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탄실이와 주영이

라다크,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홀림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텍스트에 대한 경의

자파(自派)의 탄생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이다

『반노』는 ‘인간’을 지키자는 처절한 투쟁기였다

하루 2천640번 금형을 드나든 손의 기록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맹렬한 노력

홍진에 묻힌 분내……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歲寒三友)

노을바다의 장엄

양요리루 의자에서 커피를 압음하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얇아지는 장편, 환영할 일인가

①소각,저작 ②외경,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인가요

①30년의 끝 ②양들의 침묵

새(NEW)

거울의 미로

①녹색문명(綠色文明) 시대의 숲 ②새끼 ③재와 유리의 미래

소설답지 않은, 그래서 더 공감하는

이광수, 일본에서 크게 취하다

머릿속에 쌓인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불안과 행운 사이에서

엘리엇 업데이트하기

‘더듬더듬 먼 길’을 가는 시와 번역

경계없는 예술 향한 10년여의 노정

대산창작기금,대산세계문학총서

대학생 아시아 대장정 3차 리더십 캠프 및 아시아프론티어클럽(AFC) 발대식 개최

기획특집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 황인숙의 고양이 시와 산문 읽기

글 윤경희 ㅣ 평론가, 1973년생

‘펫의,펫에 의한,펫을 위한’ 문학 4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2003)을 숙독하는 데서 글을 풀어나가기로 한다.1) 「반려종 선언」에서 가장 흥미를 끌면서도 접근하기 쉬운 부분은 해러웨이가 자신과 동거하는 개 두 마리에 관한 사적 인 이야기를 풀어놓는 페이지들이다. 해러웨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인 카옌 페퍼와 같은 종의 피 가 섞인 잡종견 롤런드와 함께 어질리티 경기를 즐긴다. 어질리티 경기는 인간과 개가 한 팀으로 출전 하여, 갖가지 장애물, 통로, 기둥, 시소가 늘어선 경기장에서, 달리기, 뛰어넘기, 통과하기, 지그재그 로 지나가기, 오르내리기 등의 과제를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하나도 빠짐없이 완수하고 시간을 측정하 는 스포츠다. 인간은 개에게 소리와 손짓으로 신호를 보내고, 개는 지시에 따라 신속하게 움직이고, 개의 행로를 따라 인간도 같이 뛰며 움직인다. 어질리티 경기는 인간과 개가 서로를 굳게 신뢰하고, 서 로에게 자신의 욕구와 의사를 이해시키고, 오랜 기간 함께 훈련하고, 착오와 실패를 넘어 부단히 협력해야 비로소 온전하게 수행할 수 있다. 해러웨이가 어질리티 경기에서 예찬하는 것은 이처럼 인간과 동물이 마치 춤을 추듯 서로의 신체, 행위, 지능을 공명시킴으로써 서로에게 의미 깊은 중요성을 지 닌 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서로 다른 종들 사이에 생산적인 관계가 형성되는 사건은 어 질리티 경기에서만 일어나지 않는다.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과 동물은 생활 영역, 행동 양태, 신체적 특질, 식량, 병 등을 공유하면서 공생 진화해왔다. 서로에게 반려종이 되었다.
해러웨이는 반려동물과 반려종을 엄밀히 구분한다. 반려동물은 인간이 주도권자로서 소유하고 양육하는 특정한 동물 개체를 지칭한다. 반려종은 개체가 속한 종 전체이자, 인간과 동물이 대등한 주체로서 지구 환경 안에서 공동으로 역사를 겪어나가고 사회성을 발전시킬 때 발생하는 관계다. 동물만 인간에게 반려종인 것이 아니라, 인간도 동물에게 반려종이다.
반려종은 인간과 개의 관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인간과 고양이, 인간과 장내세균총, 인간과 쌀도 서로에게 필수적이고 유의미한 타자로서 역사 속에서 공생 진화한 반려종 관계다. 과실 수와 꿀벌, 산호초와 해조류, 콩과 뿌리혹박테리아도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해러웨이는 「반려종 선언」을 인간과 개라는 특정 종들에 한정하여 전개한다. 상호 반려종으로서 인간과 개의 공생 진화의 역사는 그저 시간이 흐르는 와중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이 아니다. 