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진행형의 작가 최인석 “사람 이상의 가치는 없다”
황순원 탄생 100주년 기념 「소나기」 이어쓰기 가을하다 사람의 별 다시 소나기 지워지지 않는 그 황톳물 헤살
제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아버지의 방, ‘영원한 어린이의 벗 강소천’ 별을 가슴에 품고 평생 연필로 시를 쓰다 괜찮다 괜찮다! 가난한 청산도, 고난도, 절망도
가장 문학적인 인물, 여성 내 시의 세 가지 신비 숨은 집 비평과 독서
“격동기, 단절과 극복의 언어”를 남긴 8명의 문인 재조명
시대의 갈등과 비극의 붉은 얼룩을 옮기다
글 최윤영 ㅣ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1964년생
저서 『카프카, 유대인, 몸』 『한국문화를 쓰다』 등
|
소설 『노을 Abendrot』이 최근에 독일어로 번역되어 나왔다. 김원일의 소설로서는 『바람과 강 Wind und Wasser』, 『마당깊은 집 Das Haus am tiefen Hof』에 이어 세 번째 독역서가 되는 셈이다. 한국문학 작품들이 꾸준히 독일에서 소개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번 소설은 뮌헨의 유디치움(IUDICIUM) 출판사에서 나와 한국문학을 출판하는 출판사도 다각화되는 것 같아 기쁘게 번역서를 들추어 볼 수 있었다. 외국어로 한국문학을 번역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소설 번역은 다른 장르의 번역에 비해 시간과 공이 정말 많이 드는 작업이다. 특히 동시대 소설이 아니고 이미 지난 시대의 소설일 경우 한국사회가 급격히 변모해왔기 때문에 소설에 담겨있는 언어나 관습, 문화가 현대의 한국인들에게 조차 낯설다. 더군다나 이를 외국어로 번역해야한다면 번역이란 정말 말 그대로 뼈를 깎는 각고의 작업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본다면 이번에 김원일의 어려운 장편소설을 번역한 두 번역자에게 감사와 존경의 큰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이번 소설 『노을』은 분단소설이면서 가족소설, 그리고 성장기 소설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던 김원일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소설이 속한 장르는 이 소설이 어떤 갈등과 주제를 다루었는지를 보여주고 어떤 문체와 언어를 사용하는지에 주목하게 만든다. 20세기 한국사의 비극이 한 집안의 가족사와 깊숙이 얽혀 있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을 겪고 전달하는 어린 화자가 과거의 한편에 서 있고 성인이 되어 서울의 출판사에 근무하다가 삼촌의 갑작스런 부음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가는 성인이 된 화자가 다른 한편에 서 있다. 소박하나 안정된 중산층 가정을 꾸려나가는 서울의 화자와 배고프고 험악한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의 화자는 동일인물이며 1~7장까지 번갈아가며 이야기를 이끈다. 천시 받는 백정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어머니와 누이가 아버지의 폭행 때문에 집을 나가 동네 할머니의 움막에서 어린 동생과 같이 성장했던, 가난하고 헐벗은 유년시절은 아름답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백정인 아버지는 의식화되어 남로당 폭동에 가담해 결국 죽임을 당한다. 주인공은 이중의 주홍글씨를 달고 있다. 구시대의 천민 백정의 아들이자 좌익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과거를, 고향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삼촌의 부음은 어쩔 수 없이 주인공 갑수를 고향으로 내려가게 만든다. 고향에 내려가 동네사람들을 만나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주인공의 이야기 속에서 29년의 세월이 가로놓인 시간적 간극 이외에도 신분차별이 심했던 시대의 백정이라는 계급이 겪는 사회적 배제와 차별, 그리고 당대의 극렬했던 좌우익의 대립뿐 아니라 가정 내 아버지와 아들의 날선 갈등이 그대로 붉게 타오르고 있다.
독일어 번역본을 읽어보면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김원일 소설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현대의 독일 독자들에게 이해가 가도록 전달을 하려 애를 쓴 점이 우선 눈에 확연하게 보인다. 현대 독일인들에게는 한국문화 자체가 낯설 것이기 때문에 낯선 그대로 옮기기보다는 독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자의 재량을 많이 활용하여 옮겼다. 원본에 있는 문장들을 뺀 경우도 간혹 보이고 없는 문장들도 이해를 돕기 위해 새로 집어넣었다. 속담이나 관례적 표현들도 그대로 옮기지 않고 독일인들에게 친숙한 표현으로 바꾸어 옮기려 애를 많이 썼다.
이 번역본의 아쉬운 점은 바로 이 장점이 단점으로 보일 때이다. 소설은 사회적 계층 격차, 시대적 변화,도농 간의 문화 차이, 어른과 어린이의 세계 등 많은 차이와 대립에 바탕을 두고 구성이 되어 있고 김원일은 그때그때 사실주의적으로 이에 맞는 언어를 진하게 구사하고 있다. 백정의 언어는 거칠게 사투리로, 도시 출판사에 근무하는 인물의 언어는 점잖고 유하게 서울말로, 그리고 불만에 찬 어린 주인공의 언어는 직설적인 반항조로 표현을 하고 있다. 반면 번역본에서는 그러한 차이들이 많이 줄어 소설의 차이와 갈등이 언어에서는 그리 잘 느껴지지 않는다. 낯선 나라, 낯선 문화, 게다가 낯선 시대적 상황까지 중첩된 소설에서 현대 독일 독자들을 위하여 가독성과 이해도를 높이려 어쩔 수 없이 택한 전략이라고 보이나 이러한 부분을 반감시킨 번역은 아쉬움을 많이 남긴다. 또한 앞으로도 역자들은 작품들을 계속적으로 번역할 터인데 작고 세심한 부분들에 더욱 많은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 독역 『노을』은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김혁숙·만프레드 셀저의 번역으로 독일 유디치움 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