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시1
위선환 ㅣ 시인, 1941년생
시집 『새떼를 베끼다』 『두근거리다』 『수평을 가리키다』 『탐진강』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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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정면은 정직하다. 사물을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인의, 그 사물을 적어내는 언어가 정직한 이유이다. 사물을 정면에서 대면한 시인과 시인의 정면에 있는 사물의 사이에서 빛이 일 듯, 정면을 적어내는 언어는 빛이다. 어떤 일치는 나를 숨 막히게 한다. 절대와 시간과 여기의 일치, 극한과 극단과 긴장의 일치, 그리고 사물과 언어와 주체의 일치…… 마침내 시는 죽음일 수 있다. 죽음을 말할 때에 높이는 사리지고 깊이는 묻힌다. 소멸한 것의 윤곽이, 소멸한 다음의 언저리가 남는다. 언저리의 먼 바깥에 죽음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다.
저녁에
저녁을 만졌다 어슬하고 긴 음의 조성과 느리고 거뭇한 음영을
만졌다
목덜미에 얹히는 어둑한 명도를, 눈 아래에 깔리는 땅거미의 두
께를 만졌다
멈칫 또 멈칫 다가오는 기척을, 지척에 이르러서 숨죽는 낌새를
만졌다
눈그늘이 어둡고 젖어서 수줍던, 자주 울고 숙이던, 미안한 옛
기억을 만졌다
눈은 뜨고 죽은 사람의, 뜬 눈의 눈자위를, 바짝 메마른 눈빛
을 만졌다
낮으며 잠기는 지평과 지평에 돋는 불빛과 불빛 아래에 받쳐
든 흰 손을 만졌다
손 뻗치어서
반쪽이 암흑인 얼굴의 까만 쪽을, 검댕이가 묻어나는 광대뼈를
만졌다
놓아두고 나는 몰랐던 다른 손을 들어서 어깨 너머 다른 쪽 식
은 등을 만졌다
더 뻗치어서
등 너머에 서늘한 어림을, 거기보다 먼, 손끝이 시린, 언저리를
만졌다
먼 어디에서 휘고 더욱 먼 어디에서는 굽으며 모퉁이를 돌아간
사람의 궤적을
오래 걸려서 만졌으나
쫓아서 걸어가며 시간의 마디들을 짚었던 손자국도 하나씩 헤
아리며 만졌으나
나를 만지지는 못했다
눈결정
우기에는 귀가 젖었다 빗물 고인 바닥은 무르고 깊었다 발이 빠
졌다
건기에 목이 말랐고 발등이 야위었다 흙먼지 날리는 땅을 가로
질렀다
대지가 식으면서 벌써 춥다 숨은 것 희미한 것 사라진 것들이
보인다
날개는 부러졌고 절름거리며 겨우 걸어온 새가 발목 꺾이어 넘
어진다
눈이 밝은 사람이다 무릎 꺾었고 굽히더니 눈 조각 하나 집어
서 든다
눈결정에 새가 디디었던 발톱 자국이 찍히어 있다 눈은 다시 내
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