아무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양자 의 반려종 관계는 인류의 대륙 간 이동, 자연 개발과 파괴, 인종, 성, 혈통 등 신체적 특질에 관한 이데 올로기, 계급, 노동, 여가, 놀이 같은 사회와 문화자본의 지표들이 복잡하게 얽히며 구성되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해러웨이는 우선 카옌 페퍼가 속한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 품종견의 역사를 추적한다.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는 19세기 후반 바스크 지방의 목동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경유하여 미국 서 부로 이주하면서 스페인에서 수입한 양들과 함께 목양견으로 데려온 개를 조상으로 한다. 캘리포니아 는 이들에 의해 목양 지역으로 개발되었으나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경제 체제와 생태 환경이 완전히 변화했다. 즉, 오스트레일리아 셰퍼드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바스크, 스페인, 오스트레일리아, 미 국, 최소 네 지역의 역사를 고려해야 하고, 개뿐만 아니라 양의 역사도 같이 다루어야 한다. 각각의 개 마다 이처럼 동물 자체의 세대 재생산을 넘어 인간의 이주와 지역 선주민 착취, 식민주의와 자연 파 괴, 다른 동물종들과의 관계, 품종 개량을 빌미로 한 인위적 교배와 경제적 이윤을 복합적으로 사유 하고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롤런드가 속한 잡종견의 역사는 개체마다 따로 추적해야 할 정 도로 훨씬 복잡하다. 잡종견은 비교적 인간의 규제 없이 짝짓기를 하고, 경제적 가치 없이 유기되어 도시의 빈민가와 야산을 무리지어 떠돌고, 보호소에서 안락사되거나, 운이 좋으면 입양되어 멀리 보내진다. 잡종견은 품종견보다 더욱 복잡하고 이질적인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겪으며 인간의 집 안팎에 늘 존재하며 공생해왔다.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을 따라 읽으면, 반려종 개념의 핵심인 인간과 동물이 서로에게 대등한 주체라는 전제는 도달하고자 하는 이상일뿐 현실은 아니라는 결론에 이른다. 인간은 지구상의 어떤 생물종보다 막강한 권력과 기술을 사용하여 자연 생태계를 자기의 이익에 맞게 무참히 파괴하고 변형시 켜왔다. 반려종 관계의 형성에서도 인간은 동물과 비할 바 없이 큰 주도권을 휘두르며 자기중심적으 로 관계의 양상을 설정해왔다. 엄밀히 말하면, 반려의 이론과 윤리는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최소한의 시혜적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더라도 「반려종 선언」은 바로 이 점에서 한계를 노출하면서 동시에 실천의 출발점을 제공한다. 「반려종 선언」은 자연 생태계의 진화사를 넘어 인간이 개입된 문명과 자연 파괴의 역사를 인간 스스로 망각하지 않으려는 입장에서 출발하며, 과거와 현재의 사실에 근거하여 미래의 지구 환경을 상상하고 만드는 정치적인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해러웨이의 「반려종 선언」이 개와 공생하는 학자의 사적 체험에서 기원한 정치적 어젠다라면, 황인 숙의 모든 글들은 고양이와 공생하는 문학인의 사적 체험과 실천에서 비롯한 시적 보고서이자 그 실천에 동참을 촉구하는 탄원서이다. 1984년 「나는 고양이로 태어나리라」고 선언한 시인은 35년이 흐른 현재까지도 시의 환경에 언제든 고양이들을 풀어놓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간의 산문과 인터뷰에서 밝혀진 사항에 따르면, 황인숙은 서울 해방촌의 자택에서 란아, 보꼬, 명랑이라는 이름의 고양이 셋을 기르다 최근에 명랑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으며, 고양이 사료와 간식을 무겁도록 갖고 다니면서 집 밖의 유기묘 수십 마리를 돌보는 데도 성심과 전력을 다한다. 황인숙에게 고양이는 특정한 개체로 서의 반려동물을 초월하여 인간과 함께 식량과 거주지라는 물질적 기반뿐만 아니라 생장, 성숙, 병이 라는 신체적 특질, 그리고 배려, 희망, 헌신 등의 윤리적이고도 감정적인 가치들을 나누는 반려종 그 자체다. 해러웨이가 반려동물을 주인의 소유물이자 가정 내부의 개체라는 협소한 테두리에 가두고 무조건 사랑하기를 넘어서 반려종들이 지구 생태계와 인간의 역사에서 겪어온 복잡한 역사를 기억해 야 한다고 주장하듯, 황인숙도 고양이 시를 쓰고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특정 동물종이 인간에게 선 사하는 미적 쾌락보다 넓은 맥락에서 그것의 위태로운 생존의 역사를 관찰하고 기억하고 보고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황인숙과 고양이가 반려종으로서의 상호 관계를 형성하고 공동의 기억을 축적하는 미시생태계인 해방촌이라는 특정한 지역의 역사를 먼저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해방촌은 접근하기 쉽지 않은 가파른 