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탄실이와 주영이

라다크, 네 눈물은 신의 발등 위에 떨어질 거야

한 아웃사이더의, 이야기 만들기에 대한 홀림

‘한 조각 꽃잎이 져도 봄빛이 깎이’는 것을 읽어내는 것이 문학

특집을 기획하며 ①고양이 사냥의 추억 ②최초의 반려묘 까맹이부터 이백 살 사이보그 고양이까지 ③펫은 실전이다 ④해방촌의 반려종들을 위하여

텍스트에 대한 경의

자파(自派)의 탄생

한 사람이 곧 하나의 우주이다

『반노』는 ‘인간’을 지키자는 처절한 투쟁기였다

하루 2천640번 금형을 드나든 손의 기록

아름다움에 다다르려는 맹렬한 노력

홍진에 묻힌 분내……

추운 날의 벗, 세한삼우(歲寒三友)

노을바다의 장엄

양요리루 의자에서 커피를 압음하니 문명개화 이 아닌가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리뷰-시 부문 수상작 리뷰-소설부문 수상작 리뷰-번역부문

얇아지는 장편, 환영할 일인가

①소각,저작 ②외경,당신은 시를 쓰는 사람인가요

①30년의 끝 ②양들의 침묵

새(NEW)

거울의 미로

①녹색문명(綠色文明) 시대의 숲 ②새끼 ③재와 유리의 미래

소설답지 않은, 그래서 더 공감하는

이광수, 일본에서 크게 취하다

머릿속에 쌓인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불안과 행운 사이에서

엘리엇 업데이트하기

‘더듬더듬 먼 길’을 가는 시와 번역

경계없는 예술 향한 10년여의 노정

대산창작기금,대산세계문학총서

대학생 아시아 대장정 3차 리더십 캠프 및 아시아프론티어클럽(AFC) 발대식 개최

명작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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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S. 엘리엇 『사중주 네 편』

글 윤혜준 ㅣ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962년생
역서 『올리버 트위스트』 『로빈슨 크루소』 『주석달린 크리스마스 캐럴』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존 니컬슨』 등


대한민국의 대표 검색 사이트 ‘네이버’나 ‘다음’에서 T. S. 엘리엇 (Thomas Stearns Eliot, 1888~1965)을 찾아보면, 엘리엇은 ‘『황무 지』로 유명하다’ 또는 엘리엇의 ‘주요 저서는 『황무지』이다’ 등의 표현 과 마주친다. 교보문고 인터넷 서점에서 엘리엇을 검색하면, 황동규 역 『황무지』가 ‘인기순’이나 ‘판매량’에서 늘 수위를 차지한다. 일반 독 자가 이제껏 한국어로 엘리엇을 만나는 창구는 이 『황무지』 번역뿐이 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엘리엇이 『황무지(The Waste Land)』를 발표한 해는 1922년으로, 그의 나이 34세 때였다. 그 후로 엘리엇은 40여년을 더 살았을 뿐더 러 『황무지』와는 그 형태나 내용이 사뭇 다른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 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1948년이다. 『황무지』가 태어난 지 26년이 지난 시점이다. 이 긴 세월의 간극이 그가 받은 상이 ‘『황 무지』로 유명한’ 작가에게 준 것은 아님을 말해준다. 2차 대전 후 폐 허를 복구하고 또한 자유민주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의 전세계적 대 결구도가 형성되었던 시대에 스웨덴 한림원은 엘리엇에게 이 영예를 수여했다. 그 수상의 근거는 1차 대전 후의 정신적 황폐함을 묘사한 『황무지』의 업적이 아니라 『사중주 네 편(Four Quartets)』이었다.
1936년에 발표된 첫 ‘사중주’ 『번트 노튼』 이후, 2차 대전 중에 3편 의 ‘사중주’를 더 써서 개별적으로 발표한 후, 아직 전쟁이 끝나기 전 인 1944년에 한 권으로 『사중주 네 편』이 출간되었다. 이제 이 작품의 원작이 갖고 있는 본모습을 전달하려 시도한 번역이 나왔으니, 엘리엇은 ‘『황무지』로 유명하지만 『사중주 네 편』으로 세계적 문 호로 인정받은 시인’으로 엘리엇에 대한 인식을 업데이트할 때가 되었다.
『황무지』의 작가 엘리엇은 본인의 학식과 예술적 역량을 맘껏 과시하므로 독자들을 어리둥절하 게 하는 걸 즐기는 ‘앙팡 테리블’이다. 그 실험은 먹혔고 그는 즉시 명성을 획득했다. 반면에 『사중주 네 편』의 작가 엘리엇은 본인의 학식과 역량을 녹이고 정제하여 독자들을 위로하고 가르치는 따듯 한 상담 교사이다. 『황무지』의 시작 부분은 부활과 봄의 계절 4월에 아무런 생명이나 구원이 없음 을 선언한다. 『황무지』의 마지막 부분은 알쏭달쏭한 외국어를 원문 그대로 조합해 놓은 채 마무리 한다. 독자는 『황무지』를 다 읽고 나면 그냥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질문하게 된다. ‘이 작가가 대단한 사람 같기는 한데,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반면에 『사중주 네 편』은 일단 『황무지』처럼 독자의 정신을 빼놓거나 주눅 들게 하지 않는다. 『황 무지』와 달리 『사중주 네 편』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고 있고, 할 말이 있는 시들이다. 첫 ‘사중 주’인 『번트 노튼』은 과거, 현재, 미래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삼위일체’임을 선언한다. 두 번째 ‘사 중주’ 『이스트 코커』는 “내 시작에 내 끝이” 있다는 말로 시작한다. 시간이 그렇듯 단절돼 있지 않 기에 여전히 구원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과거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고 미래는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일 수 있음을. 세 번째 ‘사중주’ 『드라이 샐베이지스』는 파시즘 진영과의 전 쟁을 벌이던 영국과 미국 사회 독자들에게 대의를 지키기 위한 자기희생의 가치를 확인해준다. 독 일군의 폭격으로 불바다가 된 런던을 배경으로 삼은 마지막 ‘사중주’ 『리틀 기딩』은 전쟁과 파괴의 불에 오순절 성령강림의 불을 대응시킨다.
어떻게 『황무지』와 『사중주 네 편』은 그렇듯 다를 수 있을까? 그 대답은 맥 빠질 정도로 간단하 다. 『황무지』의 작가는 허무주의를 신봉했던 반면, 『사중주 네 편』은 기독교(성공회)를 진지하고도 열정적으로 믿는 기독교 문인이었다. 『사중주 네 편』을 읽는 독자들이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와 최 고의 기독교 문인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1265~1321)를 옮긴이 각주에서 계속 만나 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연유 때문이다. 문학과 ‘종교’(특히 기독교)는 서로 상관이 없거나 아예 대 립적인 편이 옳다는 통설이 넓고 짙게 퍼져있는 환경에서 이 두 번째 엘리엇으로 첫 번째 엘리엇이 과연 업데이트 될지는 번역자도 크게 기대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황무지』 이후의 성숙한 엘리엇 과 만나는 것은 독자들의 문학관과 종교관이 어떠하건, 유익한 경험이 될 것이다.


※ 『사중주 네 편, T. S. 엘리엇의 장시와 한 편의 희곡』은 재단의 외국문학 번역지원을 받아 필자의 번역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세계문학총서>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