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서시序詩

“내 소설의 장점은 시간을 모험적으로 다루는 것”

「운수 좋은 날」 줄거리 ①죽은 아내와 하룻밤 ②그날의 심증 ③치삼과 소년 ④개똥만 한 사람이 ⑤운수 좋은 날 ⑥휴가

문학교과서와 친일문제, 그 해결점을 찾아서

악당을 구분하는 능력

“신문물의 능동적 수용과 수평적 인간관계가 내 실학정신의 핵심”

읽다 접어둔 책과 막 고백하려는 사랑의 말까지 좋은 건 사라지지 않는다

『여원』 편집장 시절의 좌담회

파도그림, 여름에 즐기는 한기(寒氣)

11미터

운동장에서 펼쳐진 상상의 공동체

①별을 내던지고 전업 시인을 택하다 ②향학열, 반골정신 그리고 북청사람 ③가난과 고독을 동반 삼은 시조의 길

①적당한 사람,정적이 흐른다 ②말을 잇지 못하는,빛은 어둠의 속도

무구

①예술가의 독창성 ②하쿠나 마타타 ③빽

거꾸로 할머니와 바이올리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머리 위로 은총

한 권의 책이 작품 세계의 원형이 되기까지

아시아 시인들이 함께 만든 계간 『시평』의 마지막 가을

뒤죽박죽 나의 데뷔작들

허블

소설은 상상하게 하고, 영화는 선택하게 한다

시는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가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논어와 탈무드

20세기 초 프랑스 여성주의 문학의 고전

시어의 미묘한 의미들 사이에서 주석의 역할을 생각하다

등장인물들이 일본어로 말하게 하는 작업의 즐거움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등

수요낭독공감 6월 행사

이 계절의 문학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글 한소범 ㅣ 한국일보 기자. 1991년생


허무맹랑한 공상?
지금 여기,
가장 핍진한 상상력 'SF'


무수한 신간이 쏟아지고, 하루에도 몇 번씩 순 위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온라인 서점의 종합 베스 트셀러 집계지만, 와중에도 유의미한 이름 하나가 소설 분야 종합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내거는 일이 있었다. 바로 곽재식, 김주영, 김창규 등 한국 주 요 SF 작가들의 단편을 모은 『토피아 단편선』(요다) 이다. 지난 3월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 2권으로 나눠 출간된 이 책은 한국 SF 소설 사상 처음으로 대형 서점 사이트의 소설 부문 종합 베스트셀러 1 위를 차지했고 지금까지 2,000세트(4,000부)가 팔 렸다.
매주 신문사에 도착하는 문학작품은 스무 권 남 짓. 이 중에 꼭 빠지지 않는 것이 ‘SF’다. 이번 한 주 만해도 『제3회 한국과학문학상 수상작품집』(허 블)과 SF 소설 리뷰집인 이유미의 『우주적인 로봇 적인』(봄날의박씨), 지난해 휴고상과 네뷸러상 등 에 최종 노미네이트된 무르 래퍼티의 『식스 웨이크』 (아작), 조이스 캐럴 오츠가 작가 인생 55년 만에 처음 써낸 SF 소설 『위험한 시간 여행』(북레시피) 등 주목할 만한 SF관련 책이 4권이나 도착했다. 출간 종수로만 따지면 시집이나 소설집 같은 이른 바 ‘순문학’과 비등한 수준이다. 한국일보에서는 2 주에 한 번씩 책 소개 면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의 ‘읽어본다, SF’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수요로보나, 공급으로 보나, 더 이상 ‘변방의 문학’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것이 오늘날 한국문학에서 SF의 위치다.