언덕 지형에 식민, 내전, 미군정, 디아스포라, 젠트리피케이션의 기억을 켜켜이 간직한 헤테로토피아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강제하기 위해 축조한 108개 계단이 잔존하고, 광복 이후 일본군이 버리고 떠난 사격장과 육군관사를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과 미군이 차례로 점유했으며, 빈곤한 이주민들이 새로 일구는 생활 터전에 고급 사립학교들이 들어서서 계급 구성원들이 물과 기름 같은 일시적 공생의 층위를 이루었고, 근처의 용산에 미군기지가 생겨나서 외국인들의 유입이 많아졌고, 현재는 기존의 재래시장에 카페, 독립서점, 레스토랑이 하나둘씩 문을 열고 타 지역의 소비자들을 유인한다. 해방촌의 형성에는 적어도 100년에 걸쳐 일제 강점기 이전의 선주민, 일본인과 미국인, 북에서의 월남인, 교육 엘리트 계층,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외국인 노동자들, 타 지역에서 이주한 소상인들과 도시 산책객들 등 계급, 인종, 국적, 지역 면에서 이질적인 인간들이 관여해왔다.2)
정부 주도로 개발하지 않고 독립 이후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계획 없이 만든 동네이기에, 해방촌은 태풍의 눈처럼 서울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정치, 경제, 문화의 차원에서 결코 지배적 영 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변두리로서의 특색을 띤다. 황인숙은 해방촌 거주자로서 시와 산문에 이 지 역의 독특한 혼종적 인간 군상을 등장시킨다.3) 시인처럼 고양이가 출몰하는 구역에 밥을 주는 캣맘 들, 고양이 밥주기에 화를 내거나 야밤에 독약을 놓는 사람들, 폐지를 주우며 하루벌이를 하고 주민 센터에서 쌀을 수급 받는 여성 노인들, 가출한 중학생들, 지하 노래방에서 어떤 사연인지 모르게 악 이 섞인 가락을 내지르는 중년 여성, 치킨집 심야 배달원, 외국인 노동자들, 고향을 떠나와 스산해 보 이는 외국인 여성들, 해방촌 인근 서울역의 노숙자, 북창동의 취객들……. 해방촌이라는 미시 생태계 에서 황인숙의 시선에 포착되는 인간종은 약육강식과 적자생존의 이데올로기 속에서라면 생존 가능 성이 위태로운 존재들이다. 안정적인 미래를 설계할 만한 경제적 기반이 취약하고, 타국에서의 차별 적 대우로 존엄한 시민으로서의 지위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며, 노동에 지쳐 밤에도 제대로 휴식하 지 못하고, 심지어 밤에도 노동하고, 좌절과 분노를 생산적인 문화 활동으로 승화할 여력과 방도가 없이 알코올에 의존하여 한시적으로 달래고, 모든 것을 상실하고 박탈당한 채 거리로 밀려난다.
황인숙이 시와 산문에서 불러내는 것은 도시 안에서 자기만의 안전한 장소와 먹고살기의 지속적인 방책을 잃은 채 겨우 잔존하는 생명체들이다. 이때 도시 변두리의 유기묘들은 이처럼 취약한 인간들에게 가장 어울리는 지위의 반려종 동물이라 할 수 있다. 황인숙은 시와 산문에서 란아, 보꼬, 명랑 이뿐만 아니라 야밤에 후암동 종점의 문 닫힌 가게 앞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유기묘, 연립주택 보안 등 아래의 고양이, 더 이상 어디인지 특정하는 게 무색하게 굽이굽이 퍼진 도시의 골목과 구석마다 숨어 사는 무수한 길고양이들을 끊임없이 호출하고, 기꺼이 자기의 생존비용을 덜어 그것들에게 먹 이와 돌봄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이 서로에게 유의미한 타자가 되는 반려의 윤리 적 실천을 몸소 수행한다. 동물 사육의 역사에서 고양이는 인간이 포획해서 길들인 동물이 아니라 인 간이 배출하는 식량 부산물과 그것에 유인되는 쥐들에 이끌려 스스로 인간의 생활 영역에 들어온 동 물이라고 알려져 있다. 황인숙의 시선과 글쓰기는 이처럼 인간을 반려종으로 택한 고양이의 주체성에 인간종의 일원으로서 책임감 있게 응답한다. 도시 생태계에서 연약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원리는 적 자생존과 약육강식이 아니라 서로를 반려종으로서 존중하는, 병과 죽음의 비극마저 함께 겪고 배우 는, 공생 진화라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한결같이.


1) 도나 해러웨이, 「반려종 선언」, 『해러웨이 선언문』, 황희선 옮김, 책세상, 2019, 115~256쪽에 의거하여 아래 몇 문단에서 도나 해러웨이의 논지를 정리하고 필자의 해석을 덧붙였다

2) 권기봉, 『서울을 거닐며 사라져가는 역사를 만나다』, 알마, 2008, 52~63쪽을 참조하여 위의 내용을 요약했다.
3) 황인숙의 무수한 출간작들 중에서 특히 1) 『해방촌 고양이』, 이숲, 2010, 2)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문학과지성사, 2016,3) 『아무 날이나 저녁때』, 현대문학, 2019를 중심으로 읽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