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대산칼럼
전체를 조망하는 시선이나 새로운 세계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가진 사람이 써야 하는 글이 있다. 가령 선언문이 그런 류의 글이다. 그러나 어쩌다 보면 가까운 과거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현실의 윤곽도 제대로 알 수 없어 더듬거리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앞으로 나갈 바에 대해 써야 할 일이 생긴다. 지난 해 나는 한국작가회의의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젊은 작가 선언문을 쓰게 되었다. 11월에 있을 기념식에서 낭송할 글을 봄에 요청받았으니 원고를 쓸 시간은 충분했다. 그렇지만 40년을 지탱해 온 문학단체에 소속된 작가로서 희망찬 선언을 할 대담한 용기와 지적 감성을 다듬기에 한 번의 여름과 한 번의 가을은 너무 짧았다. 어쨌든 글을 써야 했으므로 나는 다른 대담한 정신의 도움을 좀 받기로 했다. 멋진 선언문을 모아놓은 책들을 뒤적여 보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러다 참조와 모방 사이의 모호한 지대를 오가는 동안 선언문을 작성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정작 기대하지 않았던 옛사람의 문장이었다.
“군자에게는 일생의 근심은 있으나,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맹자』 「이루·하」). 맹자가 말하는 일생의 근심은 ‘우환의식’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다. 동아시아인의 우환의식에 대해 서복관(徐復觀)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썼다. “우환(憂患)의식은 원시종교의 동기인 공포나 절망과는 다르다. 일반인들은 항상 공포와 절망 가운데에서 자기가 지나치게 왜소하다고 느끼면서 자기의 책임을 방기한다. (……) ‘우환’과 공포·절망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환의 심리가 형성되는 데에는 당사자의 길흉성패(吉凶成敗)에 대한 심사숙고로부터 멀리 내다보는 태도가 있다는 것이다. 멀리 내다봄을 통해서 길흉성패와 당사자의 행위의 밀접한 관계가 드러나고 당사자가 행위하면서 짊어져야 할 책임도 드러난다. 우환은 바로 이러한 책임감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자기 힘으로 곤란을 돌파하려고 하나 아직 돌파하지 못했을 때의 심리상태이다”(『중국인성론사』).
이천년 넘게 전해져온 맹자의 문장에서는 문학의 몽상을 비웃는 이들에 맞서는 문학의 근본적인 힘이 느껴진다. 문학이 몽상적이라고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매일매일에 대해 걱정하는 대신 먼 미래를 근심한다는 데 있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상상력의 작동을 독단적인 유용성의 법칙에 따라서만 허용할 뿐”인 세태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물려받는 그 많은 불운들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가장 위대한 자유가 우리에게 남겨졌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 말을 통해 그가 문학 속에 보존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일생의 근심을 가질 자유였을 것이다. 여전히 문학은 매일의 걱정 속에서 당장의 실용적 필요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비현실적이며 걱정을 모르는 순진한 정신일 뿐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근심은 문학을 이루는 근본감정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근심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닥쳐올 곤경에 그저 떨고 있으면 될 일이다. 근심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가능한 감정이다. 그 점에서 근심은 매우 적극적인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당장 해결할 수 있다면 그냥 해결책을 찾아서 실행하면 된다. 근심하는 정신은 운명의 힘에 굴복하지도 임시방편의 실용주의로 도피하지도 않는다. 얄팍한 현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장기적 안목으로 현실의 문제들과 대결하는 것이 문학의 현실감각이다.
세월호 인양 결정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인양에 들어가는 비용을 이유로 들며 실용적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문학적이다. 문학적 정신이 물정을 모르고 몽상적이어서가 아니다. 그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하루아침의 걱정을 덜어줄지는 몰라도 시대의 우환을 해결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무익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배가 아니라 시대의 우환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일생의 근심을 끌어올리는 시간
글 진은영 ㅣ 시인,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교수. 《대산문화》 편집자문위원. 1970년생
시집 『일곱개의 단어로 된 사전』 『훔쳐가는 노래』 『우리는 매일매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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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에게는 일생의 근심은 있으나, 하루아침의 걱정은 없다.(君子有終身之憂, 無一朝之患也)”(『맹자』 「이루·하」). 맹자가 말하는 일생의 근심은 ‘우환의식’이라는 말로도 표현될 수 있다. 동아시아인의 우환의식에 대해 서복관(徐復觀)이라는 학자는 이렇게 썼다. “우환(憂患)의식은 원시종교의 동기인 공포나 절망과는 다르다. 일반인들은 항상 공포와 절망 가운데에서 자기가 지나치게 왜소하다고 느끼면서 자기의 책임을 방기한다. (……) ‘우환’과 공포·절망이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우환의 심리가 형성되는 데에는 당사자의 길흉성패(吉凶成敗)에 대한 심사숙고로부터 멀리 내다보는 태도가 있다는 것이다. 멀리 내다봄을 통해서 길흉성패와 당사자의 행위의 밀접한 관계가 드러나고 당사자가 행위하면서 짊어져야 할 책임도 드러난다. 우환은 바로 이러한 책임감으로부터 오는 것으로 자기 힘으로 곤란을 돌파하려고 하나 아직 돌파하지 못했을 때의 심리상태이다”(『중국인성론사』).
이천년 넘게 전해져온 맹자의 문장에서는 문학의 몽상을 비웃는 이들에 맞서는 문학의 근본적인 힘이 느껴진다. 문학이 몽상적이라고 비난받는 가장 큰 이유는 매일매일에 대해 걱정하는 대신 먼 미래를 근심한다는 데 있다. 1924년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앙드레 브르통은 “상상력의 작동을 독단적인 유용성의 법칙에 따라서만 허용할 뿐”인 세태를 비판하면서 “우리가 물려받는 그 많은 불운들에도 불구하고, 정신의 가장 위대한 자유가 우리에게 남겨졌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외친다. 이 말을 통해 그가 문학 속에 보존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일생의 근심을 가질 자유였을 것이다. 여전히 문학은 매일의 걱정 속에서 당장의 실용적 필요성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비현실적이며 걱정을 모르는 순진한 정신일 뿐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하지만 근심은 문학을 이루는 근본감정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은 근심할 필요가 없다. 근심한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닥쳐올 곤경에 그저 떨고 있으면 될 일이다. 근심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 가능한 감정이다. 그 점에서 근심은 매우 적극적인 감정이지만 그렇다고 당장에 해결될 수 있는 어려움에 대한 것은 아니다. 당장 해결할 수 있다면 그냥 해결책을 찾아서 실행하면 된다. 근심하는 정신은 운명의 힘에 굴복하지도 임시방편의 실용주의로 도피하지도 않는다. 얄팍한 현실주의가 아니라 현실에 대한 장기적 안목으로 현실의 문제들과 대결하는 것이 문학의 현실감각이다.
세월호 인양 결정을 둘러싸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인양에 들어가는 비용을 이유로 들며 실용적 관점에서 생각해야만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매우 비문학적이다. 문학적 정신이 물정을 모르고 몽상적이어서가 아니다. 그 비용을 절약하는 것이 하루아침의 걱정을 덜어줄지는 몰라도 시대의 우환을 해결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무익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배가 아니라 시대의 우환을 밝은 곳으로 끌어올리는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