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세기적 추녀의 연애담에 오버랩된 30년전 한국사회
글 황지영 ㅣ 통번역가. 1980년생
공동불역서 『악기들의 도서관』(김중혁 작)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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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못생긴 여자에 대한 연애 소설쯤으로 생각했는데, 소설의 중간 어디선가 나도 모르게 사랑과 인생에 대한 깊은 사색을 하고 있었다. 외모 지상주의와 물질주의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책을 덮은 후에도 나는 한국 사회의 변화와 발전 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문학이지만 문학에 그치지 않는 이 소설은 게다가 프랑스 유학 시절 종종 품곤 했던 고민 하나를 문득 떠올리게 했다. 약 10년 전인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 소설이라 하면, 주로 강점기나 전후 시대의 이야기로, 문학적 의미가 중대한 다소 무거운 줄거리들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소설을 읽어 본 나의 몇몇 프랑스 친구들은 심오하며 비통한 소설의 무게에 종종 압도되어 페이지를 쉽게 넘기기 힘들었다는 솔직한 감상평을 들려주었다. 이를 계기로 나는 문학 작품에는 재미와 감동이라는 보편적 요소가 굳건히 자리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견해를 가지게 되었고, 독자들이 외국 소설을 읽는 이유는 순수한 문학적 욕망뿐 아니라 ‘다른 것’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를 충족시키기 위함임을 깨달았다.
그때 이후로 나는 재미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자연스레 높여주는 소설을 기다리게 되었다. 대부분의 일반인에게 독서는 ‘직업’이 아니라 ‘취미’라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데, 심오하고 난해한 내용 때문에 독서가 노동으로 변모되는 소설보다는 보편적인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동시에 작가만의 독특한 개성과 재치가 담겨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박민규 작가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번역하게 된 연유이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198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나는 5세의 꼬마였고 나의 오래된 앨범 속에 흐릿한 사진의 배경으로 남아있는 당시의 사회 변화 및 그 의미를 당연히 인식하지 못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읽으며, 그리 먼 과거도 아니지만 현재는 아득한 기억으로만 존재하는,다소 촌스럽고 투박했던 80년대 우리들의 과거가 머릿속에서 또렷한 영상으로 재편집되는 과정을 거치며, 나의유년기에 대한 기억이 한층 더 촘촘해지는 느낌도 받았다. 이 소설에는 정규직만 존재했던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개념이었던 아르바이트의 등장, 막 생겨나기 시작한 백화점과 중산층, 새로운 화장법과 말투를 구사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리는 엘리베이터 안내원에 대한 세밀하고도 유머러스한 묘사와 더불어, 객관적 사실 위에 상상력을 덧붙여 재구성된 다른 흥미로운 소재들이 여럿 등장한다. 소설의 배경장치로 사용되는 이러한 소재들로 인해, 이 소설은 문학에 속하면서도 사회·인문학적 텍스트로도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닐까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흑백의 텍스트로 다가오는 역사나 사회학 도서의 내용과 다르게, 소설 속의 묘사는 이미지화되어 다가온다. 역사의 현장처럼 객관성이 온전히 보장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설 속의 장소는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색채를 덧입은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 되면서,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 공간에 대해 독자가 개인적인 애착을 가지게 하는 힘이 있다.
여주인공의 지독한 외모만큼이나 굴곡도 많은 이들의 사랑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소설의 흐름에 따라 때로는 깔깔 웃기도 때로는 같이 가슴 아파하기도 하면서, 그런 시절이 정말로 존재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촌스럽고 아련한 장면들과 마주하게 된다. 바로 불과 3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이다. 기억이 날 듯 나지 않을 듯 과거와 현재 사이에 애매하게 걸쳐있는 우리들의 과거이다. 이는 레스토랑, 상점, 친구집 등 많은 공간이 10년 후에도, 20년 후에도 그 모습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프랑스와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게다가 오랜 시간 분단국가라는 단편적 이미지로 알려져 있던 한국이 어느새 영화, 음악등의 분야에서 콘텐츠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며, 현재 두 가지 현저한 대비를 이루는 이미지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 소설은 두 시대 사이의 간극을 메워줌으로써 과도기 사회에 대한 보충 설명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생각한다.
세기적인 추녀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필두로 한 연애 소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랑이라는 큰줄거리에 녹아 있는 인문·사회학적 메시지가 분명한 스토리를 통해 사랑과 인생, 삶과 성공과 꿈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인간은 성공과 실패를 떠나 작품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라는 메시지에 절로 수긍하게 되었다. 프랑스 독자들도 이에 공감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을 되뇌며 번역 기간 내내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에 임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문학 작품으로서뿐 아니라, 한국 사회의 한 면모에 대한 세밀하고 재치 있는 묘사로 프랑스 독자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주며 한국에 대한 이해를 넓혀 주는 작품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 불역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필자와 장 클로드 드 크레센조 번역으로 프랑스드 크레센조에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