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시의 메아리를 걷다

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일생의 근심을 끌어올리는 시간

아는 진실과 모르는 진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투명 언론인의 정체

바로 당신이 아Q다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우연’과 ‘무심함’을 담는 기억의 방부제

여승

소설가, 평론가, 아동문학가, 편집자 김이구

미호 강변에 꽃피운 서원교육에 관한 보고서

바다와 디아스포라의 도시, 부산 광복로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활력 사라진 문단, 해외거장 작품과 외국 대중소설이 메워

‘돈’에 대한 내숭에 던진 돌직구

살아가야 할 자와 죽어가는 자 사이의그 아득한 거리

방물장수와 보부상을 몰아낸 신문·잡지의 광고

《현대문학》 창간 전후

무장해제의 기억들

비를 맞는 개구리 눈빛

세기적 추녀의 연애담에 오버랩된 30년전 한국사회

시대의 갈등과 비극의 붉은 얼룩을 옮기다

왕비와 기사의 애절한 궁정식 사랑

NEW BOOKS

재단소식

창작 후기

비를 맞는 개구리 눈빛

글 최승철 ㅣ 시인. 1970년생
시집 『갑을 시티』『키위 도서관』 등

시인이란, 비를 맞는 개구리 눈빛 같구나. 기쁨은 짧은 순간 스쳐지나가고 고통은 오랫동안 달라붙어 있다. 생각해보면 어떤 삶이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명예스러운 상도 시를 쓰는 사람에게는 시를 쓰는 하나의 관문일 뿐이다. 시인에게 봐야 할 대상이나 시선은 늘 하늘 저편 어딘가를 향해야 했다.

기억은 내 중심적이어서 늘 편향적으로 불우하다. 내 경우에는 더욱 냉소적으로 그 문장들과 가까워졌다. 처음 시를 써야겠다고 작심했던 것은 인간의 한계성에서 기인했다. 인간의 목숨이 백년이 넘지 않기 때문에 나는 죽음 이전의 어떤 절대 불멸에 대해 생각했을 것이다. 영원히 남을 수 있는 단 한 편의 시이거나 소설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다면, 그런 명작을 남길 수 있다면 나라는 인간의 한계성은 극복될 수 있지 않을까. 처음 시작은 그런 순간에서 기인했으나, 얼마나 많이 휘어졌던가. 대학을 다니는 동안, 취직을 하는 동안, 등단을 하는 동안,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수많은 갈등과 고민 속에서 늘 시인이란 길의 운명을 선택했던 사람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현재의 시인이라는 나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불우하고 불명예스럽게도 나는 시인이란 길을 매번 선택해야했던 사람이다.

시집 원고를 묶어 대형 출판사에 보내면 최소한 3달에서 6개월가량 묵묵부답을 참아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아침 메일 한 통을 받는다. 귀하의 원고는 좋으나 우리 출판사와는 맞지 않는다는 식의 메일을 보게 되는 것이다. 다시 준비하는 데까지 또 몇 달이 지나간다. 출판사의 문제인지 시집 원고를 살피는 담당자의 문제인지 혹은 나 자신의 문제인지 다시 고민하게 된다. 시인의 길과 출판사의 길과 담당자의 취지 안에서 다시 시집의 순서가 바꾸거나, 시의 제목이나 몇 개의 문장들을 고민하게 된다. 혹은 그것도 아니다 싶으면 어떤 원고는 모두 빼거나 보충하여 다른 시집 원고를 넣어 보낸다.

한 동안 나는 단 한 편의 좋은 작품이 불멸의 순간으로 기록되기를 갈망했다. 그러나 이 다량 생산의 시대와 환경은 그런 나의 생각과 모순되는 방향으로 자꾸 나가고 있다. 알면서도 나는 계속 이 시인이란 길을 매순간 선택해야 한다.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나는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무엇이 최선인지는 모른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어떤 시집 원고는 나의 취향보다는 분명 세상과 타협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살처럼 내가 보듬어 감내해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은 그에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숨을 쉬고 있는 것도 그와 같지 않은가.

하필이면 나는 이 작은 나라, 그것도 남한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내가 영미 작가였다면 혹은 중국 시인이었다면 더 많은 독자와 소통할 수 있었을 텐데, 다른 작가들이라고해서 왜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는가. 이 천박한 문화의 토양 안에서 얼마나 많은 시인들이 비천하게 자신의 길을 갔었던가. 대한민국의 시인들은 불통이며, 사이코이며, 알코올중독자이며, 정신병자 같은 시만 쓴다는 오해를 종종 받는다.

그러나 자신의 문학적 소양이 천박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독자는 없다. 겨우 몇 개의 시만을 알고 있는 독자들이 한 두 명이었던가. 아직도 1950년대 이전의 시인들 이름만을 맹신하는 독자들이 다수이다. 현대의 시대에는 현대의 시가 있는 줄 모른다. 현대의 시인은 죽어야 겨우 몇 십 년 후에 겨우 독자들을 만나기도 한다. 그 이전까지는 천형 같은 오해와 더불어 생존해내야 한다. 백석 시인의 경우 분단으로 인해 50년 가까이 그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들도 드물었다. 이제 겨우 이용악 시인이나 오장환 시인의 시를 읽는 독자들도 있다. 이 식민자본주의 시대에 그나마 대산문화재단이 올바른 문화의 길에 희미한 등대 역할을 하고 있어 다행이다. 서정주 시인의 문장과는 또 다른 파장을 가진 시의 확장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 시대에 맞는 문장의 조합, 그러니 시인이란, 비를 맞는 개구리 눈빛 같구나. 전선이 흔들린다. 변압기마다 뜨거워진다. 팬터마임의 시대, 그러니 나한테 주어진 임무를 묵묵히 수행해야 할 것이다.

※ 시집 『키위 도서관』은 재단의 대산창작기금을 받아 천년의시작에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