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회 대산문학상 시 부문 예심은, 2010년 8월부터 2011년 7월까지 출간된 모든 단행본 시집을 대상으로 하여 진행되었다. 수많은 시집들 가운데 심사위원들은 먼저 우리 시대의 시적 좌표를 여러 모로 빼어나게 보여준 사례들이 많았음에 안도하였다. 그래서 이번 예심은 다양성과 눈높이에서 국내 정상급의 성취를 거둔 시인들의 장(場)이 되기에 족하였다고 심사위원들은 판단하였다. 오로지 작품적 완성도에만 매진해오면서 오롯한 개성적 성취를 보인 시인들을 찾아, 심사위원들은 모두 세 차례 만나 오랜 논의의 과정을 거쳤다. 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심사위원들 사이에 적지 않은 이견(異見)이 제출되었지만, 이는 그야말로 ‘시’에 관한 여러 생각과 감각 그리고 평가의 준거들을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번 대산문학상 예심을 통과한 시집들은 한결 같이 작품적 완결성과 미적 좌표의 품격으로 보아 그 어느 해보다 미더운 성취를 보여주었다고 생각된다. 다양하고 깊이 있는 미적 성취와 가능성으로 이분들의 시집은 대산문학상의 위상을 보여주기에 족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예심의 성격상 본심 위원들의 선택의 폭을 넓혀드리는 취지로, 시집의 완결성 혹은 미적 성취에 가장 중요한 기준을 두면서도, 시인들의 세대나 경향을 다양하게 고려하였다. 최선을 다해 우리 시대 최정점의 성취를 이룬 사례들을 분별해내고자 했으며, 그 결과 최종적으로 총 11종의 시집을 골라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선택에는 상대적 비교가 따른다는 측면에서, 일정한 분량을 취하는 데 따르는 불가피한 배제 작용이 수반되었음을 말씀드린다. 물론 이 시집들 외에도 우리 시대의 시적 수준을 예각적으로 말해주기에 모자람이 없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의 시단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사항들을 고려하면서, 그리고 이 시집들에 쏟아진 최근의 제도적, 비제도적 평가들을 충분하게 감안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논의에 논의를 거듭한 끝에 11종의 시집을 본심에 올리는 데 합의할 수 있었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와 경향의 시인들을 본심 대상으로 선정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시문학의 건강성과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라고 심사위원들은 생각하였다.
예심에서 올라 온 열 한권의 시집은 마치 박람회장에 전시된 신제품들을 보는 듯한 느낌에 젖게 하였다. 유명출판사의 시집들이 골고루 배분되어 있었다. 이것은 한국 시의 다양성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균질화를? 어쨌든 이 평균주의적 현상은 좋은 것인가, 걱정스런 것인가? 본심은 그런 모호성 속에서 출발하였다. 그 어둠 속을 헤집는 이해와 평가의 말들은 뜨거운 소금들처럼 방향 없이 튀었다. 그것들 중 얼마간의 집중성을 보인 것들이 있어 일정한 반점을 이룬 장소들을 찾아, 시인 이름순으로 정리해 보니, 김정환의 『유년의 놉시스』, 신달자의 『종이』, 조정권의 『고요로의 초대』, 최영철의 『찔러본다』를 최종 후보작으로 선정할 수 있었다.
『유년의 시놉시스』는 시인의 전 생애를 역사의 격랑 속에 투영시키려는 의지가 한껏 발휘된 시집이었다. 열정의 도가니이자 “오뇌의 무도”이고 사색의 끝날 수 없는 일기장이었다. 그 영원한 투신을 시인은 매순간 최초의 약속처럼 치르고 있었다. 그의 ‘유년’은 탄생을 넌지시 가리키는 어휘였고, 그렇게 그의 생은 쉴 새 없이 태어나고 있었다. 『종이』는 글 쓰는 행위를 상징적 지표로 삼아 생의 풍경 곳곳에 인장처럼 찍으며 그 의미와 윤리를 묻고 또 물은 행동들의 총화이다. 그 행동들은 선험적인 지침이 없이 생의 장면들에 찍히는 그 순간의 충실성으로 스스로 상징화되고 있었다. 『고요로의 초대』는 삶의 온갖 번잡스러움 뒤에서 문득 열린 적요한 명상의 장소로 독자를 초대하는 시집이었다. 그 명상의 장소에는 수직의 빛기둥이 놓여서 세상의 모든 물상들을 바르비종의 경건함으로 물들인다. 『찔러본다』는 일상의 세목들 하나하나에 눈길을 주면서, 지지한 삶들을 아름답게 묘사하고, 삶의 주변에 마치 조화처럼 놓인 자연들을 끌어당겨 일상의 진흙 속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해서, 삶엔 풍자와 예지가 생기고, 자연엔 활력이 생기는 마술을 연출하고 있었다.
