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현대문학》 창간 전후
글 이제하 ㅣ 소설가, 시인. 1937년생
소설 『초식』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유자약전』 『열망』
『능라도에서 생긴 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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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기독교회관 부근인 효제동에 있던 《현대문학》 창간 무렵의 편집실이 생각난다.
1955년 1월호로 창간을 했으니 그 준비기간까지 감안하면 휴전 바로 다음 해가 된다. 대서소를 방불케 하는 반 일식집이었던 것 같은데 길가로 면한 어설픈 통유리창이 꽤 인상적이었다. 창간 다음다음 해인 57년 미당선생의 시 추천을 빌미로 책과 고료를 받으러 갔을 것이다.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경이롭기도 하던 그런 인상은 그 무렵 사회 저변에 확산돼 있던 폐허의식,그 반사작용인지 한쪽으로 또 이상하게 비집고 들던 데카당하고 낭만적인 그 분위기와도 무관하지 않아 반드시 문청적인 감상벽만도 아니었던 것 같다.
‘……문학이 인생의 총체적인 한 학문인 까닭으로서 다른 어떠한 예술보다도 사상적인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소이이기도 하다’는 창간사 중의 한 구절처럼 이 잡지의 태생 내력이나 동기 같은 것을 따져보기라도 하면 해방 직후 좌우대립이 격화되던 무렵의 사회, 공산주의 이론을 펴던<조선 문학가 동맹>의 평론가 김동석과 인본주의 이론으로 맞서던 <청년문협>의 작가 김동리의 설전 같은 것까지가 연상되고 잡지 창간 이념이 지향했던 방향 같은 것도 짐작이 간다. 편집진을 보면 김동리와 함께 휴머니즘, 순수문학의 이론을 펴며 싸우던 평론가 조연현이 주간이었고, 발행인은 김기오, 편집장은 부산 쪽에서 작품 활동을 하던 작가 오영수가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문교부 산하 예총의 한국문인협회 기관지 《월간문학》 이 그 후에 발간돼 어용 소리를 듣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말하자면 민간 주도로 민족주의의 기치 아래 주로 인생파 계열의 문인과 독자를 배려한 문예지였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런 일방적인 이념에 반발하든가 그 소외감 때문에 발행된 듯한 몇 해 뒤의 《자유문학》이나 월남 시인 박남수가 주로 작품을 발표하던《문학춘추》 같은 잡지가 나온 것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소설은 두 번, 시는 세 번의 추천을 거쳐야 비로소 작가로 공인이 됐는데 그 추천위원들은 김동리,황순원, 최정희, 서정주, 유치환, 박목월 제씨들이맡고 있었다. 창간호는 손재향이 제자를 쓰고 수화 김환기가 표지를 그렸으며 그 후 이중섭, 박항섭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여러 일선 화가들이 장정과 목차 컷 같은 것을 죽 담당했다. 이런 것을 보아도 잡지의 성격이나 체제가 가늠이간다. 그 편집 실무진들도 이 잡지의 환경조건에서 빼놓을 수가 없다. 시인 박재삼이 조만간 기자로 합류하고 처음 서무 일을 보다가 편집장을 맡은 김수명은 시인 김수영의 여동생이었다. 가인(佳人)이라 할 밖에 없는 그 수려한 용모나 문예에 관한 폭 넓은 소양과 포용력,총기로 숱한 불세출의 문학재능들을 주변에 끌어들였다고 생각한다. 비로소 인문학적인 인재들이 가족처럼 자리를 잡는, 혹은 문예지가 갖춰야 할 스태프가 제대로 정비되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문예지 하나의 필진이나 거기 관련되는 사람들로 당대 문학의 풍토나 부감이 일목요연해진다는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동란 후에 폐허가 된 잿더미에서 그나마 거의 유일하게 인간적인 정신을 잃지 않고 그 정서의 연결고리를 끊지 않으려 하는 그런 문화공간이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대학에 가느라 상경해 이 잡지 창간 전후 무렵 처음으로 서울 바닥의 그 문학적 자장을 접할 수있었던 필자에게도 이런 분위기는 하나의 거창한 사건이었다. 비록 암담한 느낌이기는 했으나 “누구의 소설을 읽었어?”, “아무개의 추천 시를 읽어봤니?”하는 그런 일상적인 인사나 공감대가 그 낭만적 사건의 증좌일 것이다. 논밭과 야산으로 채워져있던 지금의 합정동과 홍대 부근. 신촌 하숙집에서 학교가 파하면 명동으로 향했다.
명동 입구에는 공초 오상순이 하루 종일 담배를 물고 소녀들을 맞고 있던 <청동> 다방이 있었고 화교 골목 바로 다음 골목 중간쯤에 자리를 잡고 있던 <갈채> 다방 2층은, 《현대문학》 필진들뿐 아니라 서울 바닥의 온갖 문인들이 집합하는 아지트 비슷한 장소였다. 시인 김종삼이 광화문의 <아리스>를 애용하고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술집 <은성>에 작가 이봉구가진을 치고 <동방살롱>부근에 시인 김수영과 전혜린이 수시로 출몰하고 있었어도 어쨌든 <갈채>에 들르면 온갖 시인, 작가들을 볼 수가 있었다. 자리가 빈 한 구석에 쭈뼛쭈뼛 주저앉아 ‘저 양반이 김동리다’, ‘저 분이 황순원이다’고 귓속말을 수군대던 그때의 정경들을 잊을 수가 없다. 스승을 흠모해 하루 종일 다방에 늘러붙어 있다가 나중에 영화배우가 된 문학소녀도 있다. 강도로 침입해 급기야 안주인과 정사를 벌이는 습작소설을 보였다가 여러 번 퇴짜를 맞은 K는 결국에 유명 TV 드라마 작가 됐다. 대학을 못 가 향리에서 가끔 상경해 필자의 하숙집 밥을 축내던 S는 남자 밝히는 이 다방 단골 어느 여류작가에게 유인 당해 입술을 빼앗긴 끝에 결국 작가로 입신했다. 지하 카페에서 줄리엣 그레코를 발굴한 사르트르의 일화를 방불케 한다. 낭만스럽지 않은가.
을지로 쪽으로 하숙을 옮기고 연극 패거리들과 어울리던 무렵에도 명동 행은 끊이지 않았다. 그 다음 골목 복판에 있던 음악실 <돌체>. <갈채>에서 눈요기에 지치면 이 음악실에 숨어들었다. 달 지난《현대문학》을 맡기고 누굴 찾는다는 구실로 들어가면 하도 어둡고 넓어 잠까지도 잘 수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