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오늘의 화제작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 나태주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

글 고두현 ㅣ 시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963년생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고두현 ㅣ 시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1963년생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1」은 5행 24자의 짧은 시다. 1991년 이후 서울 광화문의 교보생명 본사 건물에 걸린 ‘광화문 글판’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 시가 실린 시집『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최고판매 부수를 기록했다. 그의 시가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누구에게나 쉽게 와 닿는다는 점이다. 시는 의외로 쉽고 가깝고 작은 것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풀꽃·1」은 그가 초등학교 교장 때 아이들에게 한 말을 그대로 옮겨 썼다고 한다.
숲 속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도 한 반씩 돌아가며 수업을 해야 했다. 미술시간을 맡은 어느 날,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풀꽃을 그리자고 졸랐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 아픈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 아빠가 안 계시는 아이,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이….

저마다 사연이 많은 아이들이 풀꽃 앞에 앉아 서투르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 림 같다. 작지만 아름다운 풀꽃을 그리려면 눈을 바짝 갖다 대고 관찰해야 한다. 그렇게 아이 들은 풀꽃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예쁘다고 말한다. 외로운 것 같지만 함께 모여 있는 모습 이 보기 좋다면서 깔깔거린다.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그 모습을 하나 씩 떠올리며 시를 써서 칠판에 적어 놓는다.
이 시의 첫 구절, 첫 표현의 ‘자세히’가 핵심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줄 안다. 그렇게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그런 꽃이 바로 ‘너’다.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도 이 시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은 ‘너도 그렇다’라고 한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들 이 말을 ‘나도 그렇다’고 받아들인다.
「풀꽃·2」도 참 좋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 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두 번째는 위로와 공감 코드를 겸비했다는 점이다. 그가 “시는 투 티치(to teach)도 아니고 투 액션(to action)도 아니고 투 무브(to move)”라고 설명했듯이, 시인이 함께 울어주고 공감하며 동행하자고 손을 건네는 지점에서 독자들은 마음의 문을 연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과 독자는 ‘저녁 때’ ‘힘들 때’ ‘외로울 때’라는 삶의 그늘을 지나 ‘집’ ‘사람’ ‘노 래’라는 따스함의 세계로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된다. 시가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고 울릴 때 독자들은 시의 행간과 함께 울고 웃는다. 시의 근본적인 효용에도 자연스럽게 공감한다.
세 번째는 간결하다는 점이다. 그는 이를 ‘SSEB’로 설명하기도 한다. “심플(Simple), 쇼트 (Short), 이지(Easy), 베이직(Basic)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고 짧은 형식 속에 크고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애쓰지요.”
예를 들어 「묘비명」이라는 시가 그렇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딱 두 줄밖에 안 되지만 인생의 근본 의미를 담고 있다. 자녀들은 무덤 앞에 찾아올 때마다 그 묘비명을 보고 이 렇게 말할 것이다. “보고 싶어서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써놨네. 조금만 참으라고.” 여기서 ‘조금만 참자’는 것은 ‘너도 죽을 것’이라는 생의 한계와 삶의 근본에 대한 각성을 일깨운다.
시인 자신은 “나태주 시의 특징은 별것 아닌 게 특징”이라며 “나는 멀고 크고 위대한 것이 아 니라 사소한 것, 가까운 것, 그러나 중요한 것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모은다”고 얘기한다.
시인이 된 계기도 별것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열여섯 살 때 어떤 여자가 좋아서 연애편지를 쓰다가 시인이 됐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연애편지라고 한다. 살아오면서 그 대상이 다 른 여자로 바뀌고,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지금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가 그의 시라고 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든 세상이든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하고 담백 하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 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시 「사랑에 답함」 전문).
이 시집은 나태주 시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대중이 어떤 시에 끌리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지도 알 수 있다. 이번 시집에 실린 작품들은 인터넷의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며 인기를 끈 것들로 구성돼 있다. 어쩌면 시인이 아니라 독자들이 엮은 시집이라 할 수 있다. 시인과 대중이 시를 매개로 서로의 감성을 주고받는 공감각의 접점이랄까. 그런 점 에서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것’이 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는 시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