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탄실이와 주영이

라다크,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홀림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텍스트에 대한 경의

자파(自派)의 탄생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이다

『반노』는 ‘인간’을 지키자는 처절한 투쟁기였다

하루 2천640번 금형을 드나든 손의 기록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맹렬한 노력

홍진에 묻힌 분내……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歲寒三友)

노을바다의 장엄

양요리루 의자에서 커피를 압음하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얇아지는 장편, 환영할 일인가

①소각,저작 ②외경,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인가요

①30년의 끝 ②양들의 침묵

새(NEW)

거울의 미로

①녹색문명(綠色文明) 시대의 숲 ②새끼 ③재와 유리의 미래

소설답지 않은, 그래서 더 공감하는

이광수, 일본에서 크게 취하다

머릿속에 쌓인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불안과 행운 사이에서

엘리엇 업데이트하기

‘더듬더듬 먼 길’을 가는 시와 번역

경계없는 예술 향한 10년여의 노정

대산창작기금,대산세계문학총서

대학생 아시아 대장정 3차 리더십 캠프 및 아시아프론티어클럽(AFC) 발대식 개최

문학현장

수상작 리뷰-시 부문

글 성민엽 ㅣ 평론가,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1956년생
저서 『지성과 실천』 『문학의 빈곤』 『현대 중국문학의 이해』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산문집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 등

시 부문

성찰과 위안의 리듬

 

오은의 『나는 이름이 있었다』는 요즈음 젊은 시인들의 언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를, 전형적인 예가 아니라 다양함 중의 한 개성적인 예 로서 보여준다. 전형적이지는 않고 개성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래서 다양한 전체를 더욱 강력하게 상기시켜 준다.

오은 시의 개성은 무엇보다도 먼저 언어유희에 있다. 언어유희에서 가 장 많이 사용되는 방법은 동음이의어이지만 한자의 파자, 역(逆) 두문 자, 띄어쓰기의 조작 등 다른 방법들도 있다. 언어유희는 개그, 만화, 랩 등 대중문화의 여러 장르에서 애용되고 대중들도 일상생활에서 흔히 구 사하므로 결코 낯선 것이 아니며 오히려 너무 친숙해서 놀라움이나 즐 거움을 주기보다는 그 반대인 경우가 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시에서 언어유희가 시적 성공과 연결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다.
오은의 언어유희는 전면적이며 극단적이다. 언어유희를 끝까지 밀고 나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나를 시험해본다는 듯이. 이에 대한 독자의 반 응 중 가장 많이 예상되는 것은 가볍다는 것이고, 그래서 평가가 부정 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것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거운 것이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이 아닌 것과 똑같다. 가벼운 것도, 무거운 것도,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것도 각각 다 나름의 특성 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가벼움이고 어떤 무거움이냐이다.
새 시집 『나는 이름이 있었다』에서 오은의 언어유희는 전작들에 비해 어느 정도 절제되고 있다.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오은의 언어유희는 결코 가볍기만 한 것도 아니다. 거기에 실린 것, 실렸다기보다는 그것과 결합된 것은 결코 가볍지 않은 성찰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의 삶에 대한 성찰. 그 삶은 동시대성의 각종 세목들로 채워진 삶이 고, 그 세목들은 양가성 내지 이율배반성을 내용으로 하는 세목이고, 그것들을 깊이 인식하는 시적 자아가 있다. 이 자아의 근원 정서는 우울이다. 새 시집에서는 언어유희가 다소 절제되면서 우울 정서 가 한층 더 돌출된다.
이 우울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살피는 일은 간단한 일이 아니지만, 줄여 말하면, 동시대의 인간 삶 의 조건의 변화와 그 변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인간 자체의 변화(포스트휴먼이니 트랜스휴먼이니 하 는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비관적인 것에 가까운)가 그와 무관하지 않은 듯하다. 자아의 외부 에도 있고 내부에도 있는 그 변화를 응시하는 우울한 자아는 언어유희를 통해 자신의 성찰을 표현한 다. 동시에 그 역도 성립한다. 그는 언어유희를 통해 그 변화를 성찰한다. 그렇다면 이 유희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고, 더 이상 유희에 그치지 않고 탐구가 된다.
「사람」으로 시작해서 「궁리하는 사람」, 「바람직한 사람」 등의 「……하는 사람」을 거쳐 다시 「사람」으 로 끝나는 32편의 시의 배열과 부록으로 덧붙인 2편의 시 같은 산문, 혹은 산문 같은 시들은 그리하 여 언어유희가 이룬 보기 드문 시적 성공을 보여준다. 그중 부록으로 실린 「물방울 효과」는 이 우울한 자아의 모습을 독자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리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인용이 너무 없었으니 이 대목은 직접 인용해 보겠다.

물방울 한 점에 대해 생각한다. 바다 위에 떨어진 한 점의 물방울에 대해. 그 물방울은 너무도 견고해 서 결코 바닷물과 섞이지 않는다. 바다의 일부분이 되길 거부한다. 물방울은 사실 그 어디에도 속할 생 각이 없다. 끝끝내 자기 자신으로 남길 원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특기할 것은 오은 시의 리듬이다. 우울한 자아의 성찰과 언어유희의 결합이 생성시키는 것 전체에 하나의 이름을 붙인다면, 이 경우에는 리듬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낡은 말로 하자면 내용과 형태를 다 포괄하고 있는 리듬. 이 리듬이 성찰의 리듬이면서 동시에 위안의 리듬이라 는 사실. 독자가 이 리듬을 느끼며 위안을 받듯이 시인도 실은 위안 받기 위해 시를 쓴 것이 아닐까.
다만 하나 걱정이 되는 것은 이 언어유희와 이 리듬이 한국어 아닌 다른 언어로 잘 번역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