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내 글쓰기의 스승

허블

글 박민규 ㅣ 소설가, 1968년생
소설집 『카스테라』 『더블』,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지구 영웅전설』 『누런 강 배 한 척』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등

가끔 밤하늘을 본다. 그게 전부다. 밤하늘을 보는 ‘행위’에 어떤 가 르침, 내지는 깨달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본다, 그게 전부라 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딱히 별을 찾거나 어떤 미지의 빛을 발견하려 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인간의 기준에서 하는 말이지만... 거기엔 대개 아무것도 없다. 다시 말해 검을 현(玄). 천자문의 시작이다. 하늘의 빛은 검다, 어둡다. 그리고 저 글자에는 ‘아득히 멀다’는 속뜻도 담겨 있다. 즉 아득히 멀고,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보는 것이다. 오래오래. 그러나 별, 볼 일 없는 이 행위가 이 세계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스승’ 임을 나는 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있다. 스승은 아득히 멀고, 아무 것도 없으며... 따라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승... 같은 건 없다고 나는 대개 생각한 다. 혹은 그 정도로 아득히 멀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까이 있지 않다. 무슨 아버지,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음악의 아버지란 말이 떠오른다(음악의 어머니도 있었군). 기억이 안 나 그렇지 문학의 아버지도 많을 것이다. 아니, 여하튼 도처에 많 은 스승들이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다시 인간의 기준에 서 한마디 하자면, 인간이 인간을 스승으로 삼는 것은 매우 이상한 짓이다. 인류사를 통틀어 그런 인간은 없다. 인간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고 하물며 배움의 대상은 더더욱 아니다. 깨놓고 말해 등신들끼리 뭘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 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먹고사는 삶의 한 방편이겠지. 그도 아니면 그냥 습관처럼 하는 말일 것이 다. 지치지 않고 진지하게 평생 등신짓을 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라는 직업이다.

가끔 밤하늘을 본다. 그게 전부다. 밤하늘을 보는 ‘행위’에 어떤 가르침, 내지는
깨달음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지만... 본다,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는 등신은 가끔 밤하늘을 본다. 그게 전부다. 1995년 천문학자 로버트 윌리엄은 허 블 망원경으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우주의 어둠을 촬영했다. 수십조 원의 예산을 허공에 쏟아 붓는 미친 짓이었지만, 촬영의 결과는 놀라웠다. 그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망원경이 포착해낸 것은 수천 개의 은하였다. 그리고 2014년, 연구팀은 장장 4개월에 걸친 노출 끝에 촬영한 ‘우주의 어둠 일부’를 드디어 일반에게 공개했다. 그곳엔 만개의 은하가 찍혀 있었고 각각의 은하에는 대략 2천 억 개의 별이... 있다고 추정된다.

글을 쓸수록 보이는 건 인간의, 내지는 인류의 어둠뿐이다. 빛이 보이지 않는 어둠... 도무지 출 구가 보이지 않는 저 어둠... 대체 이딴 것들이 왜 이다지도 모여... 뭣하러, 무엇 하러 집단을 사회 를 민족을 국가를... 그러니 이딴 것들을 이루어 오늘도 내일도... 그나저나 이 지랄발광을 언제까 지 견뎌야 하는지... 또 이따위 것들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하여 이 등신들의 삶을, 생각 을... 감정과 행위, 행적을... 니미 자음과 모음을 섞어 가며 뭣하러... 다시 말해 이 짓거리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생각이 들 때마다


그래서 가끔 밤하늘을 본다. 저 검고, 어둡고, 아득히 먼 것 말고는 붙잡을 것이 없기 때문이 다. 봄인데도 흐리고 바람이 불고... 그래, 더,더,군,다,나 미세먼지가 끼어 더 검고, 어둡고, 아득히 먼 저 어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러나 실은, 저 어둠의 극히 일부에도 수천억 개의 별로 이루 어진 은하가 한 만개 정도... 내가 보지 못할 뿐, 빛나고 있다 생각하면... 외롭고 서러운 이 봄밤 이 심지어 외롭고 서럽지 않을, 정도가 되는 것이다.

하여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어쩌면 인간의 어둠도 저 하늘의 어둠과 같은 것은 아닐까... 미루 어 짐작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바라보고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러니 항하사나 무량수... 역시 나 그레이엄 수, 구골플렉스에 이르는 별들, 내지는 은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저 미세한 먼 지들 너머의 어둠을 바라보며 이 봄날, 저물어 봄밤에 이르러서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바라보고

또 바라보라고 밤하늘은 속삭인다. 수십조 원의 예산이, 허블 망원경이 없다 해도 바라보라 고... 외면치 말고 바라보라고 봄밤은 말한다. 더 검고, 어둡고, 아득히 먼 인간의 어둠이지만... 니 미 자음과 모음을 섞어가며 한 자 한 자 바라보라고... 이 ‘행위’에 어떤 가르침, 내지는 깨달음이 있다고 생각지 않으면서도... 그래서 본다, 하물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는 바라지 도 않는다. 혹은 같은 등신들끼리 바랄 것도 없기 때문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전부의 일부를 보며 하는 생각이다. 믿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