‘Science Fiction’을 ‘공상’ 과학 소설로 번역해왔던 오래된 관행은,
이제 촌스러운 일이 됐다. ‘공상’이라는 말에 내포된 ‘근거 없고,
황당한 상상력’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SF에 덧대는 것이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독자 수요나 출간 종수뿐만 아니다. 오랫동안 순문학이 SF에 비해 더 귀한 대접을 받아올 수 있었던 이유인 주제의식이나 문체 같은 미학적 성취 역시 SF가 뒤처진다고 더 이상 말할 수 없 는 현실이다. 스타일의 파격, 선명한 주제의식, 확장되는 세계관을 무기로 이 시대의 가장 뜨겁 고 민감한 이슈들을 담아내고 있다. SF의 신예 작가를 발굴하는 ‘한국과학문학상’의 이번 수상 작들만 봐도 그렇다. ‘다중인격’이 절대 다수인 사회에서 ‘단일인격’을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차 별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가정을 통해 장애인 차별을 다룬 대상작 「한 번 태어나는 사람들」 부터, 멸망의 시대에 사회적 약자로 전락한 ‘여성’과 ‘개’의 연대를 통해 젠더 폭력을 다룬 「개와 는 같이 살 수 없다」, 하나의 두뇌를 공유하는 왕따 고등학생과 우주 난민 외계인의 공명을 통 해 학교폭력을 이야기하는 「소년 시절」, 한국인의 몸에 갇혀 한국 땅에 살게 된 외계인 캐릭터로 ‘난민’을 표상한 「웬델른」까지.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가장 논쟁적 이슈들을 전복적인 상상력에 버무려 낸다. 때문에 ‘Science Fiction’을 ‘공상’ 과학 소설로 번역해왔던 오래된 관행은, 이제 촌 스러운 일이 됐다. ‘공상’이라는 말에 내포된 ‘근거 없고, 황당한 상상력’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SF 에 덧대는 것이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SF는 왜 오늘날 가장 각광받는 장르가 됐을까? 인공지능의 탄생과 코앞으로 다가온 우주여행 등 과거에는 ‘허무맹랑’하다고만 여겨졌던 일들이 실제 가능해진 것을 본 데다, 스마트 폰과 블록체인 등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과학 기술이 SF 장르에 대한 ‘낯섦’을 덜었다. 지 금의 SF 독자들이 대부분 1990년 이후 출생인 것을 감안할 때, 이미 성장기부터 컴퓨터를 사용

했고 수학이나 영어를 공부하듯 프로그래밍을 배우는 세대에게 SF는 ‘상상 불가능한 우주에서 날아온 이야기’가 더 이상 아닌 것이다. 여기에 문학에 앞서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좀비, 외계인, 로봇 등 인간 아닌 존재의 등장이 빈번하고 또 일상적이게 된 것 역시 낯선 존재에 대한 부담을 없앴다.
출판사들의 성실함도 SF 작품과의 만남을 빈번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국내외의 새로운 작가들을 꾸준히 소개하는 출판사들 의 노력으로 독자는 고전만 붙들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일간지 의 문학·출판 담당 기자라면 매주 얼굴을 보게 되는 SF를 전문으 로 하고있는 아작 출판사의 박동준 마케터는 그 주의 신간을 들고 직접 신문사들을 찾는다. 그 감복할 성실함 때문에라도 한 번 더 들춰보고 조금 더 꼼꼼히 살펴보게 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김보 영의 「얼마나 닮았는가」(한겨레출판), 김성일의 「라만차의 기사」(브릿 G), 김지현(아밀)의 「로드킬」(온우주), 이산화의 「증명된 사실」(황금 가지), 김백상의 『에셔의 손』(허블), 김희선의『무한의 책』(현대문학), 홍준영의 『이방인의 성』(멘토프레스) 등 최근 열린 한국 SF 어워드 에서 수상한 작품들이 출간된 곳의 이름만 들여다봐도 지금 여기, SF 작품과 작가 발굴에 힘쓰는 출판사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얼마 전 국내 최초 SF 평론집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를 낸 복 도훈 평론가는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SF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좋은 작품’과 ‘좋지 않은 작품’ 만 구별될 뿐 SF와 순문학 사이 장르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 자체 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SF를 이른바 ‘순문학’ 에 비할 바가 못 되고 허무맹랑한 상상력이라고 치부해왔던 문단 도, 자신들만의 기원과 계보를 갖고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문학의 하위 범주로 설정되기를 거부해왔던 SF계도, 언제까지 서로를 배 타적으로 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장르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만나서, 난상토론도 해보고, 비평도 쏟아내고, 대학 등 아카데미에 서도 SF를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한국일보문학상에 SF 작품이 당선될 날도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