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기획특집

「운수 좋은 날」 줄거리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꾼 노릇을 하는 김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첨지는 벌써 오전에만 첫 번에 삼십 전, 둘째 번에 오십 전을 벌고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뻐했다. 그 돈이면 벌써 달포도 넘게 기침으로 쿨룩거리는 아내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 다줄 수 있기 때문이다. 조밥도 굶기를 먹다시피 하는 형편이라 앓는 아내에게 약 한 첩 써보지 못하 였다. 일전에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 좁쌀 한 되와 십 전짜리 나무 한 단을 사다주었더니, 냄비에 대고 끓이다가 채 익지도 않은 것을 허겁지겁 먹다가 체해 병이 더 심해지던 차였다. 아내는 사흘 전부터 설렁탕 국물이 마시고 싶다고 졸랐다. 인제 김첨지는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고 앓는 어미 곁에서 배고 파 보채는 세 살먹이 개똥이에게 죽을 사줄 수도 있다.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관대한 어린 학생 손님을 만나 남대문까지 십리 정도 되는 길을 1월 50전을 받고 태워다 준 것이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다.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자꾸 켕기었다.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내가 이렇게 아픈데!” 이런 말이 잉잉 그의 귀에 울렸다. 재게 놀려야만 쉴 새 없이 자기의 머리에 떠오르는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을 듯이 김첨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집의 광경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려 인제 요행을 바랄 여유도 없었다. 한 걸음 두 걸음 집이 가까워갈수록 그 의 마음조차 괴상하게 누그러웠다. 그는 불행에 다닥치기 전 시간을 얼마쯤이라도 늘리려고 버르적거 렸다. 기적에 가까운 벌이를 하였다는 기쁨을 할 수 있으면 오래 지니고 싶었다. 마침 길가 선술집에 서 그의 친구 치삼이가 나왔다. 김첨지는 이 친구를 만난 게 얼마나 반가운지 몰랐다. 주린 창자는 음 식 맛을 보더니 더욱더욱 비어지며 자꾸자꾸 들이라 하였다. 김첨지는 취중에도 설렁탕을 사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에서는 무시무시한 정적과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어린애의 젖 빠는 소리가 날 뿐이었다. 전에 없이 고함을 치며 허장성세를 부리다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추기가 무딘 김첨지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설렁탕을 한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치며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차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뭇등걸과 같은 느낌이었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 집 같은 환자의 머리를 꺼들어 흔들었다.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똥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신다. 문득 김첨지는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 렸다.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 더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