진전되는 산업화와 성장의 속도를 도시의 여건은 뒤쫓지 못했다. 주택과 도로, 학교와 공원은 부족했고 도시는 혼잡해졌다. 여기에 산업화에 따른 문제들도 발생하기 시작했다. 공기는 오염되었고 노동자들은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하기 시작했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은강시’는 바로 그런 인천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난장이’의 자식들은 은강시에서 공장에 다니며 자본가와 싸운다. 회색빛 ‘은강시’는 희망이 없는 곳처럼 보이지만 작가가 말했듯이 근본적으로는 사랑이 있는 도시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결코 희망을 포기할 수 없음을 이 소설은 우화 형식을 빌려 명징하게 말하고 있다.
아동소설로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바 있는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인천의 만석동부둣가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이야기이다. 인천 만석동은 차이나타운에서 더 북쪽으로 위치한작은 포구가 있는 마을이다. ‘괭이부리’라는 독특한 지명은 이곳의 지형에서 따온 오래된 동네 이름이다. 도심에서 떨어져 있어서 해방 이후에는 월남한 피난민들이 모여 사는 동네였다. 고등학교 동창 친구 가운데에도 이 마을 출신들이 더러 있었다. 도시의 변두리 지역인 셈이었는데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작은 포구를 끼고 있는 빈민촌에서 어린이들이 오순도순 살아가는 모습을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내었다. 이 소설에서 인천은 서울의 주변부 도시, 마이너리티들이 모여 살아가는 도시로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그렇기 때문에 훨씬 인간적이고 희망이 넘친다. 자유공원에 올라 광장에서 바다 쪽을 바라보면 인천항 옆으로 불뚝 솟은 산이 서해 앞바다를 가리고 있다. 원래는 섬이어서 지금도 월미도라 불리지만 육지가 된 섬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국내 최고의 관광지였다. 해수욕장과 풀장, 호텔과 방갈로들이 이어져 있어서 서울역에서 부유한 일본인과 조선인들이 1등이나 2등 칸 기차를 타고 이곳에 와서 일광욕을 즐겼다. 월미도는 서울에서 가까운 최고, 최대의 위락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이광수의 『재생』과 『사랑』, 염상섭의 『이심』, 이효석의 「주리야」, 방인근의 『마도의 향불』, 채만식의 『염마』, 엄흥섭의 「정열기」 등 여러 소설에 월미도가 등장한다. 모두 월미도의 호텔이나 요리점들이 소설의 배경이 되어 묘사되고 있다. 수도권 최대의 관광 위락시설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다.
일본이 조선을 마침내 강제 합병하고 난 뒤 월미도는 그들의 휴양지로 개발되었고 그러면서 인천 도심과 연결된 육지가 되었다. 특히 이태준의 단편소설 「밤길」은 월미도의 바다 위 요정인용궁 각 건설의 현장노동자 황서방의 이야기를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용궁각은 월미도 앞바다 위에 세워진 고급 요리집으로 인천 최고의 명소였다. 이 용궁각 건설 현장에 돈을 벌기 위해 내려온 황서방에게 일어난 슬픈 사연이 「밤길」의 주요 내용이다.
월미도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유흥 뒤에 숨어있는 하층 계급의 삶의 실상을 그려내었다. 이태준이 소설의 배경으로 월미도를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강경애는 그의 대표작 『인간문제』에서 인천을 역동하는 노동자들의 도시로 그려내었는데 그배경은 주로 인천의 부둣가와 바닷가에 면한 공장들, 개항장이었다. 월미도는 노동자들이 단체로 동원되어 신사를 참배하러 가는 곳으로 묘사되어 있다. 실제로 이곳에 일본의 신사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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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의 옛 개항장 중심, 인천 중구청에서 항구로 이어지는 길목에 현재는 인천아트플랫폼과 한국근대문학관이 들어서 있다. 인천아트플랫폼은 예술가들이 일정 기간 입주해서 예술 활동을 하는 시설이면서 작은 공연장과 갤러리, 강의실이 있는 복합적인 문화공간이다. 예술가와 시민이 일상적으로 만나도록 고안되었다. 한국근대문학관은 19세기 말부터 해방까지 우리 근대문학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일종의 문학박물관이다. 두 곳 모두 옛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건물이 주를 이룬다. 100여 년 전 강제 개항된 이곳이 문화를 통해 옛 식민 도시의 기억을 보존하면서도 넘어서고 있다. 과거 한때 식민지였음을 기억하도록 만들면서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세계를 보여주는 곳이다. 문화는 미래를 상상하도록 만들어준다.
인천은 개항도시인 동시에 우리나라의 관문도시이다. 그렇지만 인천은 그런 도시로 규정되기 어려울 만큼 오랜 세월의 흔적과 역사의 표정들, 사람들의 삶의 무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