이 화려한 시의 꽃들 중에서도 『종이』의 꽃이 가장 돋보였다. 무엇보다도 시인의 연륜이 더해 갈수록 더욱, 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차라리 비약적으로, 라고 말하는 게 나을 정도의 속도로, 깊어지는 인식과 농밀해지는 감각이, 그 놀라운 진화의 에너지가 독자를 무척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산문학상 심사는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 대산문학상 심사는 예전과는 사뭇 다른,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우선 첫 번째 이유는 한 해 출판된 장편소설의 편수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 작가가 한 해에 장편소설 두 편을 발간하는 사례도 두 건이나 되었다. 단지 양적 증가만이 문제가 아니라, 질적으로도 뛰어난 소설들이 많아서 실제로 예심위원들이 읽어야 할 작품의 분량이 매우 많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장편소설의 급격한 증가가 오히려 소설의 질적 하락을 가져왔다며 개탄하는 분위기였지만 올해는 확실히 이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예심위원의 말처럼 이번 심사 때문에 몸은 힘들었지만 한국문학의 저력을 새삼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두 번째 이유는 대개의 문학상 심사에서 그러하듯이, 이번 대산문학상 심사 또한 심사위원들 간의 견해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 본심작 선정에 다소 애를 먹었다. 이 말은 예심위원들 각자가 자기만의 문학적 견해를 드러내고 그에 비추어 옹호할 만한 작품들이 꽤 있었다는 뜻이며 그만큼 장편소설이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는 꽤 지지할 만한 변화다. 왜냐하면 문학적 스펙트럼의 다양성은 문학 독자들에게 작품 선택의 폭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그만큼 문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가능성을 더 많이 열어주기 때문이다.
이런 두 가지 이유로 이번 예심에서는 본심의 심사대상작으로 지난해보다 두 편 많은 총 열 편의 작품을 선정하였다. 그 작품들은 바로 고종석의 『독고준』, 김애란의 『두근두근 내 인생』, 김이설의 『환영』, 윤성희의 『구경꾼들』, 은희경의 『소년을 위로해줘』,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정유정의 『7년의 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천운영의 『생강』,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이하 가나다순) 들이다.
본심작으로 선정된 열 편의 소설은 문단 내 경력은 물론 문학적 성향, 지지하는 독자층이 서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작품들이다. 특히 오랜만에 나란히 장편소설을 내고 문단의 중견작가로서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임철우, 최인호의 작품은 심사위원들 사이에 아무런 이견 없이 처음부터 만장일치로 선정되었다. 조해진의 『로기완을 만났다』 또한 탈북자의 흔적을 찾아가는 주인공의 여정을 사뭇 진지하면서도 단정하게 다루고 있어서 심사위원들 모두 옹호한 작품이었다. 김이설의 『환영』은 이야기의 진행이 다소 거칠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가족의 생계를 위해 매춘을 선택한 30대 주부의 현실을 저돌적으로 힘있게 그린 것에 큰 점수를 주었다. 윤성희의 『구경꾼들』은 작가 특유의 단편소설 미학을 장편소설에 그대로 연장해서 적용한 것에 대해서는 다소들 불만이었지만 역시 ‘윤성희식 스타일’이 주는 매력을 거부하기는 어려웠다. 천운영과 은희경, 고종석의 작품에 대해서는 심사위원들 간에 견해차가 뚜렷했지만 오랜 문학적 내공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본심작으로 선정하였다. 가장 문제적인 작품은 정유정의 『7년의 밤』이었다. 작가의 치밀한 묘사력이나 빈틈없는 구성력에는 모두 동감했지만 결말의 작위성과 개연성 없음에 대해서는 많은 말들이 오고갔다. 결국 대중적 지지를 받는 작품임에도 작가 특유의 문학적 개성과 오기를 담아냈다는 점에서 본심에 올리게 되었다. 이외에도 충분히 본심에 올릴 만한 작품들이 많았음을 밝혀둔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 작품들을 일일이 거론하기는 어렵겠지만 올 여름 내내 예심위원들을 지치게도 즐겁게도 해 준 그 작품들에 박수를 보낸다.
