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글밭단상

②하쿠나 마타타

정혜윤 | CBS라디오 프로듀서
저서 『뜻밖의 좋은 일』 『인생의 일요일들』 등

나에게는 아주 활짝 핀 해바라기가 수놓아진 앞치마가 있다. 사연은 이렇다. 고령에 사는 황명애 씨는 대구 지하철 참사에서 맏딸을 잃었다. 당시 딸은 대학 입학을 앞두 고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던 중이었다. 딸은 열아 홉 살이었다. 사건 소식을 듣고 달려간 황명애 씨는 폴리스라인 앞에서 기절했다. 시신이 지하에서 올라올 때마 다 경찰은 이렇게 발표했다.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그러 다가 나중에는 그냥 한 명, 성별도 없이 그냥 한 명……. 딸을 잃고 그녀는 지하철 참사 가족대책위에서 일을 했 다. 황명애 씨의 친구들이 “너는 딸을 잃고도 그냥 쓰려 져 있기만 할거냐?”며 몸을 가누지도 못하는 그녀를 가 족 대책위로 끌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참사가 난 현장에서 일을 했다. 모두가 잠든 밤. 아무리 슬픈 사람도 서러운 눈을 붙이는 새벽 세 시경, 그녀는 아무도 몰래 지하 사고 현장으로 내려갔다. 온통 그을리고 무너져 내려서 사람이 살 가능성이라곤 전혀 없는 그곳을 그녀는 매일 밤 구역을 정해 샅샅이 뒤졌다. 천장도 바닥도 다 들 춰봤다. 그 어딘가 딸이 쪼그리고 앉아서 그녀를 기다리 고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고 ‘엄마는 날 찾아보지도 않고 벌써 여길 떠날 거야?’라는 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기 때문이었다. 유가족으로서 가장 참담한 일은 딸이 지하철 참사로 죽었음을 엄마가 직접 증명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딸이 받은 아르바이트 월급 명세서, 반지, 목걸이, 가방 같은 소지품의 구매내역. 치과 기록, 마지막 통화내역 등을 대구시에 제출해야했다. 그러나 그녀를 포함한 모든 유가족들이 진심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내 가족은 그날 거기서 죽었습니다”가 아니라 “내 가족은 절대로 그날 거기서 죽지 않았습니다”였다. 황명애 씨는 딸을 치과 기록으로 찾았다. 그녀는 가느다란 손목뼈와 두개골을 받 았다. 손목뼈를 받자 그녀는 즉각 딸을 알아봤다. “아, 이 뼈는 우리 아이 거야!” 그녀는 세상의 모든 엄마가 살아있는 딸을 안듯 뼈들을 안았다. 그러자 그 뼈들은 형체도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그녀는 이렇게 슬픈 마음으로 이제 어떻게 살까? 수없이 스스로에게 물었다. 딸에게도 물었다. “이제 내가 너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그 물음은 입 밖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긴 실어증을 앓았다.

슬픔, 상실, 우울, 고통, 죽고 싶은 마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 딸에 대한 사랑, 미치지 않고 자기 삶을 끝까지 살아내려는 용기, 모든 것을 다 가슴에 넣고 넣어서 그녀는 두 가지 일을 시 작했다. 첫 번째는 다른 재난 참사 현장의 가족들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그녀에게 모든 재난은 자신의 재난을 기억나게 했다. 그녀는 세상의 슬픔에 매번 똑같이 고통 받았다. 그러나 슬픔이야말로 딸에게서 받은 유산이었다. 그녀는 슬픔으로 연대하려고 했다. 그 연대의 내용은 이렇다. ‘내가 겪은 고통을 당신은 겪지 마세요. 나보다는 덜 겪으세요. 내가 아는 모든 것을 나눌게요.’ 그녀가 한 두 번째 일은 고령에 작은 커피숍을 연 것이었다. 그녀는 커피를 내리는 행위를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행위에 깃든 마음을 좋아했다. 그것은 남의 기쁨을 기뻐하는 마음이었다. 커피숍 한구석에는 커다란 나무 테이블을 놓았다. 바느질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누구라도 그 테이블에서 자기 일감 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었다. 마을 주민들은 그 자리에서 각자의 살아온 이야기와 고통과 희망을, 그러니까 삶과 현실을 털어놓고 나누었다. 그 테이블은 각자가 끄집어낸 이야기 속에서 가장 소중 한 것을 지키기로 서로 합의하는 자리였다. 황명애 씨는 그 테이블에서 내가 쓰고 간 모자에 자신 의 이름 이니셜을 오렌지색 실로 수놓아주었다. H ~M ~A 이 세 글자들은 뺨을 스치는 바람의 부 드러움처럼 연결되었다. 슬픔과 파괴적인 상처 사이로 그녀가 낸 삶의 길처럼 말이다. 그녀는 해바 라기 꽃을 좋아했다. 해바라기는 빛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말은 스와힐리 어 ‘하쿠나마타타’였다. 그녀는 고통에도 슬픔에도 포기에도 사로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