예심에서 올라온 작품은 모두 10편이었다. 이처럼 본심에서 읽어야 할 작품 수가 늘어난 것은 짐작컨대 예심위원들이 “심사위원들간의 견해차가 뚜렷하게 드러나 본심작 선정에 다소 애를 먹었다”고 밝히고 있는 것처럼 좋은 소설에 대한 생각이 서로 달라서였을 것이다. 또 장편소설이 양적으로 엄청나게 늘어나는 추세가 일정한 수준에 도달한 엇비슷한 작품은 늘어나게 만들었지만 그런 추세가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현실도 작용했을 것이다.
홍기삼 위원장을 필두로 한 박범신, 강석경, 최인석, 홍정선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각각의 작품에 대한 어느 정도의 견해차에도 불구하고 예심위원들이 고백한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았다. 그것은 홍기삼 위원장이 특유의 민주적 포용력을 발휘한 까닭이기도 했고, 위원 모두가 자신의 생각을 기탄없이 개진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소중하게 여긴 까닭이기도 했다. 그래서 2개월여에 걸쳐 가진 세 차례의 회의는 늘 화기애애하고 순조로웠다.
심사위원들이 수상자를 결정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고심한 작품은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 김이설의 『환영』 세 편이었다. 그런데 이 세 편의 작품은 각각 무시하기 어려운 미덕과 문제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어서 선뜻 한 작품을 선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간략히 그 점을 언급하면 이렇다. 최인호의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그가 오랫동안 몰두한 역사소설, 대하소설을 벗어나 우리를 경탄하게 만들었던 초기 소설의 세계로 돌아온 작품이란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지만 『타인의 방』에서 보여준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어서 심사위원들을 망설이게 만들었다. 또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는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 보기 어려운 진정성과 독자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드는 특유의 서정적 서사성을 가지고 있지만 정신대 이야기가 지나치게 길어져서 소설적 균형을 위태롭게 한다는 데 심사위원들 다수가 의견을 함께했다. 그리고 김이설의 『환영』은 실존적 문제에 지나치게 매몰된 젊은 작가들의 한계를 벗어나 속도감 있는 문체로 한 개인을 나락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굴레의 모습을 그렸다는 점에서는 신선하지만, 타락의 과정을 밟아가는 인물을 형상화하는 방식이 지나치게 단선적이어서 심사위원들의 선택을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은 몇 차례의 토론을 거쳐 임철우의 『이별하는 골짜기』를 수상작으로 결정한 후 이 결과를 즐겁게 받아들였다. 임철우의 작품이 보여주는 글쓰기의 진정성은 요즘처럼 소설이 양산되는 시절에 작가가 소중하게 생각해야할 가치라는 점에 심사위원 모두가 생각을 같이하면서.
이번 대산문학상 평론 부분 심사는 모두 다섯 명의 심사위원에 의해 단심제로 수행되었다. 해당 기간 동안 한국 평론문학을 대표할 만한 성과물로서 현재의 한국문학이 담고 있는 개성과 시대정신을 섬세하게 드러내고 평가하고 있는가의 여부에 심사기준을 두었다.
1차 독회를 통해 우선 대상 평론집을 수합하고 이를 검토하면서 각 심사위원들이 2-3편씩의 평론집을 추천하도록 했다. 두 달여의 검토과정을 거친 후, 모두 7편의 평론집을 심사 대상으로 선별할 수 있었다. 김욱동의 「적색에서 녹색으로」, 문흥술의 「언어의 그늘」, 염무웅의 「문학과 시대현실」, 오창은의 「모욕당한 자들의 사유」, 이숭원의 「시 속으로」, 정효구의 「일심의 시학 도심의 시학」, 최현식의 「시는 매일매일」 등의 평론집이 그것이다.
2차 독회 과정에서 심사위원들 모두 이들 일곱 분의 평론집에 대해 논평한 후, 의견을 조율하여 수합했다. 대부분 의미 있는 평론집들이라는 점에서는 이의가 없었으나 다음 몇 가지 점이 심사과정에서 제기되었다. 우선 다양한 최근 경향을 포괄하고 있느냐의 여부였다. 어느 한 주제나 영역으로 제한되어 있다면 현재의 역동적인 문학의 흐름을 진단하기에는 다소 미흡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는 이러한 동시대적인 첨단성을 두루 포괄하였다 하더라도 평론의 방법이나 발휘되는 안목이 섬세하면서도 엄밀한가의 여부였다. 이 입장에서 몇 평론집들이, 의욕과 패기가 돋보이지만 비평 밀도가 떨어지거나, 다양한 경향을 검토했지만 경험적인 안목의 나열에 그쳐 방법론적인 시각이 다소 결여되어 있다고 평가되었다. 셋째로는 문학비평이 문학 작품 자체 보다는 어느 특정 사상의 소재로 포섭되는 경우 발생하게 되는 평론의 주관성을 문제로 삼았다. 물론 한국문학 비평이 한국문학에 고유한 문학사상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하겠으나, 설득력 있는 분석과정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주관적인 사상의 표백으로 될 위험성도 적지 않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이러한 토론 과정을 거쳐 염무웅의 「문학과 시대현실」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비평의 동시대성이 다소 떨어지지 않는가라는 지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평론집이 담고 있는 문학의 ‘현장성’이 현재 문학이 당면하고 있는 여러 층위의 문제의식을 포괄적으로 아우르고 있다는 점은 심사위원 모두 동의하였다.
다섯 명의 심사위원들이 1차 심사에서 추려서 2차 심사에 회부한 작품들은 김선영/베르툴리스의 「시인」(이문열), 하이디 강/안소현의「칼의 노래」(김훈), 양한주/하이너 펠트호프의 「검은 꽃」(김영하), 자보롭스키의 「순간의 꽃」(고은), 엘케 골헤르트-정/정형강의 「호질 外」(박지원) 등 다섯 편의 독일어 번역 작품들이었다.
전반적으로 보건대, 이 다섯 편의 번역작품들은 정말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좋은 번역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각 심사위원이 각 번역작품에 대한 의견을 발표하고, 번역의 가독성, 원작의 문화적 가치 및 대표성, 도착어 현지의 반응 및 기대되는 효과 등을 감안한 종합적 평가를 내리도록 하고, 거기에 대해 다른 심사위원들이 질의를 하거나 찬의 또는 반론을 제기하는 방식으로 진행을 한 다음, 심사위원들끼리 의견을 좁혀 보고자 시도하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의견과 평가가 워낙 팽팽하게 맞서는 통에 결국 표결을 하기로 하고 최우수작품에 5점을 주고 그 다음 작품에 4점을 주는 방식으로 투표를 했다. 그 결과, 선시의 중요한 포인트를 번역에서 깜빡 놓친 경우가 더러 있는 자보롭스키의 「순간의 꽃」과, 번역의 원전을 밝히지 않았고, 「시경」 등 동양고전의 책명을 한국어 발음으로 그냥 음역해 놓는 등 경미한 실수가 노정된 골헤르트-정/정현강의 「호질 外」가 먼저 논외로 처지게 되었고, 「칼의 노래」, 「검은 꽃」, 「시인」 등 3편이 남게 되었다.
이 3편 중 1편을 가리는 작업은 정말 어려웠다. 심사위원회의 논의과정을 줄여서 간단히 말하자면, 3편 다 수상작으로 선정해도 좋을 것 같았던 것이 토의가 점점 깊어져 선정이 어려워지자, 갑자기 3편 모두 수상작으로서는 다소 미흡할 것 같기도 했다.
우선, 「검은 꽃」은 잘 읽히는 번역이지만, 원작의 후반부 구성 및 결말 부분에 다소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민족의 수난사를 과연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인가 하는 데에도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다소 엇갈렸다. 다른 좋은 작품이 있는데, 하필이면 원작에 다소 문제가 엿보이는 이런 번역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 것이냐 하는 원작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시인」은 훌륭한 번역이긴 하지만, 독일어 번역에 앞선 한국어 번역에서 “달포 뒤”가 “2주 뒤”로 옮겨지는 등 ‘밑그림’이 잘못 그려진 경우가 여러 건 드러났으며, 김삿갓의 시 번역에서는 역시 그 묘미를 전달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평으로 나왔다. 「칼의 노래」는 원작이 비교적 잘 전달된 훌륭한 번역이었으나 “에디치온 델타”라는 독일출판사 자체가 오자를 많이 내고 있으며, 레이 아웃 등에서도 출판사로서의 성의를 다하지 않은 감을 지울 수 없었다.
심사위원들이 각기 자신이 지적한 결점이야 말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하므로 부득이 표결을 해서 한 작품을 일단 정리하고 두 작품까지라도 일단 줄이고자 했다. 그 결과, 「검은 꽃」이 1표, 다른 두 작품들이 각각 2표를 얻어 「시인」과「칼의 노래」가 최종 토의에 부쳐지게 되었다. 다시 토의를 계속해 보았으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도 합의가 되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세 번째 표결을 결행하게 되었다. 집표를 해 보니, 「칼의 노래」가 3표, 「시인」이 2표였다. 드디어 하이디 강/안소현의 「칼의 노래」가 수상작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 심사평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서 다소 거리를 갖고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처음 우리 다섯명의 심사위원들이 토의에 앞서 처음에 공통적으로 말했던 의견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든다. 즉, 이 다섯 편이 - 적어도 그 다음에 남았던 3편은 - 모두 다 수상작이 될 만했던 것 같다.
본심에 올라온 7편의 작품을 검토대상으로 하여 그 중 이시원의 「자라의 호흡법」, 최치언의 「미친극」, 고연옥의 「주인이 오셨다」, 손기호의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4작품을 가지고 2차 심사를 진행하였다.
「자라의 호흡법」은 청년실업, 노숙자문제, 가족의 해체 등 동시대의 여러 문제점을 다루면서 무겁지 않게 극을 풀어가는 솜씨가 돋보였으나 구성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인물들의 동선이 작위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는 3개의 이야기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약점을 극복하지 못했고, 아들의 우울한 상황 설정과 존재가 연극이 갈 길을 끊임없이 방해하는 인상을 남겼다. 감상적인 글쓰기에 변화가 있기를 기대한다. “주인이 오셨다”는 발상과 전개가 참신하고 다문화사회로 변모해가며 생겨나는 한국사회의 잠재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많은 논의가 된 작품이다. 심사위원 다수가 “개성 있는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 희곡”이라는데 동의했다. 그러나 작품 후반부에 극적 구성력과 대사의 리듬과 호흡이 단순해지고 여백이 사라져서 1,2막과는 전혀 다른 연극이 되어버렸다. 안타깝다. 좋은 반죽을 하였으나 발효가 덜 되어 새로운 빵의 탄생을 잠시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최종심으로 거론된 작품은 최치언의 「미친극」이다. 「미친극」은 연극이 연극의 소재가 되어 내용과 형식이 상호보완적으로 치밀하게 구성된 작품이다. 거울이라는 소재를 통해 메타연극의 특성을 잘 보여 주었으며 연극의 유희성을 과시하는 극작술이 돋보이는 것에 공감했다. 하지만 희곡이 연극으로 변하고 연극이 현실로 바뀌는, 계속 반복되는 장면들은 중첩되지 않고 극대화되지 않아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들고 결론이 혼란스럽다는 지적과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극의 구조가, 이 작품의 매력이고 작가의 계산된 아이러니라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사회를 통찰하고 시대의 문학정신이 부족하여 수상작이 되기에 미진하다는 견해를 표명한 분들도 있다. 많은 시간 토의를 했지만 좀처럼 통일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무기명 투표를 실시하기로 하였다. 찬성표가 많았다. 「미친극」을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